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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역사산책

흔하던 고등어·수조기 어디 가고 전어만 가득

by 형과니 2023. 6. 15.

흔하던 고등어·수조기 어디 가고 전어만 가득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0-10-14 14:04:51

 

흔하던 고등어·수조기 어디 가고 전어만 가득

12. 가을의 미각

 

전에 없이 무덥고 비 많던 여름에다 가을이 시작하는 9월까지도 지지부진 더위와 비로 얼룩졌다가 이제 10월이 되니 비로소 지쳤던 입맛이 겨우 살아오는 것 같다. 특히 인천 사람들의 입맛을 살리는 것으로는 바다 생선을 빼놓을 수 없다.

 

10월에 들면 전통적으로 우리 인천 바다에서는 수조기나 고등어를 주로 건져 올렸는데, 생선전에 나가 보아도 별달리 눈에 띄는 물건이 없다. 그 옛날 그처럼 흔했던 고등어는 볼품없이 작은 체수의 자반 몇 마리만 좌판에 덩그러니 누워 있을 뿐이고, 생물마저도 크기가 자잘한 것뿐이어서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수조기도 전에 비해 물량이 엄청 줄어들어 역시 그렇고 그렇다. 9월에 잡는 갈치와 삼치, 우럭따위도 크게 이목을 끌지 못한다.

 

근래 갑자기 가을철 어류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전어는 좀 보인다. 전부터 중부 지방인 우리 인천보다는 호남 쪽이 더 어획이 많았는데 근래 인기 어종이 되어서인지 쉽게 눈에 띤다. 어느 인터넷 사전에 보니까 전어는 가을에 주로 잡으며, 맛도 가을에 가장 좋다고 씌어 있는데, 아무래도 고개가 좀 갸우뚱해진다. 우리 인천에서는 봄 어류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어에 대해서는 인천의 옛 원로로서 미각에도 유별난 식견을 가지고 계셨던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도 봄철에 먹는 어류로 분류해 놓으셨다. 그 전어의 내력에 대해서 한 5~6년 전쯤 어느 지면에 쓴 적이 있어 여기에 잠시 옮겨본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누가 지어냈는지 모를 이상한 전설(?)까지 곁들여 여기저기서 연기를 피운다. 전어는 근해성 어종으로 45월경에 산란을 하는데 입하(立夏)전후해서 떼를 지어 육지 근처로 몰려와 풀 밑 개흙을 먹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어의 기록이 없으나 뒤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병어와 함께 인천의 주요 어종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어는 산란기의 그 고소한 얕은 맛 때문에 봄의 청어라고 부를 정도로, 봄철에 주로 먹는 어족이었는데 요즘은 사람들 입맛이 변한 탓인지, 아니면 가을철 먹을거리가 부족해져서 그런 것인지, 절기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먹는다. 하기야 호식(好食)이란 말은 아무 때, 무엇을 먹든, 먹어 맛있으면 그만이란 뜻이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에 가끔 보았지만, 4~5월이면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잘게 썬 전어를 마늘과 함께 봄동 배추의 연한 잎에 싸서 쌈으로 잡수시곤 했다. 장은 고추장보다도 된장이 더 적격이었던 것 같다. 전어회 속에 잔가시가 많아 우리 같은 아이들은 별로 먹지 않았다. 전어는 봄날처럼 그렇게 짧게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지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도 제철 어족이 쓸쓸해서 다시 9월 어물을 돌이켜 쓰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갈치 이야기부터 하자. 갈치의 흰 살은 참으로 우아한 맛을 지녔다. 갈치는 소금을 뿌려 석쇠에 얹어 굽거나 얄팍하게 썬 무와 함께 자작자작 간장에 조리거나 그 어느 쪽이든 맛이 있어서 밥 한 공기로는 부족해 숟가락을 놓기가 아쉬웠다.

 

인천 소청도 근해에서 잡히는 갈치가 더욱 그 같은 미각을 자극했다. 지금은 거의 그런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특별히 물이 좋은 놈은 회와 국으로 해서 먹기도 했는데 그 우아한 맛이야말로 인천사람 아니고는 느껴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삼치는 일반 가정에서는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다. 반찬으로 하기에는 다소 퍽퍽한 맛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백반집이나 일식집 밑반찬쯤으로나 쓰이던 생선이었다. 삼치를 회로 먹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고 다만 구이로 해서 먹는데, 제법 덩치가 있는 놈은 살이 차지고 기름도 올라 있어 맛이 있다.

 

가을철에 이놈을 먹으면 입 안이 뿌듯해지는 느낌이다. 신태범 박사의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삼치를 된장에 재었다가 구우면 대단한 별미가 된다는 내용과 함께 알은 어란 감도 된다고 적고 있다. 하나 둘 비슷한 생선구이 집들이 들어서면서 오늘날의 삼치골목이 된 인천시 중구 삼치골목의 모습. 황경진기자 ssky0312@i-today.co.kr

 

옛 축현학교(청소년문화회관) 북쪽 담을 끼고 옛 인천여고 쪽으로 빠져나가는 샛길 일대가 삼치골목으로 이름이 났는데, 이곳이 이 같은 타이틀을 얻게 된 연유랄까, 생선구이 원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무렵 이 샛길 중간에 난 골목 안에 간판 없이 작은 철문을 밀고 들어가 방에 앉던, 가정집을 개조한 주점이 하나 생겨 삼치를 비롯한 생선구이를 안주로 팔면서였다.

 

이 원조 집은 삼치구이를 중심으로 여러 인천 특산 생선들을 구워서 안주로 내놓았는데 맛과 함께 저렴한 가격이 월급쟁이들이나 가난한 예술인들을 불러 모았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집은 없어진 모양이고, 대신 하나 둘 비슷한 생선구이 집들이 들어서면서 어느덧 삼치골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조기는 인천에서는 사실 늦가을로 접어들 무렵이 되어서야나 대접을 받았다. , 여름 동안은 참조기가 흔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여름 한 철에는 민어와 농어가 어물전 좌판을 차지하고 누웠으니 수조기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가을이 와서야 잠시나마 왕좌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때쯤은 맛이 아주 뛰어나서 인천의 미식가들로부터 종종 도미맛과 진배없다는 상찬의 소리를 듣곤 했다.

 

우럭은 여름내, 그리고 늦가을까지 흔하게 잡히지만 예전에는 시장에 나오지도 못하던 하치 생선이었다. 어자원이 고갈되다 보니 이제는 어엿한 귀족 대접을 받고 있다. 우럭은 비교적 살이 단단해서 회로도 먹고 맑게 국을 끓이거나 혹은 매운탕으로도 적격이다. 지금은 광어와 더불어 시내 어디를 가나 회 요리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고등어는 서민의 생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흔해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로도 유명하지만 자반고등어는 우리만의 대표 식품이라고 할 것이다. 근래 안동 간고등어를 자반의 대표로 생각하나, 가을철 인천 바다에서 잡아 올려 이내 소금에 절인 물 좋은 뱃자반은 전국 최고의 상품이었다. 고등어는 굽거나 조림 어느 것으로도 충분히 식욕을 돋운다. “물 좋은 뱃자반은 소고기와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때가 있다.”는 전기(前記) 신 박사의 표현이 가장 실감이 난다. 더운밥과 함께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고등어 뱃살 부위의 야들한 감칠맛은 누구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인천에는 철 따라 독특한 맛을 내는 어류들이 풍부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모두가 귀족이 되어버려 구경하기도 점차 쉽지 않게 되었다. 신포동 생선전 좌판에 그득했던 각종 어패류들, 건어물상에 가득 널려 있던 건작들은 이제 다 옛 풍경, 옛 전설이 되고 말았다.

 

우스운 것은 그 자리에 엉뚱한 전어가 들어와 푸른 연기를 피우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도 두고두고 푸짐하다면 다행일 것이다. 남획과 공해로 스스로 먹을거리를 줄이고 있는 우리들! 옛날 그 어물들을 정녕 이 가을에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것일까. 어쩐지 가을의 미각이라는 제목이 무색하다는 느낌이다.

 

=김윤식 시인·인천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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