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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강화의 전설

by 형과니 2023. 3. 21.

강화의 전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2 11:14:58

 

강화의 전설 2007/02/21

 

강화의 전설

 

 

1.손돌목 이야기

 

한강에서 나룻배의 사공으로 손돌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한강의 물은 손쉬어 배를 지어 건너는 일쯤이야 기타 뱃사람보다 잘한다는 평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병란으로 배를 타고 피난길을 서둘러야 하는 인조(1623-1649)는 극히 불안하였다.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며 성이 복 바친채 갑자기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전방은 물살이 세고 이 배는 여울에 향하여 전진하였다. 이대로 나간다고 하면 이 배는 여울목에 휘말려 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배는 하는 수없이 침몰하고야 말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사공이라 했는데도" 만일 이 사공이 반란을 일으킨 이괄의 한패가 아닐까 왕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기분인지 사공의 하는 동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되었다.

 

왕은 가까이 있는 신하에게 혼자 말을 건넨다. "저 물살은 여울이 아니인가?" "폐하 그러하옵니다" "배는 그 물살을 향해 나간다. 어찌된 일인지 위험하지 않는가." 옆에 있어 모시던 신하가 사공에게 주의를 주었다. "" "사공, 눈앞의 물살은 위험한 여울이 아니냐. 이대로 가도 좋은가" ", 나는 잘 알고 있지요. 걱정마셔요 맡겨주셔요"

 

손돌 사공은 버젖이 물살을 향하여 배를 몰고 있었다. 왕은 더욱더 불안하여 견딜수 없었다. "또 한번 뱃사공에게 주위를 줘라" 하고 분부하니 뫼시는 신하는 손돌에게 주의시킨다.

 

임금님의 행차이시다. 물길을 잘 살펴 배를 젖도록 하라" "주의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있는 것인지 손돌은 그런대로 물살 따라 화살 같이 지나간다. 왕은 기분이 대단히 불쾌하였다.

 

사공은 이괄의 한패로 되었던 자로서 나를 없애려고 계교를 하는지 생각이 든다. "어쨌든지 저 사공은 괴상하니 목을 쳐라" 왕은 명령을 내린다. 뫼시는 신하들이 달려들어 칼을 휘두른다. 손돌은 왕 앞에서 공손히 하고 말한다. "폐하 모쪼록 믿어주십시오. 나도 이 나라 백성인데 어찌 임금의 은혜를 잊으리까 이 여울목을 무사히 건너도록 하겠습니다. 그후엔 무슨 벌이라도 기꺼이 받겠습니다. 바라건대 잠시 나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손돌은 한참동안 왕이 무사하기를 기원한다. 왕은 이괄의 반란사건으로 뜻밖에 신경을 쏟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여울목을 피할 수로가 없다는 말인가" "네 이수로만이 있어 여울을 피할 수 있는 길은 한곳이 있습니다." 손돌은 여기까지 의혹이 같으니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단념하게 되었다. "폐하 이 사공의 말씀을 어쨌든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제발 목을 쳐주십시오. 일껏 이곳까지 모시고 왔으니 죽기전에 한 말씀 들이고자 합니다. 앞에 있는 손돌이 죽은후 뱃길을 볼 수없게 될 것입니다. 그럴때엔 이 바가지를 물에 띄어 주십시오. 흐르는 데로 배를 가게하면 반드시 무사히 섬에 건너게 될 것입니다."

 

손돌은 배 밑에서 바가지 하나를 꺼내어 비치면서 조용히 죽고 말았다. 손돌과 손을 바꾸어 사공이 노를 잡았는데 여울을 피할 수 있는 뱃길을 알 수 없었다. 배는 점점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왕은 더욱 불안에 떨고 있었다. 거세게 물구비치며 여울목의 물발 손에 익지 않은 물길이라 사공이 벌벌 떨기만 한다. 위험이 바싹바싹 다가온다.

 

옹은 손돌 사공이 남기고간 말이 생각난다. '빨리 저 바가지를 띄워 안전한 물길을 찾도록 하라" 시종은 재 빨리 바가지를 띄워 사공은 그뒤를 따라 배를 가도록 했다.

 

때는 음력으로 1020일이니 바다바람은 차갑기만 했다. 손돌이 죽어 바다에 버려지면서 지금껏 맑은 하늘엔 검은 먹구름이 덮히고 세찬 하네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거치른 파도는 미친 듯이 뱃전을 두둘겨 배는 나뭇잎 인냥 파도에 휩 쌓인다.

 

그러나 바가지에게 길을 트이게 한 배는 손돌의 혼이 담겨 있는 듯 거센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여울목을 빠져나가 목적지인 강화도에 다다랐다. 인조왕은 이때에 비로소 손돌의 마음씨를 깨달아 그 죽음을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이괄의 난리가 평정되어 대궐로 돌아간 왕은 곧바로 각 대신들을 소집하여 손돌의 죽음을 탄식하게 되었다. "짐은 강화에 난리를 피하였을 때 될 수 없는 예감에 얽혀 죽음을 낳게 했다.

 

그 사공 손돌을 나는 잊을 수가 없구나. 전혀 내가 살리지 못한 일이니 당시 돌아보니 가슴 아프기만 하니 강화섬에 사당을 세워 매년 그날을 지정하여 제사를 올려라. 손돌의 원혼을 위로토록 해라" 왕은 엄한 명령이 내려졌다.

그후 이상하게도 손돌의 제삿날이 되면 반드시 거센 바람이 불어 추워졌다. 바다는 험준하여 배 타려는 나그네들은 배질 하기 전에 사당에서 빌어 손돌의 원망하는 혼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1020일에 거칠고 세찬 바람을 손돌의 탄식하는 숨소리라고 하며 이를 손돌이 바람이라 한다.

손돌이가 죽은 여울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월이지나 사당이며 비석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해방후 복원하여 유서를 남기고 있으며, 아직도 손돌목, 손돌바람이라 불러 전하여 진다.

 

 

2.삼랑성 이야기

 

강화도에는 정족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높이는 약 700척이고 세 봉우리로 되어 있고 그 산에 폭 9척 높이가 7척의 석성으로 에워 쌓여 있다. 기나긴 세월이 흘러 이 성터는 삼랑성이라고 불러왔고 또는 정족산성이라고 불러오는데 이제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되어 버려 옛날의 모습은 희미할 뿐이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동서남북의 큰 문을 갖춘 보기좋은 성이었다.

 

그 성문의 하나는 지금 전등사 입구에 홍예문으로 남겨져 있고 남문만이 정화 복구되어 옛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데 성벽 곳곳에는 망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 옛날 단군 시조께서는 세 아드님이 있었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은 시조 단군은 정족산에 성을 쌓기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큰 규모의 공사이기에 간단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조는 항상 생각을 기울여 끊임없는 꿈만이 젖어 있었다.

"

정족산에 성을 쌓아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아야만 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으나 좀처럼 좋은 방법이 없었다. 너희들 좋은 방책은 없겠느냐" 시조는 어느날 세 왕자에게 의논을 했다. 왕자들은 어이하려는지 자신있게 답을 한다. "크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들 세 자식의 힘으로 반드시 훌륭한 성을 쌓아 보여 드리겠습니다." "성을 쌓으려면 많은 돌이며 흙을 운반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하나님의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너희들에게 일임하기로 한다"

 

세 왕자는 재빨리 다음날 아침부터 성 쌓기를 시작하였다. 시작하고 보니 뜻밖에 응원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전국 각처에서 구름같이 큰 남자들이 공사장으로 모여들었다. "미안하지만 단군 시조의 왕자들은 스스로 축성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달려왔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동일한 말을 하면서 가지런히 체격 좋은 사람이니 근력이 두드러진 장사들이었다.

 

주변에 있는 산으로 나갔으리라 생각했는데 큰 바위를 주먹으로 두드려 쪼개 내여 적당한 돌을 만들어 이쪽 산으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 돌은 하나 하나가 들어맞는 중량으로 보이는 즉시 성벽이 되어진다. 공사는 점점 박차를 가해 진척되었는데 겨우 한달도 못되어 난공사인 산성이 이루어 졌다. "어찌되었던지 참으로 훌륭히 쌓아 올렸다. 이로써 베개를 높이하고 잘 수 있겠다. 너희들의 충성은 후세 자손들까지 반드시 말로 이어질 것이다. " 단군 시조는 공사에 관계한 장사들에게 두터운 인사를 베풀고 세 왕자에게는 정족산의 봉우리를 각각 하나씩 안겨주고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세 왕자들은 축성하고 각기 세 봉우리를 지킴으로써 이성을 삼랑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여 온다

 

 

3.전등사 은행나무 이야기

 

배불숭유의 정책을 폈던 조선에 들어오면서 전국의 사찰은 조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박해를 받게 되었다.

승려는 성곽을 쌓거나 다리를 놓는 일에 사역을 나가야 했고, 사찰에서는 제각기 특산물을 공물로 바쳐야만 했다.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에서는 매년 은행을 공물로 바치도록 명령했는데 절어귀에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서는 열매가 가장 많이 달릴 때에 열가마니 정도 은행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스무 가마니를 공물로 바쳐야 한다고 관아에서 명령해 왔다. 전등사의주지 스님과 그 밖의 스님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풍년이 들어야 열 가마니인데 스무 가마니를 공물로 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은행을 사드릴 재력도 없었다. 스님들의 걱정은 더 커졌다.

 

"은행이 많이 수확되도록 염불을 올립시다." 주지스님의 제의에 따라 은행나무 밑에 제단이 차려지고 3일 기도회가 열렸다. 이 소문이 절 아래 마을들에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기도제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관가에서도 이 말을 듣고 신기하게 여기며 몇몇 포졸들을 파견했다. 주지 스님의 염불이 한창 진행될 때 포졸 한 놈이 스님에게 모독적인 언사를 했다. 곧 벼락이 치드니 포졸 한 놈이 꼬꾸라졌다.

 

"이 은행나무에 제발 은행이 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주지스님은 이 은행나무에 향후 천년 만년 은행이 열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을 했다. 그러자 벼락과 뇌성이 울리면서, 은행나무에 달렸던 은행 알은 모조리 떨어지고 기도회를 드리던 제단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후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는 은행이 열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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