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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재89

답동성당 답동성당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종 목 사적 제287호 명 칭 인천답동성당(仁川沓洞聖堂)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천주교/ 성당 수량/면적 8,262.5㎡ 지 정 일 1981.09.25 소 재 지 인천 중구 답동 3-1 시 대 일제강점기 소 유 자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이 성당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죠셉비리엠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설립되었다. 1893년 임시성당을 건립하고, 1895년 8월11일 성당정초식을 갖고, 1897년 고딕양식의 성당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그후 드누(Eug Deneux)신부가 증가하는 신도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성당개축공사에 착수하였는데, 본래 구성당을 그대로 두고, 그 바깥으로 현성당공사를 한만큼 어려운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평면은 장방형의 끝쪽에 각형 .. 2023. 6. 6.
정수사 법당 정수사 법당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보물 제161호 명칭 :정수사법당 지정일 : 1963.01.21 위치 :인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467-3 정수사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 회정선사가 세웠고 조선시대 세종 8년(1426)에 함허대사가 다시 지었는데, 건물 서쪽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이름을 정수사라 고쳤다고 한다.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상을 모신 대웅보전으로, 1957년 보수공사 때 숙종 15년(1689)에 수리하면서 적은 기록을 찾아냈다. 기록에 따르면 세종 5년(1423)에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지만 원래는 툇마루가 없이 앞면과 옆면이 3칸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지붕 무게를.. 2023. 6. 6.
철거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 철거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2009-06-15 16:04:59 철거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 근대건축물에 대한 인식이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청산 대상이자 철거 대상이다. 2001년에 도입된 등록문화재 제도 시행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철거작업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인천에서도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던 강화양조장이 지난 2월에 철거되었으며, 철거 위기에 처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까지 여러 가지 곡절을 거쳐야 했다. 또한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이 소유자의 반대로 등록문화재 지정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문화유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존·활용한다는 .. 2023. 5. 27.
개화기 역사의 흔적 보존 나선다 개화기 역사의 흔적 보존 나선다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2009-04-24 20:10:24 개화기 역사의 흔적 보존 나선다 인천시, 가치따라 근대건축물 5개 문화재 등록 추진 인천시가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큰 근대건축물에 대한 보호에 나섰다. 아직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큰 근대건축물들이 잇따라 헐리거나 훼손돼는 실정. 시는 개화기의 역사와 문화를담고 있는 역사적 보존가치가 큰 근대건축물 5개를 오는 6월 중 문화재청에 등록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건축물은 인천항 화물계사무실과 선거계사무실, 강화 교동교회, 강화 조양방직 공장, 강화 황국현 가옥 등 옛 역사가 묻어나는 5개의 건축물이다. 인천항 화물계 사무실은 1919년에 지어진 건물로 인천세관에서 화물.. 2023. 5. 24.
홍예문 홍예문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2009-01-27 16:05:49 신인천문화유산답사기 l 홍예문 아픈 역사 품고 있는 무지개 돌문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 마루턱에 오르면 세월의 이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돌문과 마주한다. 윗머리가 무지개 형상을 한 문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 홍예문(虹霓門)이 되었다. 예쁜 이름에 걸맞게 담쟁이 넝쿨로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지만 홍예문이 건립된 배경에는 구한말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1883년 인천이 개항되자 일본과 청국을 비롯한 구미 각 국은 지금의 중앙동, 북성동 일대에 외국인이 거주하는 자치 지역인 조계(租界)를 설정했다. 일본은 중앙동, 신생동, 신포동 일대에 터를 잡은 후 일본 거류민이 급격히 늘어나자 만석동 방면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그.. 2023.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