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기부미 찹찹” “껌 기부 미”
인천의문화/김윤식의인천개항장풍경
2007-06-26 15:17:03
“헬로 기부미 찹찹” “껌 기부 미”
<기억 속에 남은 인천 개항장 풍경>
12. 미군 부대 주변
“이라크 전쟁이 벌써 삼 주째에 접어든다. 전쟁의 종말이 어떻게 될지 그 윤곽이 드러나는 듯하다. ‘남루한 이슬람 전통 복장 차림의 농가 주민들은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흔들어댔다. 마치 미군이 자신들의 해방군이라도 되는 양 싶었다. 특히 어린이들은 미군 차량을 따라다니며 뭔가 먹을 것을 구걸하기도 했다. 아이들 눈에는 이라크 군이든 미군이든 개의치 않고 뭔가 물자를 가득 실은 차량이면 무작정 달려드는 셈이다.’ 특파원들은 이렇게 간단하고 건조한 느낌의 기사를 써 보내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시작되던 때 어느 신문에 썼던 글의 도입부이다. 그러면서 그 모습은 꼭 반세기 전, 우리들 ‘쑈리·킴’들의 초상을 보는 것 같다고 썼다. 살아남기 위해 많은 아이들이 쑈리·킴 신세가 되어 미군 부대 주변을 배회했다. 미군과 우리가 얽혔던 그 폐허더미 위의 이야기들. 쑈리·킴! 이 말은 1957년, 작가 송병수(宋炳洙)가 쓴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그는 ‘쑈리·킴’에서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 놓았던 것이다.
“양키들이란 참 재미있는 자들이다. 근처에 얼씬만 해도 뭐 쑈톨이나 해 가는 줄 알고 ‘까뗌 보이 까라’고 내쫓는 뚱뚱보 싸징이나, 검문소의 엠피 같은 깍쟁이 놈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양키라면 한국 사람들보다 모두 좋았다. 그렇다고 뭐 먹다 남은 닭다리나 초콜릿 부스러기 따위를 얻어먹는 맛에서가 아니다. 양키들이란 먹을 것 입을 것이 워낙 흔하니까 그들이 먹다 쓰다 남은 것만 얻어도 쑈리는 같이 있는 따링 누나하고 둘이서 실컷 먹고 쓰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들, ‘쑈리·킴’들의 초상
경인 국도에 면해 있던 우리 집 앞에는 부평 에스캄 사령부 쪽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미군의 차량 행렬이 늘 꼬리를 물었다. 어느 때는 수륙양용 전차들이, 어떤 때는 야포 같은 중화기들이 끊임없이 지나가기도 했다. 그들은 종종 우리 집 근처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듯 길게 멈춰 서곤 했다. 가까이 다가가기는 겁이 났지만 좀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더구나 운이 좋으면 향내가 고운 츄잉 껌이나 납작한 깡통 잼, 아니면 초콜릿, 코코아 덩어리 같은 것들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일렬로 차를 세우고 나면 미군들은 모두 길에 내려서서 알 수 없는 말로 떠들어대거나 그 큰 키를 건들거리며 야릇한 몸짓을 해 보이곤 했다. 어떤 자는 국방색 깡통 속에 든 크래커에 잼을 발라 먹기도 하고 또 어떤 병사는 콩 통조림을 따기도 하는 것이다. 개중에는 또 길고 둥근 막대처럼 생겨 꼭 말의 ‘그것’을 연상케 하지만 부르기는 ‘소 모모’라고 부른다는 분홍색 고기를 손에 들고 먹기도 했다. 바라보는 우리들, 쑈리·킴들은 정말 목젖이 달아날 만큼 그것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하고 그저 비굴하게 “헬로 기부미 찹찹” “껌 기부 미”하는 따위의 주눅 든 소리나 내뱉을 뿐이었다. 유독 너그러운 친구가 있어 어쩌다 반 넘어 남은 고기 깡통을 내밀기도 하고 껌을 던지기도 하지만 그들 인종들 대부분은 “까뗌, 깨라이 히어” 어쩌고 하면서 매몰차게 아이들을 내몰았다. 하루는 미군이 던진 납작한 포도잼 통이 우연히 내 발 앞쪽으로 굴러 와 횡재를 한 적이 있었다. 횡재라고 말했지만 실은 그날 나는 그 잼 통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횡액도 또한 당했다. 그것을 손에 넣고는 나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건넌방의 할머니께 그 횡재물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안색은 차갑게 굳어졌다.
납득하기 어려운 할머니의 이중 잣대
“안동 김씨 집안 망했다. 나라 망하고 집안 망했다. 아니 네 녀석이 양코배기에게 구걸을 해. 당장 가서 회초리 가져오지 못하겠느냐?” 구걸이 아니었는데도 그에 대한 변명은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나는 할머니로부터 다섯 차례의 따끔한 회초리를 맞은 뒤에 놓여났다. 그야말로 잼 통이 가져다 준 난데없는 횡액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반세기 전, 내가 비록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어린 나이였지만 할머니가 내게 보인 이중 잣대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 안동 김씨 집안은 실상 그때 이미 가세가 기울대로 기울어 가족 모두가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미군들의 잔반(殘飯)인 꿀꿀이죽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대도 미군으로부터 정말 우연하게 횡재한 잼통은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다. 더욱 억울했던 것은 그 잼이 당연히 미군에게 반환되어야 했음에도 그것은 그때 막 두 돌을 지낸 막내 동생의 차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길목에 살았기 때문에 보지 말아야 좋았을, 낯 뜨거운 일도 종종 보게 되었다. 백주 대낮에 달리는 미군 트럭 위로 기어오르는 우리 동포들의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열차 갱 장면처럼 어쩌면 그렇게도 몸놀림들이 날렵했던지. 지금의 용현동 유공저유소 자리였을 것이다. 당시 POL이라고 부르던 미군 유류창을 출발한 휘발유 드럼 운반 트럭들은 옛 장안극장 위쪽 숭의동 308번지 일대를 관통하는 샛길을 통해 경인 국도로 나서는데 이 사거리에서 일단 정지를 했다가 부평 쪽으로 우회전을 했다.
미군의 물자는 우리들의 밥이요 의복이었다
이 길은 약 15도 정도의 경사가 져 있어서 트럭들은 그다지 빠른 속도를 내지 않고 달렸다. 바로 이 사거리에 도달하기 직전, 트럭이 더욱 속력을 줄일 무렵 골목에 숨어있던 청년들이 두 명씩 트럭에 기어오르는 것이다. 운전석의 운전병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냥 앞만 보고 사라지고, 그러면 골목에서 득달같이 구루마가 나오고 드럼통은 거기에 실려 어디론지 사라지는 것이었다.
간혹, 우연히 백미러로 이런 사실을 알아챈 운전병이 뛰어 내린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드럼통을 적재함에서 떨어뜨린 갱들은 이미 다 도망쳐 버렸고, 미군 혼자서는 도저히 그 무거운 드럼통을 올릴 수도 없는 일. 그 미군은 얼마나 황당하고 난감했을까. 그는 참으로 기가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얼마 동안 묵묵히 드럼통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깊게 찌푸리던 그 병사의 푸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결국 그는 숨도 크게 못 쉬고 있는 우리들을 흘끗 한 번 쳐다보고는 포기한 듯 그냥 트럭을 몰고 사라졌다.
학교 뒤 주안 방향으로 가설된 휘발유 파이프라인도 수난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송유관의 이음새는 야행성 ‘두더지’에 의해 풀려지고 밤새 인근의 논바닥은 모조리 자줏빛 유전(油田)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망가진 송유관을 수리하면서, 보다 못한 미군 경비병이 공포탄을 쏘아대도 벌떼처럼 모여든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저마다 깡통에, 물지게에 흘러나온 휘발유를 퍼 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모은 휘발유가 그들의 밥이요 의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툭하면 양담배가 트럭 채 도난당했네, 군용 담요가 몇 백 장 사라졌네, 하는 기사가 당시의 신문에 자주 특필되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말대로 한국인들이 ‘쇼틀해 버린’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윤리 도덕이 황폐해진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도의 배고픔 앞에 무슨 이성(理性)을 논하랴. 그렇게 부자 나라 미군의 물자는 무엇이든 돈이 되었고 그것이 우리들 쑈리·킴들을 연명시켰던 것이다.
끝나지 않는 이라크 사태를 보면서 가물가물 기억의 저편으로 스러져 가는, 지울 수 없는 지난날 우리들의 자화상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전쟁은 정말 불행한 일이고 슬픈 일이다. 감상이 아닌 냉정한 현실 판단과 국민의 힘! 그것이 전쟁의 불행을 막는 원동력이다. 이라크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빈다.
(* 이 글은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까지 반세기 전 인천에 대한 기억을 담은 내용이다. 이는 폐쇄된 특정인의 기억이 아니라 인천인들 모두가 공유해야 할 내용들이다. 따라서 격동기를 몸으로 체험하며 그것을 기억으로 재구성한 인천에 대한 공공의 기억이기도 하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에서 발행한 인천역사문화총서 25호 ‘인천개항장 풍경’ 가운데 인천문인협회 김윤식 회장이 집필한 부분을 양해를 얻어 발췌, 정리해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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