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도,덕적도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9-06-10 12:41:02
▶[인천] 뿌리를 찾아서-작약도
작약도는 인천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영종도 옆으로 바로 보이는 작은 섬이다.
숲이 울창한 이 섬의 원래 이름은 물치도로,
영종도에 있던 군사기지 영종진에 땔나무를 공급하던 곳이었다.
물치도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된 바가 없으나
한강에서 내려온 물이 이 섬을 치받는다'는 뜻을 음차해서 물치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작약도라는 이름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멀리서 이 섬을 보면 모양이 작약꽃 봉우리와 같이 생겼다 해서 붙인 것이라 한다.
병인양요 때는 침입한 프랑스 함대가 자신들의 배 이름을 따서 '보아제'라고도 불렀고
신미양요 때 이 곳에 몰려온 미국 함대는
'섬에 나무가 많다'해서 '우디 아일랜드'라 부르기도 했다.
이들 외국 함대는 모두 작약도 앞에 주력 함대를 정박시켜 놓고
한강을 따라 올라갔다고 하니 이 섬은 조선의 개항과 큰 연관이 있는 셈이다.
일제 때는 '스스기'라는 일본인 개인 소유였고 해방 후에는
화수동에 살던 이종문이라는 사람이 이 곳에 고아원을 설치해 운영했으나 6·25때 없어졌다.
이전에는 경기도 부천군에 속해 있다가 63년 인천시에 편입됐으며
지금은 국유지 일부를 뺀 섬 전체가 전 인천시의원 류복수(유복수)씨의 개인 소유로 돼있다.
30∼40분이면 해변을 따라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이 작은 섬에는
횟집과 식당 등이 영업중인데 물살이 세서 수영을 하기는 어렵다.
평소에는 연안부두에서 작약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하루에 왕복 9차례를 다니지만
요즘같은 피서철에는 17번씩 다니고 있다.< 최재용기자 >
▶[인천] 뿌리를 찾아서-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이 있는 서해안의 섬 덕적도는 3국시대부터
중국과의 해상교통에 주요 경유지였다.
삼국사기나 당서에는 이 섬의 이름이 덕물도, 또는 득물도로 기록돼 있으며
고려사 지리지에는 인물도로 표시돼 있다.
덕적도라고 처음 나오는 것은 고려사 세가 고종46년 2월조다.
용비어천가에 덕적이라는 이름 밑에 '덕물'이라는 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주로 '덕물도'로 불린 것 같다.
조선 중종때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에 '인=클', '덕=큰'이라고 밝힌 것으로 미뤄
'덕물'은 원래 '큰물'이라는 우리식 이름이 한자화한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덕적도를 수심도로 표기한 옛 책자가 있는 점까지 따져보면 '큰물'은 '깊은 물',
덕적도(큰물섬)는 '깊은 바다에 있는 큰 섬'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섬은 고려시대부터 왜구들이 자주 몰려왔던 곳으로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수군을 두어 방비하게 했고 말을 기르는 국영목장도 있었다고 한다.
군대가 주둔했기 때문에 이 섬에는 지금도 '망을 보던 고개'라는 뜻의 '망재'나
주둔지를 뜻하는 '진촌','진말' 등의 땅이름이 남아 있다.< 최재용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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