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광철의 전망차

동구에 하나뿐인 섬

by 형과니 2023. 5. 30.

동구에 하나뿐인 섬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7-21 15:47:27


동구에 하나뿐인 섬


월미도 정상에 오르면 북방 정면으로 작약도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바다에 봉긋하게 떠 있듯 나무가 무성해서일까. 섬 전체가 검푸르다. 옛날에도 그러했듯 작약도는 영종진에 연료를 공급하던 산지였다. 그때의 이름이 물치도(勿淄島), 무치도(舞雉島)였다. 이훈익옹의 ‘인천지방 향토사담’에 따르면 해마다 9월에 300속씩 땔나무를 영종진에 공출했다고 한다.

쇄국 시기 우리나라에 내침한 서양인들의 눈에도 작약도는 나무섬으로 보였다.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은 나무가 울창한 섬이라고 해서 ‘우디 아일랜드’라고 했다. 즉 목도(木島)였다. 이보다 5년전 프랑스군은 작약도 앞을 지나며 함대 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보아제’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또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본래 우리것의 물치도였던 것을 서양인들은 보아제요 우디 아일랜드라고 하더니 훗날 일제는 이섬을 작약도라고 불렀다. 섬의 형국이 마치 작약 꽃봉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름처럼 작약도는 평안하지 못했다. 해로상의 요충이었던 만큼 서양인들이 제땅이듯 까불리더니 일인들도 흉내를 냈다. 운양호를 몰고 와서 영종도에서 분탕질을 했다. 이렇게 해서 외세로 인해 물치도는 이름이 여러번 바뀌었다.

작약도의 제원은 이러하다. 만석동 해안에서 서북방으로 2.5㎞ 거리에 위치하며 면적은 0.031㎢에 해안선 길이 1.2㎞의 작은 섬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과 울창한 수목으로 인해 해상공원이기에 충분하다. 피서철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1963년 부천군에서 인천시 만석동 관내로 변경되었다. 일제때 스스키라는 일인 소유였다고 하나 해방 후 화수동 이모씨가 이곳에 고아원을 설치했다가 6·25가 발발해 폐쇄되었으며 자유당 정권 시절 성모씨가 불하받아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최근 동구청의 작약도 매입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다는 보도이다. 한 구의원의 구정질문에서 비롯된 작약도 매입이 당장의 여건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구의 입장이라고 한다. 동구의 하나뿐인 작약도는 공원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오광철의 전망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여름밤의 꿈  (1) 2023.05.31
인천의 나비부인 딸  (0) 2023.05.31
수인선 자료 없나요  (0) 2023.05.30
48시간의 작은 전쟁  (0) 2023.05.30
왕산포구 해양축제  (1) 2023.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