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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

(39) ‘인천 한 세기’

by 형과니 2023. 6. 4.

(39) ‘인천 한 세기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10-22 22:00:36

 

아펜젤러·비숍의 눈으로 본 인천

(39) ‘인천 한 세기

 

인천 한 세기는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인천 이야기책 이름이다. 감히 이 책의 제목을 빌어다 쓰는 이유는 작금의 우리 인천의 변모를 살피면서 이 말 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을 듯싶어서다. 물론 인천의 변화가 개항 이후부터라고 한다면 한 세기가 넘는 120여 년이라고 해야겠지만 한 세기라는 말의 어감이 굳이 세월의 유수 같음과 눈부신 변화를 실감나게 상징하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자유공원에서 내려다 본 제물포항 모습(지금의 하인천).)

 

부두는 외국인들의 조차(租借) 지역에 원시적인 방법으로 지어져 있었고, 외국인들은 그 지역에서만 장사나 교역을 할 권리가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의 전면에는 민둥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산의 사면에는 마치 벌레가 갉아먹은 것처럼 드문드문 덤불이 자라고 있었다. 띄엄띄엄 솟아 있는 유럽식의 건축물들은 그 독특한 모양과 흰 색상 대문에 눈에 잘 띄었다. 저 아래 끝없이 펼쳐진 개펄 위에 조용한 자태로 서 있는 산자락에 의지해 자리잡고 있는 제물포를 나는 볼 수 있었다. 거만하게 높이 솟아 있는 건물이라곤 아예 없이 고만고만하게 꼭 같은 지붕들이 늘어서 잇는 것에 대해 이 도시는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지금의 자유공원 응봉산 자락과 1890년대 후반의 초라한 제물포 포구와 시가지를 비꼬듯 말하고 있는 이 글은 불란서 외교관 이뽀리트 프랑댕이 인천에 처음 도착해서 바라본 인상기의 발췌이다.

 

정박지에서 바라보면, 제물포는 바닷가의 한 모서리를 따라 뿔뿔이 흩어져 있는 초라한 집들의 덩어리였다. 희게 칠해지고 대부분 나무로 된 집들이 드문드문 불모의 언덕에 서 있었다. 이 주택가는 숲이 조금 우거진 언덕 가장자리에 불편하고 보잘 것 없는 영국 부영사관 건물이 있는 저지대로부터, 크고 장식적인 일본식 찻집과 정원, 신사가 있는 언덕까지 뻗어 있었다.”

 

이 글은 영국 왕립 지리학회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1894년에 기록한 제물포의 풍정이다. 개항 후 10년이 지날 무렵의 인천 모습이 너무도 미개하게 보인다.

 

그곳에는 어촌 사람들이 큰 무리의 펭귄 떼처럼 앉아 있었다. 펭귄처럼 하얀 가슴과 검은 머리를 한 그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바위를 배경으로 느긋하게 우리를 쳐다보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1884년 조선 주차 영사로 온 영국인 윌리엄 칼스의 제물포 사람들에 대한 첫 느낌이다. 이어 1885년 제물포에 도착한 아펜젤러는 썰물로 물이 빠진 제물포 포구와 거룻배로 상륙하는 장면, 그리고 백 명이나 되는, 더럽고 누더기를 걸치고 모자도 안 쓴 인부들이 화물을 향해 덤벼드는 광경만을 그려 놓았다. 이것이 모두 한 세기도 더 전의 인천 모습이었다.

 

지난 190시를 기해 세계에서 7번 째로 길다는 인천대교가 개통했다. 그 전전날 있었던 다리 걷기대회에는 무려 7만 여명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송도국제도시와 영종공항을 잇는 다리라고는 하지만 인천이 세계와 소통하고. 세계가 인천과 교통하는 상징일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CNN은 특집 생방송에서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동북아의 맨해튼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천을 집중 보도했다. 세계가 인천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아펜젤러가, 비숍 여사가, 프랑댕, 칼스가 한 세기 후의 이런 인천을 꿈에서인들 상상이나 했었을까.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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