朝鮮妓生에게 붓잽힌 中國巡洋艦이야기
仁川愛/근대 월미도 이야기
2014-04-09 16:07:43
朝鮮妓生에게 붓잽힌 中國巡洋艦이야기 (조선기생에게 붓잽힌 중국순양함이야기)
李泰運
中國將校와 朝鮮妓生의 戀愛密聞
사랑에는 상하도 업고 국경도 업스며 오즉 맹목적이라고 엇던 련애 지상주의자는 말하엿다. 과연 그것이 사랑의 진리엇든지- 중국(中國)의 당당한 해군장교로 풍토가 다른 이역이 조선기생에게 련모를 하게 되엇스나 중대한 공무를 띄운 그에게는 달콤한 사랑을 영원히 게속하게 되지 못하고 불과 5일에 안타가운 가심을 태우며 쓰라린 리별의 눈물을 긔우게 된 사실이 잇다.- 지난 6월 18일에 중화민국(中華民國) 동복의 주권자 장학량(張學良)씨 권세 아래에 잇는 청도사령부 소속 순양함(巡洋艦) 해침(海琛)이 인천항(仁川港)에 닷게 되엇다. 이에 중국 거류민들은 오래동안 그리웁든 고국의 함대가 조선에 닷자 사랑하는 형제나 만나는 듯키 항구부두에는 환영을 나온 중국인으로 성을 쌋고 말엇다. 함장 방염조 상교(方念祖 上校)(상교는 대좌격)를 들너 싼 환영객 중에는 각처 신문긔자가 석기어 제각기 기사의 재료를 엇기에 골몰하엿다. 기자들은 방함장을 보고 언제까지나 인천에 잇겟느냐고 무른 다음에 조선에 온 감상담을 뭇자 방씨는 우스면서- 『글세요. 지금 막 다엇스니까 아즉 이럿타 할만한 감상도 업습니다마는 22일까지는 잇겟습니다.』라고 말하엿다. 바로 그 이튼날로 각 신문에는 중국함대가 인천에 들어왓다는 것과 체재기일까지 발표되엇다. 일업는 이들은 서울서도 구경을 하러 인천으로 만히 갓거니와 인천에서는 매일 구경군들이 함구 압헤 그득이 모혓섯다. 어느듯 22일이 되엇스나 해침함대는 떠나지 아니하고 하루 이틀 지난 것이 25일까지 회색빗 외두 굴똑백이 『해침』함대는 소월미도(小月尾島) 바다에서 사라질 줄을 몰낫다. 그리하야 인천의 젊은 작난꾼들이 모히는 곳마다 『중국함대는 슄�탄이 떠러저서 못간다네.』아니여 『부함장 나리가 요사히 어느 기생아씨에게 반하시여 참아 떨칠 수가 업서서 그런다네.』이런한 소문이 떠돌게 되엿다.
전긔와 가튼 풍설을 자어내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가튼 사실이 숨이여 잇든 관게이다.
바로 해침순양함이 인천에 닷든 18일<16> 밤에 인천 일류 료리점 린루(鱗樓)에는 청호한 여름 힌 양복에다 금(金)『모근-』(참모줄)을 느린 수명의 청년 해군장교를 주빈으로 한 아담한 연회가 잇섯는데 이것은 당일 인천에 입한항 막료들을 위로하기 위하야 인천부윤(仁川府尹)이 배설한 환영연이 엇섯다. 오래 동안 바다 가운대에서 험한 파도와 거츠른 물결과 싸와 오든 그네들도 이국의 그윽한 정서에 취하야 권커니 작커니 하는 오고가는 술잔이 기우러젓슬때에 그중에 부함장으로 잇는 조수지 중교(曹樹芝中校)(중교는 중좌격)의 눈에는 기모노 입은 일본기생보다도 백의에 조선 기생에게로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야 그 중에는 박미향(朴美香)이라는 기생에게 마음이 움직이게 되엇다. 둥글고도 기름한 얼골이 무엇보다도 정다워 보이엇스며 소리 업시 웃는 미향의 우슴은 말할 수 업는 매력을 가지고 조수지 장교이 마음을 사로잡고 말엇든 것이다. 조장교는 미향을 보고 말을 붓치려하나 외국어라고는 영어(英語) 박게 몰으고 미양은 일본말 박게 알지 못하게 되엇스니 엇지 안타가운 심정을 다- 호소할 수 잇섯스랴? 조장교는 타올으는 렬정을 참다 못하야 최후의 용긔를 내이어 방함장에게 애원을 하엿다. 방함장은 일즉이 일본에 유학한 일이 잇슴으로 그 덕분에 첫 번 멧마듸 수작은 걸어 보앗스나 감히 상관(上官)을 통역식히어 사랑의 정화까지는 교환할 수 업슴을 깨닷게 된 조장교는 더욱 기가 막히엇스나 나종에는 미향이 한문을 잘하는 줄 알게 되자 필담으로 피차에 정담을 속삭이게 되엇다. 그날 밤에 연회는 밤이 깁허 헤여지고 그후로는 날을 거듭하야 산동동향회(山東同鄕會) 중화화상회(中華華商會) 등의 각 중국인 단체에슄� 환영회가 열리게 되엇는데 연회마다 미향의 자태가 나타나지 아니한 적이 업섯다. 그것은 눈치 빠른 화교(華僑)들이 모국의 젊은 장교의 가삼 속을 잘 알어채린 탓이 엇섯다. 련일 두고 연회가 게속되엇섯스나 군함이 떠나기 전날인 24일은 아모 곳에서도 연회가 업섯다. 그리하야 조장교는 미향을 만날 긔회가 업슴으로 참다 참다 못하야 자동차를 미향의 집까지 보내여 군함에다 마저다가 연회를 베풀고 질탕이 논 뒤에 해가 뉘엇뉘엇 서산으로 겨우 넘어가고 남어지 붉은 해발이 월미도 바다에 잠기엇슬 때에는 선교루(船橋樓)에서 미향을 작별하게 되엇는데 미향을 귀빈으로 대립하야 쌍라팔을 불어 함례(船禮)까지 하여 주엇다. 그리고 배가 떠나기 전날인 25일은 일은 아츰부터 미향의 집을 차자가서 그날 밤이 지나고 그 이튼날 새벽까지 만단 설화를 하야가며 사랑을 호소하다가 굿은 포옹으로 애끗는 최후의 작별을 지우고 중국 청년장교 조수지는 인연 깁흔 인천을 멀리 두고 떠나게 되엇다.<17>
<16-17>
잡지명 별건곤 제42호
발행년월일 1931년 08월 01일
기사제목 朝鮮妓生에게 붓잽힌 中國巡洋艦이야기
필자 李泰運 이태운
기사형태 잡저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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