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우성의 미추홀

'만국'(萬國)의 부활 

by 형과니 2023. 4. 11.

'만국'(萬國)의 부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6-26 16:04:29

 

'만국'(萬國)의 부활 

미추홀 -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를 '독립에 대한 최후의 희망'으로 여겼던 대한제국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을 파견했지만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참석조차 못했다. 이것이 그간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만국평화회의 100주년을 맞아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학자들은 '일본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이미 열강들 사이에서는 대한제국의 불참이 확정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회의의 제안자 루스벨트부터가 그랬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뒤늦게 던져준 연구 결과이다. 간단히 말해 '만국(萬國)'에는 조선이 없었고 그 일원이라고 믿었던 것은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대한제국의 착오였다는 것이다. 결과는 3년 뒤 일제에 의한 강제 병합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물포 각국조계지의 외국인들이 저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었던 '각국공원(各國)'의 이름을 후에 '만국공원(萬國)'으로 고쳐 불렀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만국'에서 쫓겨난 현실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 없었던 것이다.

 

인천의 '만국공원', "중국인과 개는 못 들어온다"고 했던 '상해 만국공원'을 비롯해 '산동성 청도(靑島) 만국공원, 강서성 여산(廬山) 만국공원, 호북성 무한(武漢) 만국공원' 등과 같이 망국의 시대에 세운 저들만의 닫힌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천시가 망발을 해 신도시의 명칭을 일제 강점기 때의 정명(町名)을 부활시켜 '송도(松島)'라 하더니 이번에는 턱도 없이 사진 몇 장을 근거로 '만국공원'을 되살리겠다고 야단인 것이다.

 

건축학자, 사학자, 향토사가 등이 극구 반대하는데도 물경 276억원이나 들여 그를 강행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짐작조차 안 간다./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조우성의 미추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염전(鹽田)   (0) 2023.04.11
재개발   (0) 2023.04.11
세도(稅盜)이후   (0) 2023.04.11
성매매(性賣買)   (0) 2023.04.11
인설 차(茶)문화전   (0) 2023.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