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기의 내일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3-10 18:12:27
대지기의 내일
지금 대지기라면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그 곳에 사는 주민이라도 알아들을 사람 별로 없겠다.
그 곳을 제물포역 뒤라고 하지만 그것은 경인국도를 중심으로 하는 설명이지 제물포역의 앞뒤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인천대학교가 자리한 위치라는 설명이 제일 간단하겠다. 예전의 대지기는 현재의 인천대학교 언저리였다.
인천 개항때 경인국도였다는 우각리 쇠뿔고개를 넘어 박문삼거리에 이르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졌었다.
하나는 제물포역을 건너 경인국도로 해서 서울로 가는 길이요 또 하나는 오늘날 주안역 뒤로 해서 주안염전 뚝에서 좁은 바다로 끊어지는 길이었다.
그리고 일대는 선인체육관까지 공동묘지였다. 제물포역 정면도 중국인 묘지였다. 1912년 중구 내동에서 이전해 왔다.
우리처럼 봉분이 아니라 붉은 벽돌의 사각형 묘실이며 그 시절 중국인의 장례 행렬도 가마를 메고 가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굴장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아무튼 오랜만에 그 옛길을 걸어 보았다. 새로 난 널찍한 대로 까닭에 끊어졌지만 그런대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우선 박문주유소를 지나 들어서면 더러 낡은 옛 대폿집들이 보였다. 얼마나 빗물이 샜었던지 아예 지붕이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70년대 초만 해도 동구밖 주막처럼 드나들던 곳이다.
그러나 역 주변에서 옛 도로는 제법 활기를 띠었다. 대학가 주변은 이런 곳인지. 비좁은 골목 안은 젊은이들을 부르는 듯 간판들로 가득했다.
복사점에 PC방 그리고 싸구려 간이식당이요 어느 집 대문에는 ‘자취방’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었다. 세탁소가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옛길은 역광장에서 잠시 끊어졌다가 인화여상 교문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학교의 벽돌담장을 끼고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마저도 도화시장으로 인해 미로가 되고 그 안에 갇힌 미아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 제물포 역세권 재개발지구로 지정될만도 했겠다.
인천시가 도화5거리에서 제물포역 도원역으로 이어지는 제물포역 역세권을 주거와 업무 교육 문화 등의 복합기능 입체도시로 건설키로 했다고 한다. 오랜 잠에서 깨어날 앞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남구 #대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