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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297

1890년대 제물포 세창양행 사택 1890년대 제물포 세창양행 사택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20-01-06 19:09:25 1890년대 제물포 세창양행 사택 2023. 7. 3.
인천 중구에서 사라진 이름들 - 건물,풍물, 가지가지 것들 인천 중구에서 사라진 이름들 - 건물,풍물, 가지가지 것들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9-10-16 14:41:21 유흥,주점,식당등.. 인영고고장, 신광나이트, 올림포스호텔, 클럽다빈치 카네기, 대부스탠드바 인터내셔널 스탠드바 신한은행지하 앙앙 신포시장내 신포약국, 신포약국앞 백악관 스탠드바, 세계극장지하 뉴욕 스탠드바 향도회관,미스탠드바, 신포동의 백제호텔,백제호텔 뒤편의 갈채 스탠드바 인천항 스탠드바 신한은행앞 카무스"Camus"카페, 건흥아파트뒤 조이너스카페, 외환은행뒤 쟈이안트카페, 옛중구청옆 진고개삼계탕,전주비빔밥집 고금, 백제성, 이모집, 영주집, 고모집,큰우물집,골목집,,미미집,마냥집,신한불고기,조선옥,대동강,답동관,금화식당, 후생병원 신흥동일대 국제인쇄소, 이창원이비인후과, 심치과, .. 2023. 7. 2.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9-07-07 23:39:22 조미 수호 통상 조약 미국은 조선이 구미 국가 중 처음으로 근대적인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이다. 청의 이홍장은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미 간 조약 체결을 적극 지원했다. 조약문의 초안도 청과 미국이 각각 작성했다. 조선 측 대표인 신헌과 부대표인 김홍집은 이홍장과 미국 대표 슈펠트가 가조인한 조약안을 검토하여 홍삼과 미곡 수출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조인식 고종 19년 4월 6일, 인천부 제물포에 장방(帳房, 휘장을 두른 방)이 설치되었다. 조미 수호 통상 조규에 양국 대표가 서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촬영일 : 1882.04.06 촬영지 :.. 2023. 7. 2.
[인천 중구] 서공원 조선총독부 별저 - 존스톤 별장 [인천 중구] 서공원 조선총독부 별저 - 존스톤 별장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8-11-09 00:29:04 존스톤 별장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은 8개의 탑신으로 이뤄진 조형물이다.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탑으로 인간, 자연, 평화, 자유를 상징한다. 66년 전만 해도 이 자리엔 '존스톤별장'이란 건축물이 서 있었다. 영국인 존스톤(James Johnston)은 1905년 응봉산 정상에 여름을 즐길 별장을 짓는다. 그는 상하이(上海)에서 무역과 항만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 사업가였다. 응봉산 정상에 오롯이 서 있는 존스톤별장은 바다쪽에서 바라보면 중세시대 작은 성처럼 보였다. 다각형의 지붕과 붉은 기와, 굴곡으로 처리한 벽면은 매우 이국적이었다.. 2023. 6. 30.
서양인이 본한국 서양인이 본한국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8-11-06 23:38:39 1897.7.24 미국의 시사주간지 하퍼스 위클리 서울의 항구이자 철도종착역, 제물포 1860-1870 제물포의 일본조계거리 1880년대 제물포의 조선인거리 1880년대 제물포의도시와 항구 1880년대 제물포항 1880년대 조선여행 1880년대 말타고 한국유람1 말타고 한국유람2 서울과 제물포를 잇는 임시철도 1890년대 한국의 주요항구인 제물포 1900년대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자료총서 17 (대한제국 자료집 2) 이 자료집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신문과 잡지의 한국 관련 기사 75건을 선정하여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수록한 것이다. 자료집에 수록된 기사 75건은 , , 등.. 2023. 6. 30.
대불호텔과 중화루의 이야기 대불호텔과 중화루의 이야기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8-05-30 23:12:22 開港百年 7 세력다툼의 현장 - 인천의 3地界 中 *대불호텔과 중화루의 이야기* [중략] 얼핏 보기에는 청국지계 같지만 일본지계 첫머리자리 중구 중앙동 1가17에 청국풍 건물양식의 허름한 3층건물 중화루가 있다. 4인교나 당나귀를 타고 서울을 가야했던 그 당시 한국을 찾는 구미인은 인천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을 수 없었다. 중화루는 바로 이점을 노려 1887년 일본인 '호리 리기타로오'가 지은 호텔이다. 이름은 '대불호텔' 훌륭한 양식침실및 식당을 갖추었다 한다. 한동안 재미를 보다가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된 후부터 수지가 맞지 않아 중국인에게 팔아 넘겼다. 중국인은 건물을 개조 '중화루'란 간판을 내 걸었다 이때부터.. 2023.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