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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도원 원두

by 형과니 2023. 3. 22.

도원 원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4 09:29:02

 

도원 원두

 

인천에 처음으로 공설운동장이 등장한 것은 1920년이었다. 응봉산 밑 빨래터가 있었다는 웃터골-지금의 제물포고교 자리이다. 인천의 인구 36천명이던 시절이었으니 그곳에는 별반 시설도 없이 겨우 운동장만 닦아진 형태였다. 그러나 3면이 산자락이어서 천연의 스탠드 구실을 하고 아카시아 숲이 우거져 꽃철이면 꽃향기가 진동했다고 한다.

 

이곳에 인천의 젊은이들이 모여 뛰면서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랬다. 구도 인천의 전통을 세운 한용단 야구도 경인통학생들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단련 일인들을 누를수 있었다. 그러니까 웃터골 운동장은 인천 스포츠의 요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당시 인천에는 몇몇 공사립 초등학교와 중등학교가 있었는데 운동장이 좁아 가을운동회라도 치르려면 천상 이곳을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구경꾼들이 몰려 흡사 시민의 잔칫날이었다고 고일선생은 인천석금에 적고 있다. 한편 그때 한장의 옛사진에는 자유공원쪽 언덕에 백색 천막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희게 물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34년 웃터골운동장 자리에 제고의 전신 인천중학이 개교되고 운동장은 도원동으로 이전해야 했다. 즉 육상장 야구장 등을 갖춘 공설운동장의 조성이었다. 그러나 일제말 전쟁의 와중에 운동장은 방치되고 1964년 제45회 전국체육대회가 인천에서 개최케 되어서야 대대적인 보수를 통해 겨우 현대적 종합운동장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이것이 곧 도원 원두이다.

 

이곳 도원동 종합경기장에서는 그후 596480회 전국체전을 연거퍼 치렀었을 뿐 아니라 인천 스포츠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2001년 문학경기장이 완공됨으로써 도원동시대가 마감되는 듯 경기장을 철거하고 아파트 단지를 입주시킨다느니 이를 반대한다느니 주장이 분분했었다.

 

그런 도원종합경기장 일대가 2010년까지 주거 상업 여가시설을 갖춘 웰빙타운으로 개발되리라 한다. 70여년을 넘게 인천의 젊은 함성이 울려퍼졌던 이곳에 깊게 드리운 고적감이 속히 벗겨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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