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09:18
인천사람들 대명사 `짠물'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
최병관씨 작품 중 `소래 염전'
인천은 소금과 성냥공장으로 알려진 고장이었다. 특히, 인천사람들은 군에 입대를 하는 날부터 제대를 하는 날까지 ‘짠물’이라는 별명이 귀신처럼 붙어 다녔다. 자대로 배치를 받으면 고참병들이 “짠물! 성냥공장 아가씨 노래를 불러봐.” 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천사람들을 ‘짠물’로 몰아부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1971년 2월 머리를 빡빡 깍고, 수인역에서 논산으로 직행하는 병력수송용 기차에 몸을 실었다. 병역의 의무를 위해 논산훈련소로 가기 위해서였다. 밖에서는 부모와 얼싸안고 전장으로 떠나는 것도 아닌데 서럽게 울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친구들이 행가래를 치는 장면이 범벅이 되어 기차가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날이 어두어지자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움직였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호송병들이 열차 안에서부터 군기를 잡더니, 논산훈련소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인천 짠물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은 사회에서 있었던 모든 생각은 버려야 한다. 명령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고달픈 훈련병으로 남을 것이다. 알았나! 복창소리가 약하다. 대가리 박어”로 시작되었다.
어수선한 가운데 밤늦게까지 인원체크와 보급품을 전달 받았다. 그 다음날은 아침부터 머리를 깍기 시작했다. 입소 전에 머리를 잽싸게 깍고 간 장정들은 기술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모두 이발사로 차출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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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인천의 자연과 풍물들을 끊임없이 사진에 담아온 사진작가 최병관씨를 초청, 소래 지역의 그 시절 염전모습과 얽힌 이야기를 싣습니다. 매주 토요일 독자들을 찾아가는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은 8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소래 염전의 생생한 모습으로 인도합니다.
최병관씨는… ▲1996년 휴전선155마일작가로 선정, 이후 2년여(1997-1998) 기간을 도보로 횡단하며 촬영. ▲2000년 일본 NHK TV ‘아시아의 작가’로 선정 ▲2004년 일본 동경도사진미술관 초청 ‘휴전선155마일 현대의 비경전’개최 ▲대통령표창(1999), 인천광역시문화상(2002), 외교통상부장관표창(2004)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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