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2 12:37:58
인천에 상설형태의 어시장이 들어선 시기 역시 `인천개항'과 맞물려 있다. 개항후 1880년대 말 무렵부터 인천거주 일본인들이 늘면서 수산물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생선을 위주로 한 일본 음식문화에 따라 생선소비량이 급증한 게 주요 요인. 일본은 그러나 생선공급량이 달리자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일본은 1887년 6월 어류가 풍부한 남양-강화 근해에서 조업할 수 있도록 `포어(捕魚)제한규정'을 만들어 어로권과 함께 판매권을 따냈다. `근대식' 시설을 갖춘 어선을 앞세워 자기네 마음대로 고기를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 인천 연안부두 종합어시장-1.
당시 일본인들은 30여척의 동력어선을 투입해 인천 앞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그에 따라 어획량도 점차 늘었다. 하지만 수산물 유통구조는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890년 서울에서 내려온 정흥택씨 형제가 어물객주(수산시장)을 개설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이들은 내리(중구 내동)에 상점을 차려놓고 근해 어업자들에게 물량을 공급받아 독점판매한데 이어 1902년 신정동(중구 신포동)에 상설 어시장을 개설했다. 한옥형태로 지은 이 어시장에선 주로 행상인들에게 생선을 도매로 넘겼는데, 직접 가서 좋아하는 생선을 골라 사가는 일인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인천 한세기'저자 신태범박사(89)는 일제 때 어시장 풍경을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게를 메고 다니던 행상인들에게 생선을 통째로 사는 게 통례였지만, 일인들은 대개 어시장에서 필요한 만큼 횟감을 떠가거나 토막을 쳐서 사갔다. 특히 어시장엔 도미, 농어, 광어, 방어, 장어, 왕새우 등 일인들이 좋아하는 생선은 많았던 반면 숭어, 조기, 홍어, 준치, 병어, 갈치 같은 한국인이 즐기는 생선은 별로 없었다.”
정씨 형제의 어시장이 날로 번창하자 일인들도 경쟁적으로 어시장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 중엔 1905년 정씨 형제 어시장 바로 앞에문을 연 것도 있었다. 그러나 고객들이 적어 어려움을 겪자 판매전략을 바꿔 일인들을 상대로 값비싼 선어만 팔았다고 한다. 그러다 1907년 무렵부터 인천항 확장을 위해 해안매립 공사가 벌어지면서 어시장이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자 해안과 가까운 중구 북성동으로 어시장들이 옮겨갔다. 그 해 북성동 어시장은 인천수산주식회사로 통합된다. 일본은 이어 7년 뒤인 1914년 수산물 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시장규칙을 공포, 한인과 일인들이 운영하던 어시장을 제1공설시장으로 합병하고 인천부가 직영하도록제도를 바꿨다. 이후 1929년 11월부터 1931년 3월까지 북성동 해안 일대 3천668평을 매립, 공판장과 함께 대규모 어시장이 들어섰다. 지금의 대한제분공장 건너편에 어업용 제빙공장을 설립, 어선과 시중에 얼음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1940년대 들어 태평양전쟁을 치르던 일본은 북성동 어시장을 군량을 담당하는 병참기지로 사용, 수산물까지 배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해방 직전 인천수산주식회사는 경기도어업조합연합회로 이름을 바꾼 뒤 1961년까지 공판장과 어시장을 관리했다. 40년 넘게 수산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주)인천종합어시장 이정환사장(77)의 얘기를 들어보자.
▶ 인천 연안부두 종합어시장-2.
“60년대까지만 해도 거래되는 생선 중엔 조기가 가장 많았다. 초여름이면 집집마다 조기를 사다가 말리는 게 연중행사였을 정도였다. 북성동 어시장이 한창일 때는 선어부에만 150여개 점포가 있었다. 그리고 건어부 75개, 젓갈부 50여개와 함께 패류 등 기타 점포들이 300여개에 달했다.” 이 사장은 또 “어시장 주변엔 어부들과 수도권 지역에서 생선을 사러 온 상인들을 위해 식당과 여인숙도 즐비했다”며 “지금도 남아 있는 북성동 황해여관은 당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숙박업소였다”고 회고했다.
북성동 어시장엔 영종·용유·대부도 등지에서 나온 주민들이 주로 점포를 운영했다. 이 때까지도 영세상을 면치 못하던 대다수 상인들은 박리다매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으며, 일부는 광주리에 생선을 담아 머리에 이고 멀리 부평지역까지 걸어다니며 생선을 팔기도 했다. 인천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북성동 공판장이 오전 6시 일을 끝내면, 열차 화물칸에 선어를 실어 서울로 나르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74년 전철이 생기고, 차량운송이 일반화하면서부터는 이런 풍경도 사라졌다.
지금의 인천종합어시장 설립계획은 인천시가 1975년 연안부두 일대 180여만평을 매립, 도시정비사업을 벌이면서 비롯됐다. 어시장 부지는 북성동 어시장과 화수부두에서 장사를 하던 499개 점포주들이 경기은행에 적금을 들고 대출을 받아 공동으로 매입했다. (주)인천개발공사는 그 해 어시장개설 허가를 받아 북성동 어시장을 옮겼으며, 한동안 시장운영회에서 어시장을 관리하다 1981년 (주)인천종합어시장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천종합어시장의 박순관 과장은 “한창 땐 어시장에서 연간 1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지만 갈수록 근해의 어획량이 줄면서 매출액이 급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