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경기장의 옛 이름이 ‘공찰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16 12:21:09
문학경기장의 옛 이름이 ‘공찰데’?
남구 문학동에서 한 평생을 산 이선진(93)씨는 월드컵 16강 성지로 알려진 문학경기장을 ‘공찰데’라고 회고했다.
최근 출간된 ‘구술자서전 남구 사람들의 삶과 일’(학산문화원 간)에서 이씨는 “어릴 때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공찰데 갔다왔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공찰데가 문학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정말로 공차는 데가 된 것이다. 이씨는 “어떻게 여기가 공찰데가 될지를 알고 그렇게 불렀냐”며 의아해했다.
이씨는 1915년 부천군 문학면(현재 인천시 남구 문학동)에서 태어나 부천공립보통학교(현재 문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최초의 민선동장을 지낸 이래 17년간 문학동장을 맡는 등 한번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문학동 토박이다.
그는 40호 정도가 모여있는 학산마을에 살았다. 그 아래 성산마을에도 40~50호 정도가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문학초등학교가 있는 곳이 관청마을이다. 관청마을 밑 승학산쪽에는 향교을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문학경기장 앞쪽으론 마을은 없고 공동묘지였으며 문학경기장 옆으로 빠지는 길 근처를 ‘무주물’이라고 했다.
또 지금의 공설운동장이 있는 도원고개, 그곳엔 소방서가 있었고 뚱그런 산에 활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흔세살의 고령이지만 하루에 너댓 시간은 활을 쏜다. 특히 문학동에 있었던 활터인 문학정(文鶴亭)이 문학종합경기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학산문화총서는 남구지역 역사·문화에 대한 연구와 자료수집을 통해 지역사를 복원하고자 책을 펴냈다.
어르신들의 구술 증언으로 옛날 남구의 모습을 기억하며 삶의 역정도 기록해 인생의 교훈도 얻고 남구의 생생한 역사도 되새겨 볼 수 있다. 조자영
남구 문학동에서 한 평생을 산 이선진(93)씨는 월드컵 16강 성지로 알려진 문학경기장을 ‘공찰데’라고 회고했다.
최근 출간된 ‘구술자서전 남구 사람들의 삶과 일’(학산문화원 간)에서 이씨는 “어릴 때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공찰데 갔다왔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공찰데가 문학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정말로 공차는 데가 된 것이다. 이씨는 “어떻게 여기가 공찰데가 될지를 알고 그렇게 불렀냐”며 의아해했다.
이씨는 1915년 부천군 문학면(현재 인천시 남구 문학동)에서 태어나 부천공립보통학교(현재 문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최초의 민선동장을 지낸 이래 17년간 문학동장을 맡는 등 한번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문학동 토박이다.
그는 40호 정도가 모여있는 학산마을에 살았다. 그 아래 성산마을에도 40~50호 정도가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문학초등학교가 있는 곳이 관청마을이다. 관청마을 밑 승학산쪽에는 향교을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문학경기장 앞쪽으론 마을은 없고 공동묘지였으며 문학경기장 옆으로 빠지는 길 근처를 ‘무주물’이라고 했다.
또 지금의 공설운동장이 있는 도원고개, 그곳엔 소방서가 있었고 뚱그런 산에 활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흔세살의 고령이지만 하루에 너댓 시간은 활을 쏜다. 특히 문학동에 있었던 활터인 문학정(文鶴亭)이 문학종합경기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학산문화총서는 남구지역 역사·문화에 대한 연구와 자료수집을 통해 지역사를 복원하고자 책을 펴냈다.
어르신들의 구술 증언으로 옛날 남구의 모습을 기억하며 삶의 역정도 기록해 인생의 교훈도 얻고 남구의 생생한 역사도 되새겨 볼 수 있다. 조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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