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담배 공장에 대한 기록
仁川愛/인천이야기
인천 담배 공장에 대한 기록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시기는 정확치 않으나 사학가들의 견해와 문헌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기록들에 따르면 1608년에서 1616년 사이에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천의 담배공장에 대한 기록 역시 명확하지 않다.
현재는 1899년 말께 미국과 영국이 합작해 설립한 영미연초회사가 담배를 생산했다는 설과 이 회사가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두고 인천항을 통해 `히어로'라는 상표를 가진 권련을 수입·판매하다 1908년 3월 인천의 중국조계 안에 분공장을 설치 생산했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영미연초회사의 인천 분공장에는 100여 명의 한국인 종업원이 종사했으며 생산액은 7천200만 원에 달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원료는 대구나 밀양산이었는데 주요 도시마다 특약점을 두고 제품을 판매했으며 재고품이 없을 정도로 잘 팔렸다고 한다.
당시 이 회사는 일본정부가 직영하는 관제품과 일본상인들이 규합해 세운 동양연초주식회사 등과 경쟁했다고 한다.
또 1901년 그리스인 밴들러스가 인천에 와서 중구 사동에 동양연초회사를 설립하고 담배를 생산했다가 홍수처럼 수입되는 외국 담배와 경쟁할 수 없어 영업을 중지했으나 지배인으로 있던 미국인 해밀턴이 인수해 제물포연초회사를 개업하고 홍도패, 산호, 뽀삐 같은 담배를 생산했다는 기록도 있다.
제물포연초회사는 1921년 연초전매법이 실시돼 전매국의 권련이 나오기까지 존속했다고 하나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제물포연초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 영문 글씨가 1980년대 중반 무렵까지 파라다이스 호텔 뒤편 언덕 아래 공장 같은 벽돌 창고 건물에 쓰여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서양인들이 만든 양담배를 판매한 이들은 일본 무역상들이었는데 초기에 중계무역 형태를 하다가 나중에는 제품을 일본에서 만들어 가져오기도 했다.
특히 일본 동경에 목초향연회사에서 만든 제품이 1900년대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담배가 인기를 끌며 자연스레 흡연자도 늘었는데 1903년 외국제 연초의 수입액이 42만 원이던 것이 1904년에는 무려 114만 원에 이를 정도로 그 수요가 폭증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료제공 : 인천시 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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