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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

개항기 인천, 외국인들의 기록

by 형과니 2023. 7. 8.

개항기 인천, 외국인들의 기록

仁川愛/인천이야기

2022-05-22 10:16:07

 

 

개항기 인천, 외국인들의 기록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근대 개항기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은 130여 년 전 인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우선 짧은 기간 일시적으로 혹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방문했던 민속학자, 외교관, 여행가 등의 인천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체류기간이 비교적 길었던 선교사들의 자료들이 있다. 인천에 대한 인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지만 기록이나 문헌자료 외에 사진자료가 남아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책자는 1668년에 발간한 하멜표류기라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수많은 이양선들이 조선의 해안에 출몰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서양인들이 인천을 방문했던 최초의 기록은 영국의 바실 홀 함장이 1818년에 발간한 조선 서해안 탐사기이다. 서해안 일대를 탐사하고 대청군도를 해도에다 표기하면서 자신의 부친 이름을 따 ‘Sir James Hall Island’라고 명명했다.

 

이후 독일계 미국 상인 오페르트가 1880금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여기에 여러 날에 걸쳐 방문했던 강화도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이어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이 제물포에서 한강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해도를 작성하면서 월미도를 자신의 이름을 따 ‘Roze Island’라 표기했는데, 이 해도의 지명들은 이후 조선을 찾는 서양인들에게 그대로 알려져 해상교통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게 됐다.

 

그들이 본 제물포의 풍경은 초가지붕이 즐비한 모습에 갯벌이 드러난 채 항구로서는 조금 불편한 여건을 가진 곳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물포(濟物浦)’라는 지명에 대한 각양각색의 해석이다. 러시아는 상품을 건네는 항구라는 뜻으로 기록하고 있고, 미국 감리회 선교사 존스는 물건의 비축이나 보존을 위한 창고라 풀이하고 있다. 아마도 제물포의 교역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 중에서 특기할 것은 명왕성의 존재를 계산해 낸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한국기행기인데 이 책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지리 등 각종 풍속을 당시로서는 깊이 있고 수준 높게 담아냈다고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서도 제물포라는 이름은 여러 강의 둑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지명이 붙게 된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전설 때문으로, 이미 몇천 년 전에 제물포가 조선의 교역항이 되리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이것이 곧 사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인천이라는 이름을 인간을 사랑하는 강을 의미하는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일시적인 방문이나 전해들은 내용만으로 서술한 것은 피상적 수준일 수밖에 없지만 이 지역에 터를 잡은 서양인들은 조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심화되고 긍정적인 입장에서 서술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892년부터 1906년까지 발간된 한국 최초의 영문 월간 잡지 ‘Korean Repository’‘Korea Review’이다.

 

‘Korean Repository’의 주제별 내용을 보면 조선의 문화, 사회, 역사, 인물 등 총 287편이, ‘Korea Review’는 총 318편이 실려 있는데 이 기사들 중 인천을 주된 주제로 삼은 것은 60여 편이다.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우리 역사의 여러 가지 제도나 정치, 문화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체로 실생활에 관련된 사항들이 많지만 선박 출입으로 인천의 기상 변화는 중요한 일이라 기후에서부터 선교사 활동, 방곡령, ··일 무역관계, 조미수호통상조약, 갑신정변, 경인철도 부설, 우편국 소식, 제물포구락부 개관식, 러일전쟁 등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부터 정치적 문제까지 많은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알아가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론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도 객관적인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같은 모습이나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국의 이해관계나 자신의 신분 등에 의해서도 다르게 묘사될 수 있고 개인의 경험과 감상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타자의 객관적 시각은 다른 나라와의 문화 비교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출처 : 기호일보

 

 

1897.7.24 하퍼스 위클리에 게재된 동아시아의 위기/제물포 항구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