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부설을 촉진한 암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12 01:01:58
철도 부설을 촉진한 암살
9월18일을 철도의 날로 정한 것은 한국 최초로 경인철도가 개통된 날이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일본과 서구 열강들이 한국 내 각종 이권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돼있던 무렵인 1896년 경인철도 부설권은 미국인 모어스(James R. Morse)에게 특허되었는데 곡절 끝에 일본인에 의해 3년 후인 1899년 9월18일에 개통된 것이다.
모오스는 이미 1892, 3년경 입국해서 한국 내 철도 부설권을 따내려고 애를 썼으나 조선에 대해 종주국 행세를 하던 중국 측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주한 미국 공사 알렌(Horace N. Allen)을 통해 부설권을 획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알렌이 쓴 ‘조선견문기(Things Korean)’ 중에 ‘철도 부설을 촉진한 暗殺’이라는 제목으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암살이란 1895년 10월 일본에 의해 자행된 을미사변을 일컫는 말로 그날 새벽 알렌은 고종의 다급한 하명을 받고 입궐하여 왕비 시해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임금님의 사랑을 받던 여섯 명의 정부 고위 관리들이 나의 침실로 피신하여 왔는데 나의 아내가 부상당한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이들은 나의 옛 친구이며 전 워싱턴 주재 공사였던 사람이 나의 추천으로 총리대신이 되어 내각을 조직할 때까지 피난민으로서 미국 공사관에 머물러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알렌의 도움으로 무사했던 그들 여섯 관리들은 자연히 그 신세를 갚기를 원하였는데 알렌이 경인철도 부설 공사를 부탁했을 때 이를 허락해 주는 것으로 갚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알렌이 옛 친구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박정양(朴定陽)으로 그가 총리대신이 된 것도 알렌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 보답으로 철도 부설권쯤은 당연했을 것이다.
물론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점과 일본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선 정부가 우정 미국을 철도 부설업자로 선택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민 왕비의 비운이 여섯 관리와 그의 관계를 가깝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적인 점을 알렌은 강조한다.
결국 민 왕비의 죽음이라는 조선의 화(禍)가 미국인에게는 복(福)이 되어 경인철도 부설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실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인데, 오늘 철도의 날을 맞아 그와 같은 곡절 끝에 한국 철도의 시발지가 된 인천과 경인철도에 서려 있는 구한말 그 비극의 역사를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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