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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인천의 이방인

by 형과니 2023. 3. 22.

인천의 이방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4 09:15:19

 

인천의 이방인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이 이방인이었다. 이미 이전부터 청인과 일인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나 파란눈의 서양인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개항이후였다. 그러나 이들 서양인의 인상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호기심 보다는 전혀 낯선 외모가 혐오와 두려움을 품게했다.

 

그들의 생김새는 파란 눈에 높은 코 노란 머리카락에 하나같이 턱수염을 키웠다. 옷자락도 낯설었다. 거기에다 우리 어린이나 부녀자를 유괴하고 잡아 먹는다는 터무니없는 풍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니 그들은 양이(洋夷)요 양귀(洋鬼)였다. 즉 서양 오랑캐와 도깨비였다.

 

외국인에 대한 이런 인식은 비단 서양인만이 아니었다. 청인과 일인도 같았다. 그들은 한술 더떠 우리 원주민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특히 각종 이권을 선점한 청상과 일수병의 폭력이 우심했다. 그래서 구미인이나 동양인이나 외국인을 미워하고 싫어했으며 일인들은 그들의 지계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렸다고 옛 인천시사는 적고 있다. 그러나 재인 외국인은 해가 갈수록 점차 늘어난다. 인천시사의 기록으로는 1896년 일인 2561명 청인 1331명 기타 57명이던 것이 2년후 1898년에는 일인 4301명 청인 1781명 기타 65명이 된다.

 

이 통계는 당시 독립신문 보도와는 다르다. 18961222일자 기사는 이러하다. ‘인천에 있는 일본사람이 4503명인데 그중 사나이가 2458명이요 계집이 1595명이라 인천에 있는 서양사람은 미국사람이 15명인데 그중 사나이가 열둘이요 여편네가 셋이요 호수인즉 여덟이라 불란서 사람이 일곱인데 사나이가 다섯이요 여편네가 둘이요 호수가 셋이라 영길리 사람이 6명인데 사나이가 6명이요 호수가 6호이라그러면서 독일 이태리 오지리 포도아 희랍 순으로 이어진다.

 

지난 6월말의 인천시 인구중 외국인이 2814명으로 발표되었다.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순이다. 이주근로자 위주의 외국인 분포-오히려 옛날이 국제도시였다는 느낌이다. 그때는 국가별로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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