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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숭의동109번지

by 형과니 2023. 3. 22.

숭의동109번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4 09:23:18

 

숭의동109번지

 

땅의 형국이 소의 뿔과 같다고 해서 쇠뿔고개’-한자로 牛角里(우각리)라 불리던 창영동 고갯길은 대낮에도 사람 그림자를 볼 수없는 호젓한 길이었다. 살인강도가 연달아 발생 지나기가 무시무시했던 험한 길이었다고 고일 선생은 인천석금에 적고 있다. 오늘의 인천세무서에서 전도관으로 넘어가는 길이며 이 일대가 숭의동 109번지이다.

 

이 고갯길이 옛 개항 당시 서울을 오가는 경인가도였다. 내동에서 싸리재를 거쳐 배다리로 해서 쇠뿔고개를 넘는 코스이다. 고갯길에는 으레 선황당이 있게 마련이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거니와 이길은 개항로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경인철도가 개통하기 이전 인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교통은 선편으로 강화도로 해서 한강을 오르는 해로와 내동에서 우각리를 거쳐 입경하는 육로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곳 우각리 일대는 인천에서 서구문물이 가장 먼저 찾아온 곳이 되었다. 주한 초대 미국공사를 지낸 알렌 선교사의 별장이 이곳에 세워지고 경인철도가 이곳에서 기공식을 갖는가 하면 기독교 선교사들이 자리하고 영화여학교가 문을 열었다. 지금 창영사회관 건물이 미국감리교회 여선교사 숙소였으며 인천세무소 터가 남선교사의 숙소였다.

 

둥근 타워의 돔을 곁들인 2층의 알렌 별장은 세월 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인상적인 양관과 경내의 잔디와 주변의 잔솔밭으로 한적했던 일대는 지금 찾아볼 수 없다. 40년대초 송림동 구획정리사업으로 완만했던 샛골의 과수원이 깎여나가 정상의 별장을 가파르게 고립시켰다. 그리고 해방이후 점차 입주해온 민가들로 달동네가 되었다. 전국체육대회의 인천개최로 주택개량을 하고도 여간에서 묵은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도관 지역 재개발 사업추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한다. 1956년 낡은 별장을 헐어 전도관을 지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운 동네 숭의동109번지-벌써부터 주변에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거니와 이번에야 말로 오명 처럼 따라다니던 숭의동 109번지를 씻어낼 기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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