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中華街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5 16:19:57
인천 中華街-자장면의 유래(자유게시판에서)
[여행] 인천 중화가
-자장면의 고향으로 시간여행을 간다-
자장면의 고향은 어디일까. 중국의 베이징도 아니고 쓰촨도 아니다.
자장면은 19세기 말 인천으로 이주해온 중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자장면의 본향인 인천 선린동 차이나타운은
지금도 50년 전 모습 그대로의 뒷골목 풍경으로 멈춰서 있다.
퇴락한 모습으로 사라질 것만 같던 차이나타운.
그러나 중국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세인들의 시선을 받기 시작했다.
지하철 1호선의 시종착역인 인천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와 역 광장 앞에 서면
제일 먼저 눈을 끄는 것이 중국식 전통 대문인 패루다.
인천시 중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의 위해시에서 기증받은 것이다.
4개의 붉 은 기둥과 일곱 단의 지붕으로 이뤄진 폭 17m, 높이 11m의 패루 상 단에는
‘중화가(中華街)’라고 적혀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 장한 LA 차이나타운 풍의 패루를 들어서면 언덕길이 시작된다.
언 덕길 좌우편의 건물들은 입구에서 기대했던 화려한 중화풍 거리와는 다르게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언덕길을 올라서면 좌우로 중국풍의 2층 베란다를 갖춘 음식점과
화상들이 차이나타운에 대한 기대에 부응한다.
현대식으로 재단장한 음식점 자금성에는 2m 길이의 주전자로
손님들에게 엽차를 따라주 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 앞에는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전통중 국수제만두집 원보가 영업 중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생선물만두 를 맛볼 수 있다.
중국 서적과 토산품·문방사우·전통의상 등을 취 급하는 화상들도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중국요리집의 원조 격인 ‘공화춘’이 문을 닫자 그 뒤를 이어
풍미반점과 대창반점이 등장, 어깨를 맞댄 채 차이나타운의 명 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몇 년 전 개봉됐던 영화 <북경반점>의 촬영지인 공화춘이 들어서 있던 자리는
현재 텅 비어 있으며 퇴색한 건 물 간판만이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기름진 중국 음식을 싫어하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태화원이란 음식점에서는
곡물과 채소로만 만 들어진 중국채식요리를 내놓고 있다.
공화춘 주변을 거닐면서 잠시 자장면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차이나타운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1883년 제물포항 개항으로 청 나라의 문물이 들어옴으로써 자장면의 역사는 시작된다.
자장면은 베이징·톈진 방면에서 널리 만들어진 차오장맨 요리에서 나왔다.
개항과 함께 산동반도의 중국인 노무자들이 제물포항 주변에 상주했고
그들이 즐겨먹던 중국 된장인 춘장과 야채, 고기를 볶아 면에 올려 먹던 것이 자장면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1905년 공화춘이라는 청요리집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돼 자장면으로 팔리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개발 된 자장면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 본토로 역수출되고 동남아시아 의 식당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화교 학교인 화산중산중교를 지나면 마치
70, 80년의 세월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떠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건물이 즐비하다.
멀리 자유 공원 석정루가 보이고, 젊은 연인들이 밤을 새우고 나면
반드시 결혼에 성공한다는 전설이 깃든 18계단 옆에는
19세기 말 화풍의 2층 건물이 눈길을 끈다. 녹색 아치형 창틀에 적벽돌색칠을 했다.
비록 관리가 제대로 안된 빈 건물이지만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데는 손색이 없다.
근처에는 유형문화재 7호로 지정된 일본제일은행 지점 건물이 관광 특구의 홍보관 역할을 하고 있다.
64평의 석조 단층건물로 1899년에 세워졌다.
인천의 최초 금융기관인 이 건물은
모래·자갈·석회를 제외한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와 지은 것이다.
또 현재 인천시 중구요식업연합회가 들어서 있는
제58은행 인천지점은 유형문화재 9 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1939년 건립됐으며 석조기단위에 지상 2층의 건물로 1층 현관과 2층 발코니는 아치형을 이루고 있다.
이외 에도 청국영사관지와 영국과 일본의 영사관지 등 고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차이나타운과 연계해 도보로 둘러볼 곳으로 자유공원을 꼽을 수 있다.
자유공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성문처럼 세워진 홍예문이 담쟁이 덩쿨에 덮여 운치를 더해준다.
홍예문은 1908년 일본거류민단에 의 해 세워진 것으로
일제시대에는 일인 지역과 한인촌의 경계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천시 중구와 동구를 이어주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항과 월미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유공원은 1888년(고종 25 년) 미·영·러·청·일 등 각국 외교관의 공동 서명으로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이러한 연유로 만국공원으로 부르기도 했다.
일제시대에는 서공원으로, 광복 이후에는 만국공원이란 이름으 로 돌아갔다.
그 후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세우면서 ‘자유공원’이라 개칭됐다.
자유공원이 들어선 응봉산에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한·미수교통상조약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한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1982년 모습을 드러 낸 이 탑의 외형은 돛의 형태이며
인간·자연·평화·자유를 상징하 는 탑으로 구성돼 있다.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을 둘러봤다면 석양이 지는 월미도 문화의 거 리로 발길을 돌려본다.
월미도는 오래 전부터 수도권 시민들에게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맞은편 용유도와 영종도가 국제공항으로 탈바꿈하면서 월미도는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환영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푸짐한 밑반찬과 함께 나 오는 싱싱한 회 등 먹거리도 풍부한
문화의 거리에는 명성에 걸맞게 볼거리도 풍성하다.
문화의 거리가 끝나는 곳에는 야외무대가 준비 돼 있고
관계단체에서 준비한 행사 외에도 즉석에서 벌어지는 거리 공연으로
산책 나온 인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한편 그동안 군사보안을 목적으로 일반인들의 통행이 금지됐던
월미산이 개방돼 방문객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영종도국제공항이 한층 더 가깝게 보이며
인천항으로 들고나는 여객선이며 화물선들도 볼 수 있다. (제고넷에서발췌/글쓴이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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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중 "북경반점"의 촬영지는 "공화춘"이 아니고 해안동성당 오른쪽으로
몇번째 건물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네 다섯번째 건물을 지나
옛 잡화점 자리의 빈 건물을 빌려서 촬영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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