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속의 섬-소청도 등대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7-03-14 11:08:54
섬속의 섬-소청도 등대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또 다른 섬, 등대
7월 7일 7시 40분, 데모크라시스 5호가 스크루를 힘차게 돌렸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뱃머리는 북으로 향했다.
핸드폰 눈금이 하나씩 사라지더니 이내 먹통이 된다.
속도가 붙은 배는 금방 육지로부터 멀어졌다.
3시간 30분간의 항해 끝에 소청도 선착장에 닿았다.
마중 나온 지프를 타고 등대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등대까지의 비포장 10리 길은 마치 고단한 등대지기 삶을
미리 엿보게 할 만큼 거칠고 험했다.
등대는 섬 동쪽 끝에 고고히 세워져 있다. 섬 속의 또 다른 섬, 등대가 그곳에 있다.
인천해양수산청 소청도항로표지관리소. 소청도 등대의 행정명칭이다.
1908년 1월에 처음 불을 켠 소청도 등대에는 팔미도, 부도, 선미도 등
인천 앞 바다에서 21년째 등대불을 밝히고 있는
이성배 소장(55세) 외에 두 명의 등대지기가 살고 있다.
등대 근무는 1일 3교대이다.
언뜻 보기에는 등대불만 켜면 할 일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딸린 일이 적지 않다.
등대의 불빛이 잘 보이도록 등명기와 반사경을 닦고 축전지와 발전기 등
각종 동력기관들을 기름칠하고 조이며 늘 점검한다.
뿐만 아니라 풍속, 기온, 풍향, 오늘 강수량과 어제 강수량 등
기상실황을 하루에 다섯번씩 인천기상대에 통보한다.
등대에서는 빛만 쏘아대는 게 아니다. 광파, 전파, 음파 등 3가지를 허공에 쏜다.
안개가 짙게 껴 빛이 무용지물이 될 때는 에어사이렌을 작동한다.
‘부웅∼’ 45초마다 한번씩 울리는 사이렌은 3마일 밖의 해상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다.
현대의 등대는 디지털 등대다.
파고측정기, 기상측정기, 컴퓨터, 팩스 등 등탑 옆의 사무실은
회사 전산실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각종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중 눈에 띠는 것은 DGPS(위성항법보정시스템). 인공위성을 이용한 자동항법장치로
각종 전파표지의 측정데이터를 수신하여 전송하는 장치이다.
옛날에는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쳐놓고 별의 위치를 기억해 다시 그곳을 찾아갔지만
요즘엔 등대의 DGPS와 배에 설치된 자동항법장치 덕분에 정확히 그물의 위치를 찾아간다.
그리운 세상 냄새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라는 시가 있다.
그러나 이미 등대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등대지기들은 가족과 떨어져 등대에 딸린 관사에서 기거한다.
가족상봉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휴가를 이용해 육지로 건너가 며칠 묵고 온다.
한 사람이 뭍으로 건너가면 둘이서 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서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등대에서 키우는 개하고 종일 놀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면 마을로 내려간다.
가끔 육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듣고 세상 냄새도 맡고 돌아온다.
그래도 요즘은 옛날보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초고속통신망이 깔리고 파라볼로 안테나가 설치돼 공간을 초월해
육지와 시시각각으로 ‘교감’을 나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은 공교롭게도 등대 직원들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이 소장만 그대로 남고 두 명의 등대지기가 교대된다.
부도 등대에서 근무한 김종환(47)씨와 정운섭(34)씨가 새로 오고
문봉배(44)씨와 백원경(43)씨는 떠난다.
문씨는 선미도 등대불을 밝히러 떠나고 백씨는 평택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보통 3년 정도면 다른 곳으로 배치되는데 돌다보면 한 등대에 서너번은 다시 오게 된다.
평택항 근무를 하러 소청도를 떠나는 백원경 씨는 3대째 등대지기의 삶을 살고있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등대지기가 돼 6·25 사변 때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목숨을 걸고 팔미도 등대불을 밝히기도 했다.
백씨는 팔미도 등대에서 태어났다. 등대지기가 된지 19년째지만
어머니 뱃속에서도 등대불을 느꼈기 때문에 자신은 43년 된 등대지기라고 농담을 던진다.
뭍으로 건너가면 다시는 등대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원하면 등대지기를 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핏속에는 등대지기의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숙명처럼 언젠가는 다시 등대불을 밝힐지도 모른다.
촛불 15만개의 빛
그들은 간단한 송별회 겸 환영회를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
만찬을 위한 요리재료는 등대 앞 바다에서 조달했다.
낚시대와 물갈퀴를 들고 갯바위에 섰다.
낚시줄이 드리워진지 얼마 안돼 놀래미와 송어가 연신 올려졌다.
이 소장은 물갈퀴를 신고 몇 번의 자맥질을 해서 해삼과 전복을 따올렸다.
해변에 솥단지를 걸고 자갈밭에 앉아 소박한 회식이 진행됐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자 모두들 자리를 털고 등대로 올라갔다.
몸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일몰시각은 19시 56분.
하루 여정을 끝낸 해가 바다 품으로 들어가자 등대지기는 등탑에 올라가 브라인드를 걷어냈다.
잠시 후 한줄기 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두 쪽으로 갈랐다.
15만 촉광(cd). 촛불 15만 개의 밝기다. 23마일(37㎞)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빛이다.
등대는 낮에 자고 밤에 깨어난다.
오늘은 반달이 떴고 별들도 보석처럼 촘촘히 박혀있다.
오늘밤만은 그들이 등대의 벗이 돼 줄 것이다.
등대지기가 되는 길
등대지기의 정식명칭은 항로표지관리인 또는 등대원이다.
등대원에게는 항로의 표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무선통신 등
각종 신호로 선박이나 무선국과 의사교환을 하기 위한 언어능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해상의 파고, 풍향, 풍속 및 신호장치를 조정하고 조작하기 위한 손재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립된 장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인내력과 책임감이 등대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등대원 시험은 특별채용시험과 공개경쟁채용시험이 있다.
특별시험은 18세 이상으로 전기, 통신 등 각종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 중에서 선발한다.
공개시험은 18세 이상 35세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일반상식과 항로표지일반의 필기시험을 치른다.
등대원은 인천, 부산, 여수, 마산, 울산, 동해, 군산, 목포, 포항, 제주, 대산 등
지방해양수산청에서 결원이 생길 때 채용을 실시한다.
따라서 먼저 근무하고자 하는 지역을 선택한 후
채용계획(해양수산부 홈페이지 www.momaf.go.kr에 게재)을 알아봐야 한다.
글 유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