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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

대우차(大宇車) 

by 형과니 2023. 5. 16.

대우차(大宇車)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1-12 09:55:08

 

대우차(大宇車) 

조우성의 미추홀

 

 

개항 직후, 인천서 서울을 가자면 말이나 가마를 이용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1895년 무렵 경인 간을 오간 사람은 1일 평균 3백여 명이었고, 왕복에 말은 350, 가마는 8원이었다. 쌀 한 되가 25전이었던 때였다.

 

인천에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24년 뒤인 1919년이었다. 일본인들이 '별부자동차부(別府)'라는 회사를 차려 택시 영업을 했는데, 그 후 자동차가 늘어 1921년경에는 인천부에서 좌측통행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경인 간을 버스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19295월이었다. 경인버스주식회사가 13회씩 운행하였는데, 편도 70전에 소요 시간이 2시간이나 돼 기차보다 요금도 훨씬 비싸고, 시간도 더 걸려서 별 인기가 없었다고 전한다.

 

이렇듯 초기 인천의 자동차 관련 이야기는 일본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대동아 공영'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그들은 1939년 산곡동에 '조선자동차()'를 설립해 군용차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자동차 생산의 출발이었다.

 

우리 손으로 비로소 자동차를 만든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서울의 최무성 씨가 1955년 불하받은 미군 지프를 개조해 시발자동차를 만들었고, 현대식 자동차를 본격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역시 인천에서였다.

 

재일교포 박노정 씨의 작품인 '새나라'는 현대식 조립 라인에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승용차였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른 대우차의 과정은 험난했지만, 아직 '인천차'로 자리매김한 것으로는 뵈지 않는다. '지역 기여도'가 미미한 마당에 '대우차 타기 운동'을 한다고 해서 그에 호응할 시민이나 공무원은 많지 않을 듯싶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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