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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역사산책

15. 소설(小雪)과 김장

by 형과니 2023. 6. 15.

15. 소설(小雪)과 김장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0-12-04 00:40:58

 

첫눈 내릴 무렵 왁자지껄 월동 준비

15. 소설(小雪)과 김장

 

엊그제 22일이 소설(小雪)이었다. 소설은 입동(立冬) 다음 절기로 이제 눈이 내리는 때라는 뜻이다. 근래는 기후 이상으로 다소 변화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대체로 이 무렵에 첫눈이 내린다. 그리고 보름 후가 대설(大雪)이다. 이 무렵부터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해서 붙인 절기 이름이다.

 

예부터 이 소설과 대설 사이에 우리네 필수 월동 준비인 김장을 담갔다. 전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시월령(十月令)에도 김장과 방한 등 겨울 채비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

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 창호도 발라 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깍짓동 묶어세우고 땔나무 쌓아 두소

우리 집 부녀들아 겨울옷 지었느냐 술 빚고 떡하여라 강신날 가까웠다<하략>

 

김장에 드는 주재료인 배추와 무 이외에도 김장에 들어가는 각종 필수 양념들을 볼 수 있다. 김칫독은 양지에 움막을 짓고 짚에 싸서 묻는다고 한다. 오늘날이야 김치냉장고가 그것을 대신한다. 시월령에는 또 방고래 청소와 벽 바르기, 창호지 바르기, 땔나무 준비 등 월동 채비 일체에 대해서도 일깨우고 있다.

 

1950~60년대만 해도 우리네 풍습이 거의 이러했다. 거기에 광에 시래기를 엮어 달고 양지쪽에다 무말랭이, 호박오가리 따위를 널어 말려 밑반찬이나 시루떡에 쓰곤 했다. 김장을 하고 나면 삼동(三冬) 걱정을 덜었다고 하시던 할머니 말씀도 생각난다. 천지가 깊은 잠에 들고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철, 우리에게 김치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말이다.

 

김장을 하는 날이면 그 대역사(大役事)를 위해 공부가 파하는 대로 집으로 달려와야 했다. 국민학생의 작은 어깨로나마 우물에서 물지게를 져 나르고 김장독과 움파와 움배추, 고구마 따위를 묻을 구덩이 파는 일을 거들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노란 배추 속이파리에 빨간 김장속을 싸서 한입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을 수 있는 즐거움과 배추 우거지를 넣은 뜨끈한 동태국을 먹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었다.

 

김장철이 오면 아연 활기를 띠는 곳이 인천의 대표적인 청과시장인 채미전거리, 물산회사 길이었다. 유명한 설렁탕집 삼강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부터 동인천에 이르기까지 온 천지가 배추, , , 쪽파, 마늘, 쑥갓, 고추, 생강 등속의 김장 물자로 가득 찼다. 황소가 끄는 우차에 바리바리 실려 오는 배추와 무, 지게꾼, 구루마꾼. 높은 축대 밑의 넓은 공판장 마당은 한 접, 두 접, 채소를 흥정하는 손님들과 상인의 음성이 어울려 참으로 대단한 성시(盛市)를 이루는 것이었다. 발밑에는 온통 떨어진 배추 이파리, 무청 따위가 카펫을 이루어 걷기에도 푹신푹신할 정도였다.

 

그 시절은 오늘날처럼 아무 때나 싱싱한 야채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긴 겨울을 대비해 김치, 깍두기, 동치미 같은 반찬을 넉넉히 비축해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집집마다 식구수가 평균 예닐곱은 되었던 시대라 그 입을 충당하려면 보통 배추 한 바리, 즉 이백 포기 정도는 한 해 겨울 김장으로 들여야 했다. 물론 이러한 김장 재료들과는 달리 고추 가루만은 벌써 한여름부터 붉은 통고추를 따가운 햇볕에 말린 뒤 배를 째고 씨를 털어내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두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김장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젓갈일 것이다. 할머니, 어머니는 이미 10월만 넘어서면 북성동하인천역 뒤 경기도수협 어시장에 나가 새우젓이나 황새기젓, 혹은 저부레기, 멸치젓 같은 것들을 미리 사다 두었다. 호리호리하고 긴 몸체에 주둥이 운두가 납작하게 생긴 특이한 새우젓 독에는 오젓, 육젓, 추젓 같은 한국 최고의 맛을 지닌 인천 새우젓이 소금을 쓴 채 담겨져 헛간 한 옆에 서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굴과 생새우는 바로 김장 전날 사는 것이다.

 

그때는 연안 부두가 생기기 전이었고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던 때라 소래 포구는 별 볼일 없이 한산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인천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이나 근교 사람들도 모두 이 옛 조기부두, 곧 북성부두 어시장을 이용했다. 특히 지척에 기차 종착역 하인천역이 있어서 서울 사람들이 많이 내려왔는데 그때쯤이면 차 안이 온통 생선 비린내와 칼칼한 젓갈 냄새로 가득 차곤 했다. 생굴을 비롯한 가지가지의 물 좋은 생선들과 적당히 발효된 젓갈들이 그득 담긴 수천 개의 드럼통! 어시장 마당은 정말 볼 만한 풍경을 이루었었다.”

 

여러 해 전, 모 일간지에 인천의 김장철 풍경을 이렇게 썼었다. 이 무렵에는 숭의동 철교(물론 당시에는 이 철교가 개통되지 않았다) 근방 공터에도 청과시장이 있었다. 여기도 물론 얼마간의 활기를 띠기는 띠었지만, 당시 인천의 중심지가 중구, 동구지역이었던 까닭에 인현동 물산회사만큼은 못했다. 중학생이던 1960년대 초, 이맘때쯤 숭의동 청과시장에서 목격했던, 그 시절 인천의 김장철 풍경의 한 장면. 땅에 떨어진 배추 줄거리를 골라 주워 바구니에 담던 한 소녀와 아주머니의 모습이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처럼 눈에 선하다.

 

앞의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김장하는 날이면 으레 이웃집 아주머니들 몇 분이 와서 아침부터 집안 분위기를 술렁이게 했었던 것이 떠오른다. 물론 그 전날 저녁부터 배추를 절이고 무채를 썰거나 마늘 껍질을 까거나 생강을 가지런히 손보아 놓는 예비 준비를 한다. 아침이면 한쪽에서는 밤새 겉절인 배추를 물에 씻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버무리기도 하고 쪽파를 썰기도 한다. 이윽고 배춧속을 비벼 넣을 때가 그날 김장의 피크가 된다. 노란 배추 속잎에 짜기는 해도 금방 버무린 배춧속을 싸서 한입 가득 넣고 씹는 맛이란!

 

혹 날씨가 사나워 기온이 몹시 내려가는 날에는 어머니나 아주머니들이 아주 고생을 했다. 절인 배추와 무를 찬물에 씻노라면 금세 손이 빨갛게 얼어 옆의 양재기에 떠다 놓은 끓는 물에 잠간 잠간 넣어 녹이던 모습도 아련하다. 지금처럼 고무장갑이 없던 때였다.

 

아무튼 김장 날은 정겹기도 하고, 또 무슨 잔치 같기도 해서 공연히 가슴이 행복해지고 어린 나이에도 인생이 한없이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무렵쯤이면 교실 안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도 많이 비슷해진다는 점이다. 도시락 반찬 깍지 안에 굴에 새우에 거기다가 갖은 양념을 넣어 붉게 무친 무채장아찌를 너도나도 담아 오기 때문이다. 그 애들도 김장 날에 대해 나처럼 그런 설레는 느낌을 느꼈었는지.

 

이런 품앗이 김장 풍경도, 도시락 속의 무채장아찌도 이제는 점차 사라지고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 간다. 인천 앞 바다 짠물이 툭하면 얼어붙고, 집집마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그나마 마당 땅속에 김장독이 묻혀 있어 봄까지는 끄떡없었던 옛 겨울. 우리 인천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이런 전통의 정겨운 겨울을 잃어 간다. 소설을 지나면서 떠오른 감회다. =김윤식 시인·인천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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