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앓는 왕산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2-07 00:50:10
몸살앓는 왕산
용유도 왕산동 통개포구에 거북바위가 있다. 커다란 바위 터전에 올라앉은 거북 모습이다.
이 바위에는 영종도에서 금광으로 부자가 된 전설적인 인물 김종현씨의 선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신불도에 정착한 조상의 상중에 찾아온 나그네를 접대했다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답례라면서 나그네는 거북바위를 향하여 묘자리를 잡아주면서 후대에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이었다.
거북바위가 연평도를 향해 입을 벌리고 항문을 신불도로 두고 용변하는 형국이어서 거북이가 황해 바다의 고기떼를 먹고 변을 보니 부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그네의 가리킨 대로 장례를 치렀음은 물론이다. 신불도란 인천공항 건설 중에 연륙되어 사라진 섬이다.
그러던 중 후손 김종현이 영종도에서 금맥을 발견 광권을 얻어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부를 이를테면 사회에 환원했다. 지역의 학교 증축비를 기부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폈다.
특히 용유도와 영종도 사이에 돌다리를 놓았다. 바닷물이 썰때 펄위로 건너다닐 수 있는 징검다리였다. 지금의 공항 활주로가 놓인 위치이다. 그로 인해 송덕비가 세워져 후세의 칭송을 받았다.
왕산동은 지금의 용유도 을왕동의 북쪽 동북을 향한 만구 일대이다. 1920년대만 해도 새우잡이로 파시를 이루던 포구였다.
6·25 전란 중에 황해도 실향민들이 정착 염전을 일구었는데 지금은 공항의 북측방조제로 인해 그안에 갇혀 있다.
쉽게 말해 을왕리 해수욕장의 등 뒤로 고개너머이다. 왕산의 한자표기는 旺山이다. 왕자의 묘가 있어 王山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旺은 해와 달무리를 말하며 역학에서 동쪽을 가리킨다고 한다.
을왕동의 왕산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도이다. 부동산업자들이 기존도로가 폐쇄되자 배수로에 불법으로 진입로를 개설 주변을 시뻘건 황토대지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왕산 중턱이 주택을 짓느라 마구 파헤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용유도의 아름다운 산 오성산은 이미 모습을 감춘지 오래인데 또하나의 산이 같은 운명에 있다.
예전 사람들은 평야지대가 너무 허전하다며 인조산까지 조성했었다.
인천신문
용유도 왕산동 통개포구에 거북바위가 있다. 커다란 바위 터전에 올라앉은 거북 모습이다.
이 바위에는 영종도에서 금광으로 부자가 된 전설적인 인물 김종현씨의 선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신불도에 정착한 조상의 상중에 찾아온 나그네를 접대했다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답례라면서 나그네는 거북바위를 향하여 묘자리를 잡아주면서 후대에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이었다.
거북바위가 연평도를 향해 입을 벌리고 항문을 신불도로 두고 용변하는 형국이어서 거북이가 황해 바다의 고기떼를 먹고 변을 보니 부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그네의 가리킨 대로 장례를 치렀음은 물론이다. 신불도란 인천공항 건설 중에 연륙되어 사라진 섬이다.
그러던 중 후손 김종현이 영종도에서 금맥을 발견 광권을 얻어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부를 이를테면 사회에 환원했다. 지역의 학교 증축비를 기부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폈다.
특히 용유도와 영종도 사이에 돌다리를 놓았다. 바닷물이 썰때 펄위로 건너다닐 수 있는 징검다리였다. 지금의 공항 활주로가 놓인 위치이다. 그로 인해 송덕비가 세워져 후세의 칭송을 받았다.
왕산동은 지금의 용유도 을왕동의 북쪽 동북을 향한 만구 일대이다. 1920년대만 해도 새우잡이로 파시를 이루던 포구였다.
6·25 전란 중에 황해도 실향민들이 정착 염전을 일구었는데 지금은 공항의 북측방조제로 인해 그안에 갇혀 있다.
쉽게 말해 을왕리 해수욕장의 등 뒤로 고개너머이다. 왕산의 한자표기는 旺山이다. 왕자의 묘가 있어 王山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旺은 해와 달무리를 말하며 역학에서 동쪽을 가리킨다고 한다.
을왕동의 왕산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도이다. 부동산업자들이 기존도로가 폐쇄되자 배수로에 불법으로 진입로를 개설 주변을 시뻘건 황토대지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왕산 중턱이 주택을 짓느라 마구 파헤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용유도의 아름다운 산 오성산은 이미 모습을 감춘지 오래인데 또하나의 산이 같은 운명에 있다.
예전 사람들은 평야지대가 너무 허전하다며 인조산까지 조성했었다.
인천신문
#중구 #왕산 #용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