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과 인천역 부근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0-09-15 11:44:44
제물포연초회사 건물은 검은 연기 내뿜고…
10. 인천상륙작전과 인천역 부근
2010년 09월 15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오늘은 인천상륙작전기념일이다.
1950년 9월 15일, 아침 새벽 연합군이 월미도에 첫 상륙한 지 어언 60년, 환갑을 맞았다.
작전 수행 여건상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아 반대와 주저가 많았다는, '세기의 작전'이니 혹은 '불가능 작전'이니 하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이날 성공하면서, 우리는 오늘과는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를 우리의 '운명과 역사'를 바꾼 일대 전기(轉機)를 맞았던 것이다.
네 살에 전쟁이 나서 일곱 살에 휴전이 되었으니 실제 전쟁에 관련한 기억이 내게 또렷하고 온전하게 있을 리 없다. 그저 끊어진 필름처럼 몇 개의 장면이 단편적으로,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뿐이다. 전쟁이란 말은 고사하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조차도 모른 채, 어른들 손에 이끌려 다닌 어린아이였으니까.
전쟁이 발발하고 며칠 뒤였겠지만 처음 개건너로 피난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필이면 왜 개건너였는지, 그 까닭은 지금도 모르겠다. 그저 정환 아저씨라는 분이 토박이로 살고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싶을 뿐이다. 집에 같이 살던 ‘꼬마아주머니’라는 분의 등에 업혀 가던 기억과 소나무 숲과 갯고랑, 그리고 눈부신 햇빛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피난은 매우 어두운 날 밤, 인천역 뒤 부두에서 배를 탔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꼬마아주머니 등에 업혔다. 둑에서 길고 좁은 널을 건너 배에 오르는 것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그 장면은 지금도 현실처럼 생생하다. 밤중에 배가 몹시 요동을 쳐서 어머니가 ‘얘 아무개야, 깡통, 깡통!’ 하며 다급하게 형을 찾던 모습도 또한 지워지지 않는다.
파라다이스호텔 언덕과 차이나타운 언덕.
후에 들은 이야기로, 배는 서해의 이 섬, 저 섬을 헤매다 며칠을 걸려 충청도 대천에 대었다고 한다. 그나마 그것도 천운이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유난히 밝은 기억이라면 형과 함께 모래사장에서 들쩍지근한 맛이 나는 콩나물처럼 길고 가느다란 흰 식물줄기를 캐서 먹던 장면이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화살처럼 날아 멀리 은빛으로 사라져 가던 것을 보았다.
어린아이의 기억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대천이란 곳이 전쟁도 거들떠보지 않은 변방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국군도 공산군도 길을 가득 메운 피난민도 아니, 길가에 쓰러진 사람의 시체도 전혀 보지 못했다. 총소리, 대포소리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저 가끔 비행기 소리가 나면 할머니, 어머니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는 일, 밤이 되어도 등잔불을 켜지 못하는 그런 일 정도의 한가한(?) 사건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내동 골목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린 눈에도 이 세상이, 인천이 그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다행하게도 우리 집은 무사했지만 여기저기 부서진 집들, 불타버린 건물들이 널려 있었다. 특히 만국공원(현 자유공원) 제일 꼭대기에 있던 ‘멋있고 웅장하고 무서웠던’ 서양 집도 폭격을 맞아 한쪽이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는 가끔 밤이면 다급하게 사이렌이 울고, 창밖에서 ‘공습경보’ 라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소등하라는 메가폰 소리가 들렸다. 아마 휴전 직전이었을 것이다. 송도에 있던 저유탱크가 밤중에 공산군의 폭격으로 폭발한 사건이 있었다. 천지가 환하게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월미도 쪽에서 시뻘건 불덩이들이 굉음과 함께 숭의동 하늘을 지나 송도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아무튼 내가 직접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동안에 전쟁은 무참히 인마(人馬)를 살상하고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왜 이토록 잔인하고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것인가. 아무리 선하고 아름다운 구실을 붙여도 전쟁은 끝내 악마의 행위일 뿐이다.
앞의 사진은 폭격에 처참히 부서진 인천역 옆의 옛 영국영사관 자리와 그 밑의 제물포연초주식회사 건물의 잔해를 보여 준다. 연합군이 상륙한 직후, 얼마 안 된 시간에 촬영한 듯 연초회사 건물은 지붕과 기둥만 남은 채 아직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언덕 위 영국영사관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인천의 영국영사관은 초대 영국 총영사가 서울에 근무한 1884년, 그 무렵이나 직후에 지어졌을 것이다. 당시는 누구든 이 땅을 먼저 선점하는 나라가 임자처럼 되어 있던 터라 이권을 챙기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영사관을 인천에 지었을 것이다. 이 영국영사관은 지금의 파라다이스 호텔(옛 오림포스 호텔) 자리였다. 광복 후 인천시립예술관으로 쓰였는데, 그 정경을 고 우문국(禹文國) 화백의 회고기에서 읽을 수 있다.
“중국 상해에서 검여(劍如) 류희강(柳熙綱) 씨와 10년 만에 귀국한 나는 고향인 38 이북의 해주에 갈 수가 없어 우선 서곶 시천동에 있는 검여 자택에 머물기로 했다. 우리 둘은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유람 겸 서울과 인천 등지를 돌아보던 중 현 올림포스 호텔 자리에 있던 시립예술관을 찾게 되었다. 전에 영국 영사관이었다는 이 서구식 단층 건물은 우거진 노목의 숲이 주위를 둘러싸고 아담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옥내에는 상설화랑(常設畵廊)과 분야별로 연구실이 있는 듯 음악 연구실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흘러 나왔다. 바다로 면한 테라스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원탁들이 놓여 있어 그곳에 앉으니 바로 밑에 있는 어항(漁港)에서 새우젓과 생선비린내 같은 것들이 바닷바람에 실려와 항도의 풍취를 느낄 수 있었고 노무자들이 떠드는 잡다한 소음은 활기찬 부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사진은 인천역 쪽에서 바라보고 찍은 것이다. 제물포연초회사는 그러니까 지금 은하모노레일 승강장에 잇대 파라다이스 호텔 입구 언덕 오른쪽 아래가 된다. 1901년 밴들러라는 그리스 사람이 중구 사동에 ‘동양연초회사’를 세웠다가 3년 만에 문을 닫자, 거기 지배인이었던 미국인 해밀턴이 이곳에 다시 담배회사를 세운 것이다. 이 담배 회사의 하회(下回)는 자세히 알 수 없는데 얼추 1980년대 무렵까지 “Chemulpo Tobacco Co.”라고 쓰여 있는 창고 같은 벽돌 건물이 폐허처럼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건물들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훌륭한 역사 현장으로서 시민 교육이나 관광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을 터인데…. 또한 전쟁이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물론 거기에다 전쟁을 핑계 댄 우리 인재(人災)까지 크게 합세해 파괴를 가속화 하고 말았지만.
다음 사진은 사진사가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폭격 맞은 건물 외벽 창문을 통해 바깥을 향해 앵글을 댄 사진인데, 전쟁의 참상을 한층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원래 사진에는 ‘불타오르고 있는 인천역 부근에서 병사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으나 이곳이 ‘인천역 부근’ 어디쯤인지 얼른 위치 확인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곰곰이 살펴보아 알 수 있는 것은 사진 왼쪽 하단, 벽에 뚫린 출입문인 듯한 공간으로 내다보이는 언덕과, 그 언덕을 오르는 길을 통해 이곳이 역시 파라다이스 호텔 자리임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여기 위치는 파라다이스 언덕 동남쪽 아래, 지금 중부경찰서 앞 옛 항동 로터리 일대인 것이다. 물론 사진 속 언덕 아래 대로상에 군인들이 앉아 쉬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사진 오른쪽 두 개의 창문처럼 생긴 공간을 통해 연기가 솟는 청관(차이나타운) 등성이를 보게 된다. 둘 중 더 오른쪽 창문턱에 장병들이 노상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진도 막 상륙작전을 끝낸 장병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촬영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상륙작전과 관련된 인천 사진은 이밖에도 여러 장이 있지만, 오늘은 인천역 부근 사진만 살펴본다. 그다지 흔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상륙 장병들이 월미도 다음으로 상륙한 곳이 인천역 일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9·15인천상륙작전 60주년, 환갑일을 맞아 이 땅에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글=김윤식 시인·인천문인협회 회장
옛 영국영사관, 제물포연초회사가 있었던 중구 파라다이스호텔인천 일대의 모습. 황경진기자 ssky0312@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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