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치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6 04:31:18
물치섬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북으로 바라보이는 봉긋하게 떠있듯 작은 섬이 작약도이다. 면적 0.031㎢에 해안선의 길이 1.2㎞라니까 섬이라고 할 것도 없겠는데 어쨌든 바다에 떠있으니 섬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에 외세가 밀려들던 시절 이 작은 섬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었다. 그때 양인들은 섬 주변에 병선을 정박하고 서울로의 진입을 꾀했다. 그것은 섬의 이름이 여럿인 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작약도의 원래 이름은 물치섬이었다. 그런 것을 허락도 없이 군함을 타고 온 서양사람들이 보아제니 우디 아일랜드니 했다. 병인양요때 프랑스인들은 저들의 주함 이름을 따서 보아제라고 했다. 그후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군은 우디 아일랜드라고 불렀다. 즉 나무섬이라는 뜻이다. 서양사람들은 배타고 다니며 어디서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섬을 보는대로 자기네 이름을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이때나 그때나 작약도엔 나무가 울창했던 듯하다. 이곳은 땔나무의 공급지여서 예전 해마다 가을이면 300속씩을 영종진에 공출했다고 한다. 작약도 역시 일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섬의 형태가 마치 작약꽃 봉오리 같아서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원래 이름을 잊고 지금까지 일본 이름을 고집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명학자 이형석씨에 의하면 물치는 한자의 표기요 우리의 토박이 이름은 ‘무치’라고 한다. 어린이가 물을 완전하게 발음 못하여 ‘무’라고 하듯 무에다 ‘치받치다’는 뜻의 치와 합친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치는 섬이 물치라는 설명이다.
아무튼 작약도는 일제때 일인의 소유였다가 해방후 그곳에 이모씨에 의해 고아원이 설립되었었으나 6·25때 폐쇄되고 자유당때는 함모씨가 귀속재산을 불법 불하받았다고 해서 떠들썩 했던 곳이다. 지금은 더러 소풍객들이 찾는 조용한 곳일 뿐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작약도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펴 준 미국인이 최근 내한하여 당시의 원생들과 52년만에 재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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