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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문화/인천배경문학,예술,문화

길에서 - 제물포 풍경 - 김기림

by 형과니 2024. 3. 27.

<기차>

 

모닥불 붉음은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갑니다

 

<인천역>

 

'메이드 인 아메리카'

성냥개비나

사공의 '포케트'에 있는 까닭에

바다의 비린내를 다물었습니다.

 

<조수>

 

오후 두 시...

머언 바다의 잔디밭에서

바람은 갑자기 잠을 깨어서는

휘파람을 불며불며

검은 조수의 떼를 모아가지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고독>

 

푸른 모래밭에 가빠져서

나는 물개와 같이 완전히 외롭다.

이마를 어루만지는 찬 달빛의 은혜조차

오히려 화가 난다.

 

<이방인>

 

낯익은 강아지처럼

발등을 핥는 바닷바람의 혓바닥이

말할 수 없이 사롭건만

나는 이 항구에 한 벗도 한 친척도 불룩한 지갑도 호적도 없는

거북이와 같이 징글한 한 이방인이다.

 

<밤 항구>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

어둠 속에 숨어서야

루비 사파이어 에머랄드...

그의 보석 바구니를 살그머니 뒤집니다.

 

<파선>

 

달이 있고 항구에 불빛이 멀고

축대 허리에 물결 소리 점잖건만

나는 도무지 시인의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빠이론'과 같이 짖을 수도 없고

갈매기와 같이 슬퍼질 수는 더욱 없어

상한 바위틈에서 파선과 같이 참담하다.

차라리 노점에서 임금(林檎)을 사서

와락와락 껍질을 벗긴다.

 

<대합실>

 

인천역 대합실의 조려운 '벤치'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저마다

해오라비와 같이 깨끗하오.

거리에 돌아가서 또다시 인간의 때가 묻을 때까지

너는 물고기처럼 순결하게 이 밤을 자거라

 

[태양의 풍속] - 1939

 

일제강점기 『기상도』, 『태양의 풍속』 등을 저술한 시인. 문학평론가.

 

 

김기림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는 인천 관련 시<제물포 풍경>은 말 그대로 연작시 형태를 띈 것으로발표 당시에 유행하던 조류를 넘어선 것으로 '독특하다'라는 이유를 거기에 두고 싶다 1939년이란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시작(詩作)의 출발을 안티 프로레타리아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

 

시를 짓기 시작했을 당시부터 주지주의와 서정시를 표어로 내건 모던 영미 시단을 공부했던 관계로 이러한 성향을 같이 한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공동 발표 작업을 해왔는데 그 대표적인 모임이 바로 구인회(九人會)이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근대 시인들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데 김기림·이효석·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정지용·이무영 등이 그 창립회원이고 이후에 박팔양, 이상, 김환태, 박태원, 김유정이 탈퇴한 회원들의 자리를 채우게 되어 구인회를 존속케 하는 모임으로 발전해 나간다.

 

이들은 시, 희곡, 평론, 소설을 망라해 한국 근대문학사에 있어서 든실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지만 일면에서는 사회 참여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한 프로문학을 배제 시켰다는 역사적 질책을 동반하게 되는 운명을 갖게 된다

 

 

김기림의 <제물포 풍경> 연작은 저녁무렵 기차를 타고 인천역에 내린다. 다음 날인지 정확히 판단내리기 어렵지만 밀물를 바라보며 고독감을 느낀다 그런 화자가 곧 이방인이 된다 밤 항구를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로 여길 만치 오랜 시간을 머물다가 자신의 처지를 참담해 하다가 사과(林檎)를 깍아 먹는다 그리고는 서울로 향하는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대합실 풍경에 대해서 순결한 이미지로 남아줄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시를 맺고 있다

 

근대 문학의 절정기라고 볼 수 있는 이 당시의 시들이 시어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보게 되면 역시 영어로 된 표현들이 많은데 다분히 먹물 근성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정지용의 시<슬픈 인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김기림 또한 영어 단어를 시어로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현대 시어들이 갖는 일상성과 자주성을 바탕으로 짓는 시어들과는 좀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정지용의 애시리 황(愛施利黃)Ashely , '메이드 인..'빠이론' 바이런(Byron) 등의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지식인의 껍데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구인회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보아 유행의 조류를 타고 있음이 감지된다 여하튼 김기림 또한 인천을 실질적으로 방문함으로써 당시 인천의 문학적 토대와 모더니즘적 자양을 받았으니 인천이란 지역이 문학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감성적 주목을 받아왔는지 추측케 하고도 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