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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역사산책

부두 풍경 : 비릿한 바닷바람·흰 갈매기들은 똑같은데…

by 형과니 2023. 6. 14.

부두 풍경 : 비릿한 바닷바람·흰 갈매기들은 똑같은데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0-08-18 11:27:40

 

비릿한 바닷바람·흰 갈매기들은 똑같은데

8. 부두 풍경

 

현재의 월미도 모습

 

8월도 어느덧 중순이 넘어 가고 있다. 무더위가 서서히 가시어 가는 것은 좋지만 학생들은 코앞으로 다가오는 개학 날짜에 조금은 시름겨울 듯하다. 옛날 서포리로, 뗏무리로, 만리포로 캠핑이다 뭐다 무리 지어 몰려다니던 여름방학이 이맘때쯤이 되면 어쩌면 그렇게 후딱 지나가 버렸나 하는 아쉬움이 들곤 했었다.

 

옛날 부두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문득 그런 그 시절을 그려보게 된다. 아직 먹고사는 일이 고달픈 시절이었는데 도 여름방학만 되면 무슨 풍속처럼 꼬박꼬박 륙색과 텐트를 짊어지고 배에 오르곤 했다. 그런 여름 부두 풍경 사진은 아니라도 이제는 이 한 장,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옛 인천부두 사진이 사뭇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생각을 잡아끈다.

 

1960년대에 인천과 근해 도서지방을 잇는 해상 교통기지 객선부두가 있었던 인천시 중구 항동 일대의 현재 모습.

 

첫 번째 사진 속의 인천부두 모습은 아마 1960 년대 초반이 아닐까 싶다. 인천부두의 위치는 대략 근래 신축된 하버파크 호텔 부근(대한통운 사무실 근처)에서부터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이 서 있는 일대까지였다. 여기 사진의 부두는 전체 인천 부두 가운데 군용부두만을 촬영한 것이다. 오른쪽 맨 위 끝에 보이는 섬 자투리 같은 게 소월미도 꼬리 부분이다.

 

1966년 시작된 인천항 전면 독화 공사로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지만, 여기가 주로 미군 관련 선박이나 해군 배들이 대던 곳이다. 아직 제2도크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데다가 이 일대가 원래의 축항과 떨어져 있어서 아주 한가롭게 보인다. 지금 위치를 말한다면 대한통운 사무실 부근이 될 성싶다.

 

이 사진 말고도 다행히 여기 풍경을 그린 명작이 한 작품 남아 있다. 1960년대 초에 그려진 월미도의 황혼이란 작품이다. 이 그림은 1994년 미국에서 타계한 인천 출신 황추(黃秋) 화백이 불란서 인상주의 화풍처럼 그린 것으로. 배다리 지성의원 원장이셨던 고 김관철(金寬哲) 박사께서 소장하시다가 전일 인천일보의 창간을 기념해 기증하셨다. 이 그림은 현재 신문사 1층 로비에 걸려 있다.

 

사진 아래쪽 철로를 따라 오른쪽 방향으로 옥상이 보이는 2~3층짜리 건물과 그 오른쪽 옆에 나무와 건물때문에 밑동이 가려진 탑 비슷한 것이 보이는데, 그 아래가 객선부두 입구이다. 부두라고 해야 어림잡아 대략 50~60m 길이의 잔교(棧橋)가 전부였다. 잔교는 조수(潮水)의 들고남에 따라 위아래로 뜨고 가라앉고 했다.

 

여객선 부두 잔교

 

객선부두는 두 번째 사진이다. 이 객선부두가 인천과 근해 도서지방을 잇는 해상교통 기지였던 셈이다. 학생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서포리든 만리포든 떠나던 부두이기도 했다. 이 부두는 오늘날의 연안부두가 매립을 마치고 개장하던 1973년까지 이 모습이었다. 이곳 위치는 파라다이스 호텔 아래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이 서 있는 일대쯤이 될 것이다.

 

요즘도 외국 군함이나 세계적인 크루즈 여객선이 입항하는 경우, 시 혹은 관계 기관이 나서서 환영 행사를 베풀고, 이에 응대해 선박 측에서 선체 공개 행사를 열기도 하지만, 그때도 이 같은 행사가 가끔 있어서 단조로운 생활에 볼거리를 제공하곤 했다. 친선과 우호를 표방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사진은 성조기를 단 소형 미국 배들 대여섯 척이 객선부두에 들어와 정박한 장면이다. 이 사진만을 가지고는 정확한 식별이 어렵지만 이 배들이 군함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혹시 연안 경비를 담당하는 그런 종류의 쾌속선들인지 모른다. 그 배들을 시내 어느 학교 중학 전교생이 단체로 관람을 온 풍경이다. 잔교의 오른쪽으로 입장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관람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모두 검은색 동복들을 입고는 있지만 시기상으로 가을이 아니라 봄인 것처럼 보인다.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나 흰 상의를 입은 남자들의 모습에서 그런 느낌이 묻는다. 확대경으로 보면 학생들 중 맨 앞의 몇 학생의 모자에서 흰색 두 줄이 확인된다. 교모에 두 줄 흰 선을 두른 학교는 당시에는 인천중학교뿐이었으니.

 

이것이 혹시 1960년이나 아니면 그 이듬해였을까. 그때였다면 유명한 길영희(吉瑛羲) 교장 선생께서 직접 관람을 지시하셨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분은 제군들 모두 미국 배를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 틈에 내가 끼어 있었을까.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그랬던 것도 같고,아니었던 것도 같다.

 

이런 단체 방문 외에도 그 시절 학교가 파하면 자유공원을 넘고 청관(淸館)을 지나 소란하고 볼거리 많은 하인천 어련부두(漁聯埠頭) 쪽으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여기 객선부두를 기웃거리며 자주 시간을 보냈다.

 

어디 한 군데 마음대로 갈 수는 없어도, 그저 비릿한 바닷바람을 맞고 서서 흰 갈매기들을 바라보거나, 칠이 벗겨진 뱃전을 올려다보거나, 통통거리는 기관 소리, 뱃고동소리를 들으며 아련한 생각에 잠기는 것이 좋았다.

 

 

월미도

 

저 건너 월미도는 미군이 진주해 있어 출입을 할 수는 없었다. 어른들 입을 통해 옛날에 있었던 조탕(潮湯)이니 풀장이니 하는 이야기를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고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앞에서 말한 황추 화백의 그림에도 그려진 대로 월미도 하늘 위로 타오르는 듯이 붉게 번지던 눈부신 노을은 참으로 아름답고 웅장한, 인천의 장관(壯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보는 월미도 사진은 섬의 양쪽을 잘라낸, 트리밍이 좀 잘못되기는 했어도 오늘날의 월미도와 비교해 볼 때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도크에 잇대어 있지도 않고, 섬에도 별다른 시설이 보이지 않아 숫스러운 모습이 마치 쓸쓸하고 고요한 여느 무인도 비슷하다.

 

사진사가 미군 시설을 피하느라고 다소 무미(無味)하게 찍었겠지만 정상 부근의 망루는 어쩔 수 없이 솟아 보인다. 또 다른 사진 속에는 어디서 온 배인지, 그리고 손님이 다 내리면 이내 다시 섬으로 돌아갈 것인지, 잔교에는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마중 나온 듯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기를 업고 쌀자루 같은 것을 든 아주머니가 이제 막 뱃전을 밟고 잔교로 내려서려 한다. 모여 선 사람들의 행색으로 보아 행락객들은 아닌데 이렇게 부두가 가득 메워질 듯이 오고가고 하는 것을 보면 혹시 명절을 앞둔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복장이 겨울 것이 아니어서 만약 명절이라면 설날이 아니라 추석이었을 듯싶다. 혹여 그도 아니라면 갑작스럽게 늦은 태풍이라도 닥치는 바람에 배가 끊겨 뭍이고 섬이고 다 며칠씩 발이 묶였다가 이제 풀린 것인지.

 

하선하는 도서주민들

 

잔교로 내려서지 못한 저 안벽(岸壁) 위의 승객들 시선이 모두 이쪽 방향이 아닌 것으로 보아 다른 도서지방에서도 이제 배가 막 도착하려는 모양이다. 승객들이 잔교로 한꺼번에 내려서지 못하도록 늘 이렇게 입구에서 선박회사 관계자와 순경들이 막아섰는데, 하선한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간 뒤에야 승선할 사람들을 내려서도록 했다.

 

안벽과 잔교를 연결하는 가변형 연결 다리가 급경사를 이룬 것을 보면 물이 많이 빠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다리는 철골에다 시멘트를 채워 만든 다리였지만 바닥이 거칠어 이 정도 경사가 되어도 미끄럽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쨌거나 다리의 기울기로 보아 대충 사리 때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야 이렇게 큰 조석의 차이를 설명할 수가 있다. 사리라면 보름이나 그믐인데, 이 사진 속 정황으로 미루어 아무래도 음력 8월 대보름 추석이 임박한 어느 날인 듯싶다.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 옛 인천부두 풍경! 사진을 처음 보는 젊은 사람들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고 무덤덤하겠지만 이 일대를 매일 보다시피 하던 사람은 지금 가슴이 메워 온다. 그해 여름방학, 캠핑 짐을 잔뜩 메고 들고 그날따라 급경사를 이룬 다리에서 중요 식료품인 양파 상자를 놓쳐 온통 부두 바닥에 양파를 흩트렸던 친구. 무안한 김에 서로 웃으며 바다에 빠진 양파 몇 개를 건져내려고 애를 쓰던 그 시절 우리들 중 벌써 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김윤식 시인·인천문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