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仁荷)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2-19 14:35:23
인하(仁荷)
조우성의 미추홀
한 세기 전 선대들이 썼던 서구의 옛 지명이나 인명을 지금에 보면 전혀 맥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이름 대부분이 한자 본래 뜻과는 상관없이 유사한 발음만을 취하여 사용하는 '가차(假借)'이기 때문이다.
귀에 익은 것으로는 이탈리아=이태리(伊太利), 터키=토이기(土耳其), 하얼빈=합이빈(哈爾賓), 헤이그=해아(海牙), 워싱턴=화성돈(華盛頓), 스코트랜드=소격란(蘇格蘭) 등이 있지만 학습을 통해 겨우 알게 된 것들이다.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이 주축이 돼 1902년에 이민을 떠난 나라가 '아묵리가(亞墨利加ㆍ아메리카)요, 그들의 새 삶의 터전이자 해외 독립운동의 전진기지가 되었던 태평양의 고도가 '포와(布 )' 혹은 '하위(荷威)'였다.
광복 후 하와이 동포들이 두 번 다시 외세에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며 '교육입국'의 꿈을 가시화하여 대학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인하공대'였다. 이 때의 '인하'는 '인천'의 '인(仁)'과 '하와이'의 '하(荷)' 자를 합한 것이다.
초창기에 명칭을 논의할 때는 '한하(韓荷)대학'도 거론됐으나 이민 1세대 대다수의 고향이요, 그 출발지였던 '인천'으로 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여서 '인하'로 귀결됐다는 것이 이민사 연구가 이덕희 선생의 전언이다.
그런데 최근 인하대 스스로가 '인하(仁荷)'를 '이노베이션 하모니'의 약호(略號)인 듯 대내외에 선전하고 있어 실망스럽다. 그 애틋한 역사와 혈연적 가연(佳緣)을 하루아침에 탈색시켜 버리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대학보다 건학 이념이 크고 드높은 인하대가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