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7-03-14 11:10:47
대청도
감청 빛 바다에 떠있는 '시인의 별'
'바다'라는 우주 위에 떠있는 '별'처럼 대청도가 홀연히 보이기 시작할 무렵,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다시 한번 들쳐보았다.
소설가 이인화의 '시인의 별'. 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이 소설 속의 대청도는 그 거리를 가늠하기 힘든 절해고도(絶海孤島)였다.
그곳을 네 시간만에 왔다.
수백년 전, 대청도에 살았던 안현과 부인의 애틋한 사랑이 베어있는 감청 빛 바다가 섬 어디인가에 있겠지.
차르륵∼차르륵 하는 물결소리가 졸릴 듯 단조로운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끝내 비극으로 끝난 사랑을 애달파 하며 파도에 휩쓸려 섬 언저리를 기웃거리고 있는 그들의 한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대청도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해안선의 모양이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다 물은 손님처럼 다녀가며 대청도를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놓는다.
밀물 때와 썰물 때, 언제를 택해 그 바다에 가보았는가에 따라 이 섬에 대한 느낌은 크게 다르다. 선착장 바로 옆 답동해수욕장은 물이 빠지면 폭이 300m나 되는 모래운동장을 펼쳐놓는다.
그 해안선 끝 검은낭에는 성게, 전복, 해삼이 꼭 양식을 하는 것처럼 널렸다.
초보자라도 한시간만 갯바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걸터앉아 있으면 적어도 일주일 먹을 양식을 구한다는 곳이다.
답동해안을 내려다보며 벚나무 가로수가 가지런히 심어진 고갯길을 넘자 이내 바다를 안고 있는 큰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적어도 200살은 먹었을 소나무들이 사열하고 서있다. 여름에 이 길을 걷는 일은 냉동창고를 통과하는 일이다.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다와 맞닿아 있는 옥죽동은 집집마다 빨래 줄에 옷가지 대신 '팔랭이'가 널려있는 작은 포구이다.
예닐곱 척의 배가 매어있는 선착장 옆은 물놀이하기에 딱 좋은 해변이 펼쳐져 있다.
옥죽동의 바다는 소리 소문 없이 빠져나갔다가 돌아온다.
발목 정도 되는 깊이를 유지하며 물가에서 노닐다 보면 어느새 육지로부터 꽤 멀리 나와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모래사장의 굴곡에 따라 물이 빠지는 속도가 달라 바다는 모래 위에 형이상학적인 해안선을 그려놓는다.
감청 빛이란 바로 이곳의 물빛을 두고 하는 말이려니.
그 빛깔은 너무 진해, 옥죽동의 바다 속엔 하늘을 쏙 빼어 닮은 태양과 구름과 갈매기가 늘 들어 있다.
바다에서 그 옛날 원나라 순제가 귀향했다는 삼각산(340m) 쪽으로 눈을 돌리니 거대한 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가만, 그러나 산엔 나무가 없다. 대신 그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하얀 모래. 웅장한 모래사막을 만든 주인공은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수 백년, 혹은 수 천년 전부터 서서히 바람을 따라, 파도를 따라 먼길을 날아온 모래는 한 알 두 알 모여 어느새 언덕이 되었다.
맨발로 모래사막을 딛어 보았다. 태어나서 한번도 '사하라'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런 느낌이겠지.
옥죽동과 높은 동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바다가 농여이다.
양쪽에 제법 높은 부리가 불거져 있고 뒤로는 언덕이 싸안고 있어 안락하다.
부리에서는 학꽁치며 광어, 농어, 전어, 가자미를 잡을 수 있다. 대청도 해안은 갯벌이 전혀 없고 전부 고운 모래사장이다.
농여해수욕장도 마찬가지다. 물이 빠지면 폭이 700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모래사장이 펼쳐지는데,
밟으면 금방 부서져 버리는 희고 작은 조개가루와 모래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모래는 어찌나 곱고 단단한지 밟으면 엄지발가락과 뒤꿈치 자국밖에 남지 않는다.
이 해안의 절경은 제때 큰 바다로 쫓아 나가지 못하고 낙오된 바닷물들이 만들어 놓는다.
모래사장의 높이가 서로 달라 물이 빠지면 연못 같은 웅덩이가 모래사장에 서너 개쯤 만들어진다.
이곳 사람들은 그 물웅덩이를 두고 '골새'라고 한다.
아담한 골새는 자연이 만든 '어린이 전용 풀'이다. 고여있는 터라 물이 따끈따끈하고 깊이도 어른 무릎에 못 미친다.
물이 차면 골새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농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부리 뒤쪽 해안이 미아동이다. 농여와 미아동은 물이 완전히 빠지면 하나로 연결된다. 미아동 해안에 꽤 많은 자갈이 깔려있다. 한 200 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해안이 쌍을 이루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모래사장 위에 잔디 같은 풀이 자라고 있다.
미아동에서 차로 5분. 꼭 일부러 만든 것처럼, 지두리 해안은 일자형으로 반듯하게 생겼다.
모래사장 모양도 네모이고 파도 역시 일렬로 줄을 맞춰 차례차례 친다. 이 일대는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대청부채의 유일한 서식지이기도 하다.
지두리 해안에서 사탄동은 파도 소리도 들릴 만큼 가깝다. 말발굽처럼 깊게 패인 해안이
도로를 끼고 나란히 있는 사탄동은 혹 내가 동해바다에 온 게 아닐까, 착각하게 만든다.
대청도 서쪽 끝에 있어 먼바다에서 오는 파도가 곧바로 치는 터라 그 호흡이 크고 높고 깊다.
수영 좀 한다는 사람들은 파도 타는 맛에 이런 바다를 더 재미있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