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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우리 얼이 담긴 탑

by 형과니 2023. 4. 16.

우리 얼이 담긴 탑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10-11 20:52:43

 

우리 얼이 담긴 탑

 

 

옛날 계양산 경내에 12개의 사찰이 동서남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절터조차 흩어져 위치가 불분명하며 다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서쪽의 만일사 북쪽의 명일사 남쪽의 봉일사이다. 그런데 70년대까지만 해도 봉일사만큼은 문과 법당터로 보이는 주춧돌이 딩굴고 특히, 무너져 내리는 석탑이 서 있어 그곳이 절터임을 완연케 했었다.

 

 

지금은 경인여자대학 뒷편의 백룡사가 있는 지점이지만 예전엔 배나무 과수원길을 따라 지나는 한적한 곳이었다. 계양산성 밑이요 하느재로 오르는 고갯길가였다. 그 둔덕의 절터에 건물은 없이 석탑 한기가 무너질듯 버티고 있었다.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었다. 그곳을 사람들은 절골 혹은 탑골이라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이 3층 석탑은 인천지역에서 원위치에 남아 있는 유일한 탑이었다. 이른바 봉일사지 3층 석탑이며 인천시유형문화재였다. 이후 1975년 이곳에 백룡사가 세워지자 경내로 탑을 옮기고 화강석을 깎아 일실된 탑신의 일부를 보완했다. 그리고 하류의 개울가에 있던 미륵불도 함께 옮겨 놓았다.

 

 

이것 말고도 인천에는 또다른 3층 석탑이 있었다. 소위 공보관앞 3층 석탑이라 이름한 것으로, 자유공원 인천시장 공관에 있던 것을 60년대 사동에 공보관을 신축하면서 이전해 놓았었다. 이 석탑도 원래는 충남 보령군 대천해수욕장 진입로변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 일인이 자신의 별장에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지금 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전규태 교수는 탑이 하늘로 향하는 인간의 이상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얼과 감정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런 것을 외적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파괴당했다. 어떤 때는 이 땅에서 깡그리 사라졌다고도 한다. 따져보면 우리 스스로의 무관심과 관리소홀로 망가진 것도 많았으리라 여겨진다.

 

 

옛 선인재단 석탑이 방치되고 있다는 보도이다. 인천시와 교육청이 관리책임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교구내에 석탑이 있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요, 문화재적 가치의 유무도 궁금하다. 산실되고 난 후 후회없기 바란다.

 

 

 

###계양산 #3층석탑 #만일사 #공보관 #명일사 #봉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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