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6-26 16:11:17
압록강은 흐른다
<84년 전 등산장비는 어떠 했을까. 물론 지금 같은 기능성 제품은 없었을 것이고 면에 모직이나 가죽 그리고 고무로 만든 우비 등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등산객들이 지금의 장비를 볼 수 있고 쓸 수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질없는 궁상을 떨지만 그 시절의 산악인 혼들에게 입혀 드리고 싶기도 하다. 그분은 새 등산화를 구한 후 다시 산행에 나서고 싶다고 하셨다. 쓰시던 등산화가 아마도 많이 헐었던가 보다.>
수년전 월간지 ‘산’에 기고한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 박사의 후손 이영래씨의 산행기 말미이다. 그는 2004년 1박2일의 코스로 할아버지가 올랐던 독일의 남부 카르벤델 산군을 찾았으며 ‘이미륵 할아버지의 등산로를 짚으며’라는 글을 썼다. 이씨는 현재 인천 남동공단의 삼화제작소 대표이사로 있으며 제물포고교 출신으로 길영희선생 기념사업회장을 지낸 바도 있다.
원명 이의경인 이미륵박사의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는 그의 자전적 소설로 독일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독일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이 발표되던 1946년 독일에서 가장 빼어난 글로 뽑히기도 했다.
소설에서 이 박사는 사촌과 함께 보낸 어린시절과 학교생활, 일제의 탄압, 압록강을 건너 독일땅에 도착하기까지를 묘사하고 있다. 황해도 해주 출생의 그는 경성의전 재학중 3.1운동에 가담, 독일로 망명했다. 뮌헨대학에서 강의하는 등 문단에서 활약했으나 1950년 5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북한땅 출신인데다 자녀들도 어려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현재 국내에는 직계 유족이 없다. 다만 이 박사 누님의 손자이며 유족 대표인 이영래씨 형제들이 인천에 살고 있다. 그럼으로써 기념사업회와 함께 인천에서도 더러 이 박사의 회고 모임이 있어 왔다.
최근 독립운동의 공로로 이 박사가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졌다고 한다. 대통령 표창은 현재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그 훈장을 지난 4월 이씨가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유족을 찾지 못해 40년을 넘게 정부가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다.
<84년 전 등산장비는 어떠 했을까. 물론 지금 같은 기능성 제품은 없었을 것이고 면에 모직이나 가죽 그리고 고무로 만든 우비 등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등산객들이 지금의 장비를 볼 수 있고 쓸 수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질없는 궁상을 떨지만 그 시절의 산악인 혼들에게 입혀 드리고 싶기도 하다. 그분은 새 등산화를 구한 후 다시 산행에 나서고 싶다고 하셨다. 쓰시던 등산화가 아마도 많이 헐었던가 보다.>
수년전 월간지 ‘산’에 기고한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 박사의 후손 이영래씨의 산행기 말미이다. 그는 2004년 1박2일의 코스로 할아버지가 올랐던 독일의 남부 카르벤델 산군을 찾았으며 ‘이미륵 할아버지의 등산로를 짚으며’라는 글을 썼다. 이씨는 현재 인천 남동공단의 삼화제작소 대표이사로 있으며 제물포고교 출신으로 길영희선생 기념사업회장을 지낸 바도 있다.
원명 이의경인 이미륵박사의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는 그의 자전적 소설로 독일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독일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이 발표되던 1946년 독일에서 가장 빼어난 글로 뽑히기도 했다.
소설에서 이 박사는 사촌과 함께 보낸 어린시절과 학교생활, 일제의 탄압, 압록강을 건너 독일땅에 도착하기까지를 묘사하고 있다. 황해도 해주 출생의 그는 경성의전 재학중 3.1운동에 가담, 독일로 망명했다. 뮌헨대학에서 강의하는 등 문단에서 활약했으나 1950년 5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북한땅 출신인데다 자녀들도 어려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현재 국내에는 직계 유족이 없다. 다만 이 박사 누님의 손자이며 유족 대표인 이영래씨 형제들이 인천에 살고 있다. 그럼으로써 기념사업회와 함께 인천에서도 더러 이 박사의 회고 모임이 있어 왔다.
최근 독립운동의 공로로 이 박사가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졌다고 한다. 대통령 표창은 현재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그 훈장을 지난 4월 이씨가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유족을 찾지 못해 40년을 넘게 정부가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