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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중구의 미래

by 형과니 2023. 7. 3.

중구의 미래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20-02-25 01:29:09

 

 

중구의 미래

 

 

우리 고장 인천이 개항된 1883년부터 중구는 인천의 중심지였다. 외세에 의해서 개방

 

되었다는 한국 근대사의 숙명에서 인천도 예외일 수는 없지만 개항에 이어서 진행된 항

 

구도시의 건설은 중구에서 시작되었다.

 

 

 

한반도에 진출하려는 일본과 중국을 비롯하여 구미(歐美)열강세력들은 인천을 교두

 

보로 삼았다. 인천에 거주민 집단을 형성한 일본과 중국에 이어서 구미 각국의 외교관,

 

선교사, 사업가들이 중구에 터전을 잡았고 인천을 경유하여 수도 서울로 진출했다. 특히

 

대규모 거류민단을 형성한 일본은 인천을 한반도 진출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그들의 야

 

욕을 차츰 드러내 보였다. 항만시설을 확충하고 통신(우편·전신) 업무를 시작하는가하

 

면 일본정부를 대표하는 영사관을 설치하여 그들의 야욕을 실현하는 무대로 삼았다.

 

 

 

중국을 위시하여 구미열강세력들도 인천을 교두보로 삼아 우리나라에 진출하여 세력

 

을 확장하고 있었지만 개항된 지 27년 만에 한일합방이라는 국가적 비극 이전에도 일본

 

세력이 인천을 주름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압도적 다수였던 거류민단의 규모와 항구도시

 

인프라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 대

 

한 일본의 영향력이 국제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그들의 침략야욕이 노골화되면

 

서 인천은 급속도로 일본도시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중국 거류민들이 중심이 된 청

 

(淸館)과 미국, 독일, 영국 출신의 선교사와 사업가들이 인천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었

 

지만 일본세력에 비해서는 소수집단에 불과했다.

 

 

 

외부세계에서는 제물포(CHEMULPO)라고 불리던 인천이 그나마 국제 항구도시로 인

 

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인천항을 오가던 독일과 프랑스의 부정기 항로와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항로가 있었고, 인천에서 사업을 벌이던 세창양행(世昌洋行) 등 유럽계 상사들

 

의 존재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일합병 이전까지 중구는 일본 조계(租界)를 비롯하여 청

 

국 및 각국 조계가 자리 잡고 있던 지역이었고,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인정받는 중심지이

 

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반도 정세를 취재·보도한 유럽이나 미국의 신문을

 

보면 제물포를 국제도시로 묘사한 기사와 삽화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사진엽서들도 일본식 도시로 변모하고 있던 제물포의 유럽식 건물들을 소개하고

 

있어 국제항구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존스턴 별장을 위시하여 세창양행 사택 등

 

은 물론 일본인들이 세운 유럽식의 은행건물들도 국제도시 인천의 면모를 대표하는 상

 

징물이기도 했다.

 

 

 

이 같은 국제도시 인천의 면모는 한일합병과 함께 급변하기 시작하여 철저한 일본도시

 

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식 건물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서양인들은 차츰

 

인천을 떠나기 시작했고 오늘의 중구 일대는 일본인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

 

중구에 인천이라는 도시의 중요기관이 자리 잡게 된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인천부

 

청을 위시하여 경찰서, 법원, 세관, 우체국, 금융기관, 교육기관, 종교시설, 의료기관 등이

 

중구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외국인 상사를 비롯하여 각종 회사들과 공장들이 중구에

 

터전을 마련했고 크고 작은 상업시설역시 중구를 중심으로 영업활동을 하게 되었다.

 

화관이나 서점 그리고 언론기관 같은 문화·예술 기관이나 시설도 중구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개항 초기로부터 시작하여 한일합방을 거쳐 일제의 강점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인

 

천의 일본식 도시화는 계속되었고 숙명적으로 중구는 그 중심지였던 것이다.

 

 

 

오늘의 중구 일대는 따라서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일본인 집단

 

거주 지역이자 일본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항 이후 중구가 중심이 된 인

 

천은 우리나라를 근대화하는 각종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나라 전체에 파급시키는 선

 

도자 역할을 지속해 왔다. 교통, 통신, 교육, 종교 등 근대국가건설의 핵심이 되는 선진국

 

의 문물이 인천을 통해 도입되고 인천에서 시작되었으며 오늘의 중구는 그 핵심위치에

 

있었다. 인천에 자리잡은 외국인 상사와 제조업체에서는 해외에서 수입되던 생필품을 우

 

리나라에서 최초로 생산하는 역사의 또다른 장을 열기도 했다. 따라서 제조업에서도 중

 

구는 인천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일본인들이 물러난 중구 일대는 광복 직후의 혼란기에서 또 다

 

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남북분단과 함께 북쪽에서 밀려든 이북 출신 동포들에게 주거공

 

간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을 인천시민으로 따뜻하게 맞이한 것은 우리 현대사에 확

 

실하게 남겨야 할 인천의 중심지였던 중구의 역할이었다. 서부 충남권을 위시하여 인근

 

의 도서지방과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인천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에

 

게도 일거리와 주거공간은 물론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인들의 철수에 따른 생활공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천시민들의 포용

 

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고장 인천, 특히 오늘의

 

중구는 일본 도시로서의 숙명적 원죄(原罪)에서 벗어나 거듭 태어나게 되었다.

 

 

 

인천의 역할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6·25전쟁 초기에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북한의 기습공격에 한반도 전체가 적화위협에 당면했을 때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을 통해서 전세(戰勢)를 역전시켰다. 오늘날 인천 중구 일대가 상륙작전의 주무대가 되

 

었고 인천상륙에 있어서 수도 서울이 탈환되고 38선을 돌파하여 압록강까지 진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사에서의 팔미도 등대와 월미도 포격 그리고 인천시가지로

 

의 진군 등은 한국전쟁 역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영원히 기록되고 있다. 역사에는 가정법

 

대입이 불가하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만약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한국전쟁의 양상과 한반도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고장 인천과 오늘의 중구

 

가 인천상륙작전의 주무대였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중구가 차지하는 또 다른

 

의미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과거 일본인들에 의해서 조성된 오늘의 자유공원에 인천항을 바라보는 맥아더 장군 동

 

상이 있고 일본인들이 송도(松島)라고 명명했던 곳에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건립된 것

 

은 중구의 역사적 발자취를 되돌아 볼 수 있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인천의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되었다. 1940년에 17만 명이었던

 

인천인구는 1949년에 26만 명으로 늘었다가 전후 복구와 함께 1959년에는 36만으로,

 

1967년에 50만 명을 돌파했다. 1978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서고 1987년에는 150

 

, 1992년에 200만 명, 1999년에는 250만 명을 넘어섰다.

 

.

 

이 같은 인구팽창시기에 중구의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다. 1960년대까지

 

만 해도 오늘의 중구와 동구에 편중되었던 인천인구는 공업단지와 함께 배후주거단지가

 

새로 생겨나고, 1989년에는 경기도의 영종면, 용유면, 계양면이 인천에 편입되었다.

 

1995년 광역시로 재편되면서 강화군과 옹진군이 또다시 편입되어 250만을 초과하는 한

 

국의 3대 도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인천은 1970년부터 한국최고의 4.2배에 달하는 인구

 

증가율을 보였으나 중구는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중구는 인구 감소에 그치

 

지 않고 인천의 중심부로서의 도시기능까지도 서서히 박탈당하기 시작했다.

 

 

 

인천시청이 허허벌판과 다름없었던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함을 계기로 법원, 검찰청,

 

교육청, 경찰청, 금융기관의 본점 등이 아무 대안도 없이 중구를 떠났다. 그나마 인천의

 

상징으로 중구에 남아 있던 인천우체국마저 2000년대에 중구를 떠나 연수구로 옮겨가

 

고 옛 인천우체국은 중동우체국으로 격하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재래시장의

 

대명사였던 신포시장과 번성했던 주변 상권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들이 중

 

구를 떠나고 인구가 감소하는 과정에서 구도심 중심부였던 중구가 쇠락하는 것은 당연

 

한 귀결이었다. 그나마 영종·용유도가 중구에 편입되고 인천국제공항이 이곳에 세워지

 

지 않았다면 중구의 인구감소폭과 쇠락속도는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직후의 혼란시대와 전후복구시대에서 주역을 담담

 

했던 중구의 역할과 위상은 행정구역확대와 인구증가 그리고 도시균형발전을 외면한 도

 

시계획 때문에 상대적으로 왜소해지는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창구였

 

고 분단 상황과 도시화 과정에서 외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용하고, 6·25

 

전쟁의 전기가 되었으며, 광역도시로 발전하는 중심부에 있었던 중구의 위상과 역할은

 

불행히도 급격히 쇠퇴되고 말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중구는 동북아의 허브도시와 물류센터를 지향하는 인천의 중

 

심지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중구에는 수도권의 육로(陸路), 해로(海路),

 

공로(空路)를 담당하는 기간시설과 기능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허브도시로의 필요조건

 

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중장기 계획이 성안(成案)되고 집행되고 있기도 하다. 수도권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이 인천으로 자리 잡은 것도 절묘했지만 공항이 중구 영종동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중구의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은 개항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문으로서 역할을 확실하게 수

 

행하고 세계적인 명품공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5천만 인구를 가진 세계 10위권

 

의 무역대국에 위치한, 절대치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가진 공항이라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공항 건설단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적인 노하우와 기업가 정신의 운

 

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항 건설과정 때부터 인천공항의 성장 잠재력을 정

 

확하게 판단하고 공항확장과 배후시설을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것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인천공항의 운영에 있어서도 낙하산식의 관료출신 인사들을 배제하고 시장경제의 현

 

장에서 경륜을 쌓은 인사들을 CEO로 영입한 것도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인천국제공항의 건설과 운영에 인천광역시는 물론 행정구역상 직접 연관되는 중구역시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길은 원천적인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지방정부와 우호

 

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구축했던 것도 성공의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인천국제공항은 승객은 물론 화물 총량으로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국제공항

 

이 되었다. 인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회사와 취항 도시도 다른 나라들의 대표적인 국제

 

공항들에 앞서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인천국제공항은 또한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 측면에서도 국제적인 찬사를 받고 있고 여

 

러 기관들로부터 권위 있는 상을 수여받는 영광을 안았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승객들은

 

물론 항공교통의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의 승객들까지도 인천국제공항의 쾌적함과 서비

 

스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게이오 대학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오코노

 

기 마사오(小比木政夫)는 인천공항의 효율적이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체험하고 일본의

 

나리타[成田] 공항에 내리면 시골 공항에 온 것 같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앞으로 인천국제공항이 A380과 같은 초대형 여객기의 취항증가를 예상하여 활주로와

 

공항시설을 확충하고, 항공화물의 동북아지역센터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한 현대

 

식 화물취급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와 동

 

시에 항공과 해운화물의 효과적인 상호호환을 통한 물류센터로서의 역할도 기대되고 있

 

.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정책당국과 국적항공사 그리고 인천

 

의 지방정부와 인천국제공항이 함께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때 중구에 자

 

리 잡은 세계적인 공항의 위상이 또 한 차례 격상될 것이다.

 

 

 

항구도시 인천의 주요 항만시설도 중구에 자리 잡고 있다. 동양최대의 갑문식 도크 시

 

설을 갖춘 인천항은 우리나라 근대사와 궤적을 함께 하면서 그 역할을 지속해 왔다.

 

특히 196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이 진척되면서 인천항은 수출입국(輸出立國)

 

을 지향하는 한국의 주요 무역항이자 수도권과 세계 각국을 연결하는 해상물류센터로서

 

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인천항의 화물처리능력과 이를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각지로 연

 

결시키는 대규모 물류조직은 한국 경제의 도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

 

이 같은 인천항의 기능과 한국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내항(內港)에서도 오늘날까

 

지 원료화물을 취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구 주민들, 특히 내항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

 

들에게는 환경문제를 야기시키고 대형화물트럭이 도심을 통과하는 교통문제 등으로 시

 

민들의 삶의 질과 쾌적한 주거 환경확보에 걸림돌이 되어 왔다. 그동안 중구 주민들은 내

 

항에서의 원료화물취급과 이에 따른 환경·교통문제를 인내해 왔다. 근년 들어 대체항만

 

이 신설되고 고철 같은 극심한 공해유발 화물이 내항을 떠나기는 했지만 130여 년 동안

 

도심부에서 항구기능을 계속해 온 내항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친수공간계획이 입

 

안되고 실천되어야 하겠다. 이 길만이 그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온 중구 주민들,

 

히 내항 주변 주민들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어업기지로서의 인천항 역할은 그동안 많이 쇠퇴되었지만 연안여객선의 취항노선수

 

와 여객수는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에 따르면 2009년 인천항의 12

 

개 연안항로 이용자 총수는 140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 중국의 10개 도시를 연결하는 국

 

제항로 이용자는 7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앞으로 인천 근해도서를 대상으로 한 생태자연관광 등으로 관광객이 증가하고 중국과

 

의 인적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면 인천항을 중심으로 하는 여객선 노선도 늘어나고 이용

 

자들도 계속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하튼 인천 내항이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문화·예술시설이 들어

 

선 후에도 인천항은 계속해서 고부가가치를 지닌 청정화물을 주로 취급하고 연안 및 중

 

국 대륙을 연결하는 여객선 노선이 확장되면서 세계적인 크루즈선들이 즐겨 찾는 항구

 

로 변모될 것이다. 또한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요트와 같은 유람선들이 정박하는 항

 

구가 됨으로써 명품도시 인천에 걸맞는 아름다운 항구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인천의 육상교통역시 중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중구가 시발점이 되고 있다. 우리나

 

라 최초의 철도가 인천을 시발점으로 초기에는 노량진까지 그 후 서울역까지 연결되었

 

, 최초의 고속도로도 인천(중구)과 서울 간에 건설되었다. 그동안 중구에서 발차하여

 

서울역까지 주행하던 경인철도는 복선화와 전철화를 거쳐 이제는 복복선 전철로 운행되

 

고 있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고 신도시와 새로운 주거단지가 계속 건설되는 과정에

 

서 경인축의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경인전철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새로운 주

 

거단지가 생겨날 때마다 새 역이 신설됨으로서 경인전철 출발지 중구에 위치한 인천역

 

과 동인천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서울역까지의 소요시간이 계속 연장되는 바람에 상대

 

적으로 불이익을 당해 왔다. 경인축으로의 인구집중과 새로운 역이 계속해서 생겨남으로

 

서 주로 중구 주민들인 시발역 부근의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던 것이다.

 

 

 

앞으로 인천시 당국과 중구청은 철도공사를 상대로 진지하고 전문가적인 논의를 거쳐

 

현재 복복선으로 운행되는 경인전철에 다양한 급행열차를 운행토록 함으로써 그동안의

 

불이익을 겪었던 출발지 주민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했으면 한다. 서울 도심부까지의

 

소요시간 단축은 중구의 발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인고속도로는 인천 중구에 시발점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로 초기에는 인

 

천항을 통한 화물수송에 큰 역할을 하다가 자동차 보급률이 늘어가면서 경인지역 거주

 

자들의 승용차들도 대거 이용하는 도시간 교통망 역할을 계속해 왔다. 종전의 2차선을

 

3-4차선으로 확장했으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계속 증가하여 이미 고속도로 기

 

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더구나 그 동안의 통행료로 건설비용 이상이 징수되었고, 차량폭

 

주로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했다는 이유 등으로 통행료 폐지 여론이 비등했으나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조속한 시일 내에 경인고속도로의 무료화를 실천에

 

옮겨야 하겠다.

 

 

 

중구는 또한 서해안 및 영동고속도로의 시발지이기도 하며 현재 건설 중에 있는 수인

 

전철의 시발지이기도 하다. 수도권을 관통하는 전철과 고속도로 뿐 아니라 한반도의 동

 

쪽과 서남쪽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은 중구가 인천광역시 내에서 지

 

 

 

닌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수인 전철이 완공되면

 

중구에 자리 잡은 인천역에서 시발하는 수원행 전철이 경부선의 KTX와 연결되어 기존

 

경부고속철도 이용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중구는 동북아시아의 허브도시로서 물류중심지를 지향하고 있는

 

인천의 핵심지역이다. 공항과 항만이 모두 중구에 위치해 있고 철도와 고속도로의 시발

 

점도 모두 중구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육··공 교통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새로

 

운 부가가치와 고용창출을 기하는 한편 그 동안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아왔던 중구주민

 

들의 권리를 찾음으로써 삶의 질과 쾌적한 생활공간 그리고 친환경적 도시계획을 빈틈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하겠다.

 

 

 

중구는 인천시가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계적 명품도시를 만들기 위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천이라는 도시의 발상지이며 허브도시 인천

 

의 육··공 모든 분야의 교통시설이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신시가지와 새로운 주

 

택단지 건설로 중구를 위시한 과거 인천 구도심지역은 쇠퇴를 거듭해 왔다. 구도심의 쇠

 

퇴에 따라 중구역시 상주인구의 감소와 노후주택의 증가라는 고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하

 

고 있다. 구도심의 인구가 신시가지의 새로운 주택단지로 빠져 나감으로써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중구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도심 일대를 도시의 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도시계획 이념으로 재개발하지

 

않으면 명품도시가 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중구 일대의 도시재개발사업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천시 당국과 중구청은 인천의 역사와 유적이 상대적

 

으로 많이 남아있는 중구 일대를 문화·예술의 본거지로 만들고 해양관광도시화하면서

 

매력 있는 인천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고 있는 것

 

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선 인천시는 중구에 위치한 내항 일대를 친수공간화하여 문화·예술시설을 유치하

 

여 인천의 명소를 만든다는 기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인천 내항 재개발 문제는

 

지역사회와 시민단체들로부터의 끈질긴 문제제기와 재개발의 주체(主體)와 방향을 놓

 

고 의견수렴을 계속해 왔다. 내항개발을 위해서 주상복합시설을 유치하겠다는 중앙정부

 

의 초기발상은 시민단체들과 인천시에 의해서 비판을 면치 못하고 일단 문화·예술시설

 

로 방향이 잡히고 있는 것은 중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인천시 전체를 위해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내항 재개발 문제에 대해중앙정부의 재정투자와 시비(市費)

 

투입해서 문화시설을 갖춘 친수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언급하고그러나 일

 

부 필요한 상업시설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천시정 최고 책임자

 

의 언급을 통해서 오랫동안 논란의 초점이 되어왔던 내항 재개발 방향이 일부 상업시설

 

과 함께 문화·예술시설이 들어서는 친수공간으로 최종 정리된다면 중구의 숙원이던 내

 

항재개발 문제는 일단 실마리가 풀리게 된다.

 

 

 

앞으로 인천시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시립미술관을 위시하여 현 시립박물관의 이전

 

을 전제한다면 모두가 친수공간화되는 내항지역으로 유치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내항

 

인근에는 인천아트플랫폼이 옛 벽돌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들어서고, 인천문화재단이 둥

 

지를 틀면서 인천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산실로 점차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시점

 

에서 친수공간을 전제로 재개발되는 내항에는 시립미술관 등 인천의 대표적인 문화·

 

술시설이 위치함으로써 내항 일대를 매력 있는 지역으로 가꾸는 중장기계획수립이 시급

 

하다고 하겠다.

 

 

 

중구 일대가 문화지구로 지정되어 개항지 일대가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천시와 중구청은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인 신포동·

 

북성동 및 동인천동의 537,114를 인천개항장 문화지구로 지정함으로써 중구에 자리

 

잡고 있는 개항장 일대의 다국적 도시경관과 근대 건축물 등은 중구의 특화산업으로 육

 

성하고 지원받게 된다.

 

 

 

서울의 인사동에 이어서 두 번째로 문화지구 지정이 추진되고 있는 중구 일대는 앞으

 

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대한 법률에 따라 개항당시 건물에 대한 보존이 체계적으로 가

 

능해지고 무질서한 개발은 불가능해 진다. 또한 조세를 비롯해 취득세와 등록세 등에 대

 

한 감면조치와 신축건물에 대한 각종 제한조치가 뒤따르는 등 문화지구에 대한 각종 혜

 

택이 법제화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된 중구청의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괄목할 만하다. 문화지구로 지정되는 중앙

 

동과 해안동 일대를 역사와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기 위해 보도와 차도를 재포장하고 하

 

수관을 보수하는 한편 가로등을 새로 설치하는 등 거리경관을 새롭게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과거 일본제일은행 건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건물에는 인천개항박물관

 

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박물관에는 인천개항 당시의 귀중한 자료들과 함께 우편, 철도,

 

화폐 등 인천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각종 문물들이 체계적으로 전시된다.

 

중구청은 또한 북성동에 위치한 옛 공화춘 건물을 매입하여 가칭 자장면박물관 조성사

 

업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자장면박물관에는 인천에서 처음 만들어져 이제는 국민적 음

 

식이 된 자장면에 관한 각종 자료들과 함께 청관 일대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거주해 온 인

 

천화교들의 역사와 생활상들도 함께 전시될 예정으로 있다.

 

 

 

개항기 역사사료관 조성도 구체화되고 있다. 중구청은 중앙동 2가에 위치한 과거 일본

 

은행 건물을 매입하여 개항장과 근대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을 조

 

성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개항당시 인천의 역할과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관련 자료

 

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게 된다.

 

 

 

이 같은 일련의 사업이 완결되면 문화지구로 지정되는 중구 일대는 이미 개관 중에 있

 

는 근대건축전시관과 제물포구락부를 위시하여 개항박물관, 자장면박물관, 역사사료관

 

등 박물관 벨트가 조성되어 새로운 명소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인천 아트플랫폼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활동과 전시가 활성화되고 추진 중에 있는 박물관 벨트가 모두 완

 

성되면 중구의 문화지구는 서울의 인사동 못지않게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매

 

김하면서 명품도시 인천의 역사와 유적들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교육현

 

장으로 등장하게 된다.

 

 

 

중구가 벌이고 있는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 도심관광자원개발계획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발생적 차이나타운인 청관은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6·25전쟁 이후 침체와 쇠락의 길을 걷던 청관은 한·중 관계가 정

 

상화되고 양국 간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과거의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와 동시에 중구청에서도 인천의 차이나타운을 관광지로 조명 받을 수 있게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자장면축제를 정례화하는등 청관지역 활성화에 지속적인 배려를 계속해 왔다.

 

 

 

이같은 차이나타운 활성화사업은 이미 개관 중인 한중문화원 일대를 정비하고, 월미

 

도 모노레일이 완공되고 자유공원의 창조적 복원사업이 완결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모노레일을 통해서 차이나타운과 연결되고

 

청관과 인접한 자유공원 일대가 차 없는 거리로 정착되면 월미도 - 차이나타운 - 자유

 

공원 축과 한중문화원 - 자장면박물관 - 개항박물관 - 근대건축전시장 - 개항사료관

 

의 박물관 벨트와 함께 내항의 친수공간과 문화·예술시설이 복합적으로 조화되어 중구

 

일대는 인천의 매력있는 지역으로 내외 관광객 유치에 앞장서게 될 것이다.

 

 

 

중구청은 차이나타운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중국어마을 조성사업을 2007년도부

 

터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중 3개월 과정으로 중국어 어학강좌를 개설하고 관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중국어 캠프를 운영할 예정이다. 또한 신나는 중국어 회화

 

를 보급하기 위한 체험거리 탐방과 주말광장을 통해서 중국인들과의 접촉 기회를 제공

 

하고 기존의 자장면축제와 함께 한중문화원 주변에서의 중국문화전시 및 예술공연 등을

 

활성화해 나가기로 했다.

 

 

 

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하는 중구의 청사진 또한 다채롭고 의욕적이며 그 규모가 크다.

 

개항 이후 인천은 중구에 자리잡은 월미도가 수도권 일대의 대표적인 임해유원지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월미도에 군부대가 진주하게 되고 월미도 부

 

근의 무분별한 매립과 공업단지화 때문에 중구가 지닌 천혜의 관광자원인 월미도는 계

 

속 몸살을 앓아왔던 것이다. 월미도에 조성된 문화의 거리는 이름과는 달리 놀이터와 음

 

식점 밀집지대가 되었지만, 그 후 전통공원이 들어서고 이민사박물관이 개관되면서 활기

 

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쾌적한 임해관광지역으로서의 여건에 부합되지 않는 현실에서 모

 

노레일을 설치하고 월미도 정상까지의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것은 관광지 개발에 한계를

 

스스로 노출하는 결과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내항의 친수공간화와 함께 월미도 일대의

 

공장지대를 이전시키는 중장기 계획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논의할 시점이기도 한 것이다.

 

인천이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중구가 명품도시의 간판이 되기 위해서는

 

인천시와 중구가 합심하여 월미도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공장들을 순차적으로도 이전하

 

는 계획을 수립해야 하겠다. 해양관광도시로서의 인천은 수도권 2천만 주민들과 인천국

 

제공항을 통해서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관광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측면에서도 내항과 월

 

미도 일대를 쾌적한 친수문화·예술공간으로 가꿔야 한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중구에 속해 있지만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이 개발주체로 되어

 

있는 용유-무의 문화관광레저도시 개발도 앞으로 중구의 해양관광산업 진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24.4에 달하는 국제공항 인근 대지에 세워질 관광

 

도시 개발사업에는 기반시설 조성만도 102천억 원이 투입되는 세계적인 대형 개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인천경제청에서는 오는 2020년까지 마리나를 포함한 해양레저시

 

, 테마파크, 위락·숙박시설, 호텔·리조트, 교육·문화시설과 정주시설 등이 건설될

 

예정이다. 개발예정시설 중 마리나 시설은 2014년에 개최될 인천아시안게임 요트경기

 

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시공된다.

 

 

 

용유-무의 문화관광레저 복합도시가 완성되며 중구는 내항과 월미도를 중심으로 하

 

는 예술·문화 친수공간과 함께 국제공항과 인접한 용유-무의 지역에 대규모 레저복합

 

단지를 동시에 지니는, 인천에서는 물론 수도권 유일의 대규모 해양관광단지를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중구에는 또한 근대산업유산이 많아 잠재적 관광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장, 발전

 

, 창고 등 오래된 산업시설을 보전하여 활용하는 아트·팩토리는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국내 여러 도시에도 이미 확산되어 있다. 인천의 아

 

트플랫폼도 과거 창고건물을 활용한 기획으로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구에는 방직공장과 양조장을 비롯하여 오래된 제조공장이 다수 남아있기 때문에 체계적

 

인 조사를 거쳐 산업유산으로 지정하게 되면 또다른 측면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

 

을 것이다. 이밖에도 보존할 가치가 있는 개인주택과 복원이 필요한 건물들애 대해서도

 

중구의 정체성을 찾고 관광자원화한다는 측면에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중구의 미래는 밝고 희망적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천이라는 항구도시의 발

 

상지였고 한세기에 걸쳐 도시인천의 중심역할을 수행해 왔던 중구는 인천의 행정구역이

 

계속 확대되면서 신도시 건설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아 왔다. 주요기관과 주

 

민들이 신도시 쪽으로 떠나고 유통산업이 대형화되면서 기존 상권이 영세화되면서 중구

 

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쇠락된 구도심을 방치한 채 인천이 동북아의

 

허브가 되고 명품도시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구도심의 대표격인 중구

 

에 대한 범시민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중구 뿐 아니라 인천

 

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다.

 

 

 

동북아의 명실상부한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중구에 자리잡고 있는 공항, 항만, 그리고

 

철도와 도로 등이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세계적인 물류센터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구가 지니고 있는 완벽한 육··공 교통, 물류시설의 이상적인

 

연결구조야 말로 인천의 발전동력으로서 고용창출과 부가가치 제고에 큰 역할을 할 것

 

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천이 명품도시가 되기 위해서도 중구의 역할과 위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가꾸고 이것을 통해 시민생활을 격조 높게 하면서 도시의 품격

 

을 높이지 못하면 명품도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선진국의 세계적인 도시들이 웅변으

 

로 증명하고 있다. 근대도시 인천의 역사를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중구가 문화지역을 통

 

해서 품격을 높이고 박물관 벨트로 역사를 보존하고 해양관광시설을 통해서 쾌적한 환

 

경의 가치를 인식시킬 때 인천은 명품도시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으며 중구는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동안 중구는 산업화과정에서 파생되는 각종 공해와 환경파괴, 신도시건설로 인한 공

 

동화현상 그리고 즉흥적인 도시계획으로 많은 피해를 보아왔다. 이제는 과거 중구가 겪

 

었던 각종 불이익과 손실을 만회함으로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구가 인천의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고 근대 인천의 역사를 가꾸고 보존하면서 환경친화적인 중구의

 

관광단지에 국내외 사람들이 즐겨 찾아올 때 인천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구는 과거의 위

 

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계획 중에 있는 인천시립미술관은 물론 인천시 차원

 

의 문화·예술 시설 배치는 중구를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하겠다. 과거 중구를 떠난 시청

 

이나 법원같은 공공기관 대신 문화·예술 관련 시설들을 배치하는 것이야 말로 중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인천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중구청은 <더불어 함께 사는 희망찬 미래도시>를 구정 운영방향으로 삼고 <찾고 싶은

 

중구>를 위한 각종 정책과 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집행해 왔다. 이제 개항 130주년과 인천

 

정명(定名) 60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인천은 중구의 변신을 통해서 동북아의 허브로

 

서 또한 세계적인 명품도시로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확대일변도를 걸어왔던 인천이 쾌적한 도시, 격조 높은 도시, 찾고 싶은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중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제3

 

도시로 성장한 인천이 품격과 경쟁력을 두루 갖춘 도시가 되기 위해서도 중구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것이다.

 

 

 

중구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즉 중구는 인천의 영원한 중심지라는 확고한 믿음은

 

인천의 근대사와 그 기록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 중구는 세계일류 명품도시 인천의

 

중심지로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신용석>

 

 

 

 

 

# 신 용석

 

 

 

출생 19411018, 인천

 

소속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직업 특수단체인, 전직 기자

 

학력

 

-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

 

-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 파리7대학 대학원

 

-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 서울대학교 화학

 

 

 

 

 

경력

 

 

 

2007.10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

 

2007.7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대외협력위원회 부위원장

 

2005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위원회 위원장

 

1999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1992 민주당 인천시지부 지부장

 

1991 서울올림픽기념사업회 사무총장

 

1989 조선일보 편집위원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