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아나운서 1호 이옥경 - 인천문화통신 3.0
23. 3. 30. 오후 10:37
김윤식의 인천인물발굴 #10
인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중의 하나가 이옥경(李玉慶 1902~미상)이다. 순수 문화 예술인이라기
보다는 방송인 혹은 언론인의 범주에 두는 것이 옳겠지만 ‘문화’의 개념을 좀 더 넓게 확장해서, 인천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인 이옥경을 소개한다.
“약 40년 전, 조선 여성으로 고등여학교를 다닌 이옥경 여사는 인천해관 관리이자 제령학교 영어 강사였던 이학
인 씨의 무남독녀로 인천 최초의 일본 여학교 출신이다. 그녀는 경성방송국의 초대 여자 아나운서였다. 부군 노
창성 씨는 금년에 작고했다.”
이 글은 1955년에 출판된 고일(高逸) 선생의 저서『인천석금(仁川昔今)』「외국인 학교」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
천 최초의 일본 여학교는 오늘날의 인천여자고등학교를 말하는 것이다.
이옥경은 여학교 졸업 후 동경의 일본여자음악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그녀는 워낙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
였는데 거기에 일본어 실력까지 유창해 1927년 한국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 같은
공개채용이 아니라 남편 노창성(盧昌成, 1896~1955)의 추천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노창성은 조선총독부 체신
국 직원으로 방송국 설립의 기술 일을 맡아하고 있었는데, 개국이 가까워 시험 방송을 하던 중 아나운서가 모두
남자여서 청취하는 시민들이 딱딱하게 느낄 것 같아 미모에다 고운 목소리를 겸비한, 거기에 일본어까지 능통한
부인 이옥경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당시 모 잡지는 “그의 빛나는 두 눈동자, 배꽃같이 하얀 살결 동그스름한 그에 얼굴, 호리호리한 몸맵시, 명랑한
목소리는 그때의 방송국 안 여러 사람들의 눈을 황홀케 한 때가 많았다.”고 쓰고 있다. 이옥경의 아나운서 생활은
그리 길지는 않았고, 그 후 5남매의 어머니로서 평범한 삶을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
자이너로 알려진 노라 노는 그녀의 딸 노명자였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 i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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