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의염전이야기17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1)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1)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30:39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1) 인천의 염전저수지와 갯골의 바닷물은 어딜가나 깨끗해서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과 어른들의 꿈결 같은 놀이터였다. 무좀환자들은 별도의 약을 바르거나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 한 여름을 갯골이나 저수지에서 즐겁게 보내고 나면 신기할 만큼 무좀치료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마을 앞 갯벌과 바닷물은 깨끗했으며 청정지역이었다. 그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으니 질 좋은 소금이 생산되는 것은 당연했다. 산업화가 되기 이전, 고향에서는 어업과 농사일을 제외하고는 염전에 염부로 취직을 하는 것은 웬만한 줄을 갖고는 여간 어렵지 않았다. 염전일은 노동 중에도 상 노동이다. 태양열로 증발시킨 소금물은 .. 2023. 3. 13.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0)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0)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29:57 삶의 애환 가득 소금의 고장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0) 인천의 염전은 1930년대 초 일인들이 소금을 수탈 해 가기위해 주안염전을 시작으로, 남동염전, ‘소래염전을 건설했다. 그 규모와 소금 생산량은 전국에서 제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천 하면 ‘소금,’ 그리고 인천사람들을 ‘짠물’이라고 군대에서 자연스럽게 형성 된 말이 아닐까? 주안염전, 남동염전이 산업화에 밀려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1996년 7월30일 소래염전을 끝으로 인천사람들의 추억과 삶의 애환이 가득했던 소금의 고장 인천의 염전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인천사람들은 염전의 추억이 있다. 수인선 기차를 타고 남동역, 혹은 소래역에 내려서 염전 저.. 2023. 3. 13.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9)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9)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27:15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9) ‘소금이 없었다면 인류는 존재할 수가 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소금이 소중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소금의 용도는 다양하다. 식용, 화학약품제조용, 화약의 원료, 한약재, 옷감 물들이는데 등,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소금은 필수적일 것이다. 특히 인천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염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유익한 아미노산이 함유돼 있어서 일본사람들이 한국의 천일염을 제일로 쳤다고 한다. 예부터 소금장수하면 돈 많은 부자로 알려질 만큼 소금의 가치가 높았으며, 귀하고 값비싼 금덩어리에 비유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소금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월남전에 참전해서였다... 2023. 3. 13.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8)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8)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26:24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8) 송 이병이 일등병으로 진급을 하고나서 필자는 제대를 했다. 제대 하루 전날 막걸리 파티를 했는데 그는 막걸리 주전자를 통째로 들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내 손을 잡고 나이에 맞지 않게 엉엉 우는 것이었다. 필자도 덩달아 함께 우는 바람에 내무반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기씨….” 송 이병과 어깨동무를 하고는 그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고참들 속옷까지 빨아주던 개울가로 갔다. 그와 함께 하얀 눈 위에 벌렁 누었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서러움과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송 이.. 2023. 3. 13.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7)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7)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25:34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7) 나이는 송 이병이 많지만, 내가 군대는 2년이나 먼저 입대했기 때문에 군대문화에 관해서 말문을 열었다. 3년동안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방법은, 무조건 참고 자기 계급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천사람을 ‘짠물’이라고 해서 상급자에게 폭행을 한다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고 했다. 제대할 때까지 아무 사고 없이 죽어지내는 것도 삶의 교훈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집에 두고 온 아이와 부인에게 줄 소중한 선물은 떳떳하게 제대복을 입고 귀향하는 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송 이병은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쳐 내리더니, 사실 두고 온 가족이 보고 싶.. 2023. 3. 13.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6)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6)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24:55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6) 송 이병을 불러서, 군대는 잔밥순이니 김 이병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기로 영창을 가면 같지 저런 놈은 본 떼를 보여 줘야 한다고 했다. 비록 송 이병은 배움이 적었지만, 그 힘든 염전에서 염부로 일한 탓에 인생 경험이 많은 듯 했다. 늦은 나이에 가족을 두고 군대에 잡혀 왔지만 마음은 착한 사람이었다. 필자는 되도록이면 송이병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했다. 고향사람이기도 했지만, 처자식을 두고 잡혀온 그에게 동정심과, 염전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친근감이 더했다. 처음에는 경계를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동향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조금씩 속마음을 열기 .. 2023.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