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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70년대 다시 보듯

by 형과니 2023. 3. 20.

70년대 다시 보듯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2-19 04:48:26

 
70년대 다시 보듯
 
 
사무실에서 내려다 뵈는 곳에 철도 조차장이 있다. 그곳에서 전날 내려온 무개화차에 실려 쉬지않고 연탄 열차가 출발한다. 내륙 각지로 심지어 탄전지대로까지 간다고 한다. 예전과 정반대의 현상인데 오스트레일리아 수입탄이 인천항에서 양륙되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의 가정 연료는 아무래도 연탄이 주종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느라 연탄은 우리나라의 산림녹화에 큰 기여를 했다. 만약 연탄이 아니었더면 나무를 베어 때느라 우리 산들이 벌거숭이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바람에 거의 무진장이라고 여겨지던 연탄이 계속 파먹어 들어가느라 탄광마다 갱도가 깊어가더니 바닥이 나고 외국에서 사오지 않으면 아니 되게끔 되었다.

 
우리 가정에서의 연탄연료 역사는 50여년 정도이다. 6.25 전쟁 이후에 연탄이 부엌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대강 그렇게 되었으리라는 짐작이다. 하긴 이전에도 연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강점기 말 가루탄을 사다가 물에 반죽 주먹만큼씩 뭉쳐 말리든지 조개탄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들을 쏘시개 밑불에 얹어 땠었다. 9공탄도 있었다.

 
그러나 연탄은 주부들이 떠안는 고통이었다. 하룻밤에도 몇차례씩 탄불갈이를 하느라 잠을 설쳐야 했고 독한 까스를 맡아야 했다. 여기에다 동절기면 으레 품귀에다 값을 올리는 연탄파동이 있어서 시달리던 주부들이 항의시위를 벌인 예도 있었다. 고지대에는 배달도 꺼렸다. 무엇보다 가스의 공포를 지울 수 없었다. 연탄이 연소하면서 발산하는 일산화탄소는 인명에 치명적이었다.
 
 
근래 연료의 가스 석유화로 사라졌던 연탄이 다시 등장했다. 천정부지의 석유가로 서민들이 다시 연탄을 찾게 된 것이다. 역시 품귀가 따르고 특히 고지대 주민들에게 고통이 심하다. 연탄을 사용해야 하는 식당이나 농사 난방용도 확보가 어렵다고 한다. 물량은 충분하지만 제조시설의 노후로 수요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것 하나 미리 대비 못하고 일을 당해서야 허둥대는지 한심스럽다. 70년대를 다시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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