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맹이와 중심성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2-06 08:11:05
징맹이와 중심성
계산동에서 서구 연희동으로 넘어가는 대로의 고개가 징맹이 고개이다.
징매이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경명현(景明峴)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쉴새없이 차량들로 꼬리를 무는 번잡한 곳이 되었으나 예전에는 대낮에도 도둑이 나온다는 외진 고갯길이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그가 도둑이 되기 전 계양산에서 무술을 닦았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곳이리라 여겨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후 이 고갯길은 학교가 없던 시절 연희동의 학생들이 지금의 부평초등학교에 다니는 통학로였다.
그런가하면 이곳에 고려때 충렬왕의 사냥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왕과 왕비 그리고 몽골의 칙사가 함께 계양산에 와서 매사냥을 즐기곤 했다는데 몽골 공주인 왕비가 곧잘 심술을 부려 왕을 괴롭혔다고 한다.
왕이 얼마나 사냥을 좋아했던지 계양 고을을 길주목으로 승격시키며 자기가 죽거든 길주땅에 묻어달라고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징매이’란 이름은 매를 징발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억지풀이라는 냄새가 짙다.
이곳에는 조선조 고종때 쌓은 중심성(衆心城)이 있었다. 서해안을 침노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것이었다.
문루를 세우고 사적비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서편으로 향한 비석으로 인해 그곳 양가의 아녀자들을 바람들게 한다고 여겨 비석을 쓰러뜨리면 짓궂은 타동 사람들이 다시 세우곤 하여 귀신비석이라고 했다는 전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비석은 자유공원의 시립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는데 6·25때 포화로 파손되었다.
그런데 부평문화원장을 지낸 조기준옹의 ‘부평지리지’를 보면 그가 생전에 고갯길을 넘어다니며 목격했다는 비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즉 아전과 백성이 힘을 합하여 즐겁게 성을 쌓았음으로 중심성이라 했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러나 영구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이전했다는 사적비가 오히려 망실되는 결과를 낳았으니 애석하다고 하겠다.
인천시가 내년까지 징맹이 고개에 생태통로를 조성한다는데 아예 이참에 중심성 복원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생태통로는 2001년에도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계산동에서 서구 연희동으로 넘어가는 대로의 고개가 징맹이 고개이다.
징매이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경명현(景明峴)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쉴새없이 차량들로 꼬리를 무는 번잡한 곳이 되었으나 예전에는 대낮에도 도둑이 나온다는 외진 고갯길이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그가 도둑이 되기 전 계양산에서 무술을 닦았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곳이리라 여겨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후 이 고갯길은 학교가 없던 시절 연희동의 학생들이 지금의 부평초등학교에 다니는 통학로였다.
그런가하면 이곳에 고려때 충렬왕의 사냥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왕과 왕비 그리고 몽골의 칙사가 함께 계양산에 와서 매사냥을 즐기곤 했다는데 몽골 공주인 왕비가 곧잘 심술을 부려 왕을 괴롭혔다고 한다.
왕이 얼마나 사냥을 좋아했던지 계양 고을을 길주목으로 승격시키며 자기가 죽거든 길주땅에 묻어달라고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징매이’란 이름은 매를 징발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억지풀이라는 냄새가 짙다.
이곳에는 조선조 고종때 쌓은 중심성(衆心城)이 있었다. 서해안을 침노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것이었다.
문루를 세우고 사적비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서편으로 향한 비석으로 인해 그곳 양가의 아녀자들을 바람들게 한다고 여겨 비석을 쓰러뜨리면 짓궂은 타동 사람들이 다시 세우곤 하여 귀신비석이라고 했다는 전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비석은 자유공원의 시립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는데 6·25때 포화로 파손되었다.
그런데 부평문화원장을 지낸 조기준옹의 ‘부평지리지’를 보면 그가 생전에 고갯길을 넘어다니며 목격했다는 비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즉 아전과 백성이 힘을 합하여 즐겁게 성을 쌓았음으로 중심성이라 했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러나 영구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이전했다는 사적비가 오히려 망실되는 결과를 낳았으니 애석하다고 하겠다.
인천시가 내년까지 징맹이 고개에 생태통로를 조성한다는데 아예 이참에 중심성 복원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생태통로는 2001년에도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계산동 #부평구 #징맹이고개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