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국영화 의 역사 1940년대
6 25전쟁 전까지의 영화는 어떠했는가? 두말 할 것도 없이 혼란과 분열은 영화가(映畵街)도 다를 바 없었다. 1945년 8월 19일에 조선영화건설본부(朝鮮映畵建設本部)가 조직되고 9월 24일에 미군정(美軍政) 보도부(報道部)로부터 뉴스영화 제작 의뢰를 받음으로써 광복영화(光復映畵) 활동이 시작되었다. 윤백남(尹白南)을 위원장으로 안석영(安夕影) · 이병일(李炳逸) · 김학성(金學成) 등 영화인들이 모인 영화건설본부는 지지부진했고 반면에 좌익분자들이 오히려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생겨난 것이 추민(秋民)을 위원장으로 한 조선영화동맹(朝鮮映畵同盟)인데 이는 1945년 12월 16일에 결성되었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잔재의 소탕 봉건주의 잔재의 청소 국수주의(國粹主義) 배격 진보적 민족영화의 건설 조선영화와 국제영화와의 제휴 등의 강령 [註12]을 내걸고 예술보다는 마르크스-레닌의 이데올로기 부식(扶植)에 혈안이었다
물론 이들 좌익 영화인들에게 의연하게 맞선 최인규(崔寅圭) · 최완규(崔完奎) 등 고려영화주식회사(高麗映畵株式會社)라든가, 안석주(安碩柱) · 전창근(全昌根) · 김광주(金光州) 등이 1946년 11월에 창립한 조선영화극작가협회(朝鮮映畵劇作家協會) 등의 활동도 만만치 않았다. 최인규 감독의「자유만세」는 본격적인 광복영화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구영(李龜永) 감독의「안중근사기(安重根史記)」,윤봉춘(尹逢春) 감독의「삼 · 일혁명기」, 전창근 감독의 「여인」등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애국적인 시대극이 쏟아져 나왔다. 1947년에 들어서도 민족애에 넘치는 시대극 영화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윤봉춘 감독의「윤봉길(尹奉吉) 의사」「유관순(柳寬順)」「애국자의 아들」, 이규환(李圭煥) 감독의「민족의 절규(絶叫)」「민족의 새벽」, 최인규 감독의「독립전야(獨立前夜)」,신경균(申敬均) 감독의「새로운 맹서」,김영순(金永淳) 감독의「불멸의 밀사(密使)」, 윤대룡(尹大龍) 감독의「조국의 어머니」 등이 바로 이런 계열이다 [註13]
정통적인 영화예술을 추구하는 민족진영의 영화의 대중적 인기로 소련영화나 수입하여 이데올로기를 부식하려던 좌익 영화인들은 처음의 거창한 계획도 불구하고 신통한 소득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미군정(美軍政)이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영화가 물밀듯 밀려들어 왔다. 극히 목적극(目的劇) 영화만 보던 대중에게 자유분방한 미국영화는 신기하고 호기심을 끌만한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영화가 장안의 관객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유치진(柳致眞)은 이에 대해서
「군정(軍政)에는 영화검열(映畵檢閱)이 실시되어 있고 미(국영화도 역시 검열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검열은 미인(美人)의 권한이다. 그 때문인지 세간(世間)에 나오는 미국영화는 그 결과로 보아 무검열(無檢閱)로밖에 안보인다라는 것은 우리네 도덕관(道德觀)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파론적(破論的)인 장면(아메리카적 논리)을 공공연히 상영한다.
이로써 극장은 성욕발분소(性慾發憤所)로 화하고 미국영화에 반한 무의식대중(無意識大衆)은 궤멸(潰滅)당한 제방(堤防)에서 터져나오는 홍수와 같이 미화(美畵) 상영관에 몰린다. 이 때문에 극계(劇界)는 종래 가지고 있던 관객동원의 균형을 잃고 연극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진지한 연예물은 파리를 아니 날릴 수 없게 되었다.」[註14] 고 개탄까지 했던 것이다.
이처럼 광복 직후 영화의 기세는 연극계까지 휩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영화의 범람은 전후에까지 지속됨으로써 연극 침체까지 가져왔던 것이다. 물론 미국영화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프랑스 등 유럽영화도 적지않게 끼어 있었다. 여하간 광복을 기점으로 하여 소위 극장가(劇場街)는 연극에서 영화로 그 주도권이 넘어간 것만은 확실하다. [원글:서울시육백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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