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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재

옛 인천우체국 보존, 가닥을 잡았다

by 형과니 2023. 7. 5.

옛 인천우체국 보존, 가닥을 잡았다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2021-10-29 13:34:36

 

 

 

[목요포럼] 옛 인천우체국 보존, 가닥을 잡았다

 

조선총독부는 인천의 우편업무 증가로 인천부청 안에 있던 인천우편국 건물이 협소해지자 매립지에 건물을 새로 지었다. 신축부지는 1915년에 열린 조선물산공진회 별관인 인천수족관이 세워졌던 장소였다. 인천우편국은 192311월 관동에서 새 건물로 옮겨 왔다. 인천을 관할하던 인천부청보다 더 넓은 면적으로 세워진 인천우편국은 당시로써는 조선 최고 수준이었다고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일제의 유산인 '우편'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인천우체국'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체신업무를 이어가던 인천우체국은 6·25전쟁 시 폭격으로 건물 일부가 파손되어 2년간 전 미쓰이(三井)물산 인천지점 건물(현재,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을 사용했다.

 

1957년 보수공사를 마치고 옛 건물로 돌아왔다. 전후 복구과정에서 세부적인 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다소 아쉬운 감은 있으나, 당시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198232일 문화재 지정에 이어 198410월에는 문화재 보수공사를 시행했다. 보수공사 도면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한때 '우체국 기능을 이어가는 유일한 근대건축물'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던 옛 인천우체국은 세워진 지 80년을 맞이한 2003310일 위기를 맞는다.

 

인천우체국이 연수동으로 청사를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후 2년간 보수공사를 거쳐 중구와 동구 지역을 관할한다는 뜻에서 중동우체국으로 바뀌고 우체국의 등급도 낮아졌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우체국 기능은 2019727일 중동우체국마저 신흥동으로 옮겨가면서 상실되었고, 건물은 2년 넘게 비어 있다. 그러는 동안 건물 외벽 페인트는 벗겨져 나갔다. 훼손 정도가 심한 지붕부는 장막으로 가려 놓았다. 201810월에 실시한 건축물 정밀안전진단에서는 D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주요부재에 결함이 생겨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한 상태에 처한 건축물에 부여하는 등급이다.

 

인천은 일찍이 근대문화유산이 인천의 정체성을 가름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주요 근대건축물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등록문화재 제도를 도입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다른 지자체들이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식했던 것과 달리 인천은 이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옛 일본 제1은행, 18은행, 58은행 인천지점, 제물포구락부, 인천우체국이 철거 위기에서 벗어나 제도적 보호장치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옛 인천우체국은 2년 넘게 보존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인천시에 옛 인천우체국 근처에 중동우체국을 새로 세울 부지를 마련해 주면 옛 인천우체국의 소유권을 인천시로 이전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인근에는 마땅한 부지가 없어 협의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시는 부지 확보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대상지를 물색하고 우정사업본부와 장소에 대해 합의에 도달했다 한다.

 

옛 인천우체국은 근대기에 세워진 우체국 청사 가운데 진해우체국(사적 291, 1912125일 준공)과 함께 딱 두 채만 현존하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건축물이다. 근대문물의 상징이던 옛 인천우제국이 하루빨리 흉물스런 모습을 벗고 개항장 인천의 상징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손장원 인천재능대 실내건축과 교수 인천일보 승인 202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