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응접실 1970년대 다방 - 美 공보처의 흥미Ⅰ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2-02-02 21:45:58
이방인에게 한국다방은'연구대상'
거리의 응접실 1970년대 다방 - 美 공보처의 흥미Ⅰ
부산 다방 554곳 돌며 자료 취합 마담·레지·손님 등 직접 면담
1970년 12장짜리 보고서 발간 "휴식 넘어 사교·소통의 장" 분석
▲ 미 공보처(U.S.Information Agency), 연구평가실(Office of Research and Assessment)에서 발간한<다방-한국의 사교장(Tea Rooms and Communication in Korea)>이라는 제목의 조사 보고서 표지와 목차.
우리나라 다방의 최전성기는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는 대략 20년 가까운 세월이다. 혹자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다방 전성기로 말하기도 하지만 1970년대는 문자 그대로 한국적 다방 양태(樣態)가 전국에 극성(極盛)하던 절정의 시기이면서, 후기에는 자판기 같은 인스턴트커피의 등장으로 기성 다방의 존립에 변화를 예고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이번부터는 바로 그러한 1970년대 다방 풍경으로 이야기가 옮겨지는데, 그에 앞서1960년대 다방 전성기에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다방의 모습과 그를 바라보던 호기심 어린 시각을 소개해 보려 한다. 특히 외국인, 외국 기관들은 습관처럼 우리 일상에 익어 있던 다방 문화에 대해 아주 세세하면서도 흥미로운 평판(評判)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전 국민의 아지트 '다방'-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 한국적 명물을 두고 어느 외국인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선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허구한 날 사람들이 모여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진지한 토론을 한다. 거기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수시로 들락거리고 화제도 무궁무진하다.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새 참석자가 올 때마다 또 새 뉴스, 새 토론이 시작된다."
▲ 미 공보처(U.S.Information Agency), 연구평가실(Office of Research and Assessment)에서 발간한<다방-한국의 사교장(Tea Rooms and Communication in Korea)>이라는 제목의 조사 보고서 표지와 목차.
위의 글은, 이 연재 첫 회에 인용한 바 있는 민병욱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의 다방에 대한 글 중의 또 다른 부분이다. 그 '어느 외국인'이 누구였는지 몰라도 지구상 유일의 '한국 명물' 다방에 대해 나름대로 요약을 했는데 그의 관찰 결과가 재미있으면서도 실소를 자아낸다. 허구한 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끊임없이 떠들고 웃고 차를 마시는 한국의 다방 풍조가 선뜻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요해(了解)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좀 더 찬찬히 음미해 보면 그가 정말 하고자 했던 내심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대화하는 다방 풍경을 아주 그럴 듯하게 '토론과 민주주의'에 연결해 말했지만 전후 사정을 따져 볼 때, 그 언표(言表)에는 한국인의 다방 문화를 슬쩍 비트는 뜻이 들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왜냐 하면 1960년대라면 우리나라는 그 첫해인 1960년 4월부터 1961년 5월까지 단 1년을 빼놓고는 이미 군사정부가 민주주의를 누르고 있었고, 1970년대에는 그 연장 유신정부가 철권 통치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시절에는 다방에 앉아 그런 종류의 대화를 발설하는 자체가 곧 무슨 조치에 저촉되던 때였다.
경제 개발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다방에 갈 만큼' 사회 전반은 다소 나아졌다고 해도 민주주의는 그 반대의 길을 가던 때였다. 그 익명의 외국인이 당시의 우리 상황을 잘 알았을 터라면, 그것은 비꼬는 말이 아니라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오기를 강력히 원망(願望)하는 반어적 표현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외국인'의 민주주의 발언 외에도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미 공보처(U. S. Information Agency)가 발간한 <다방-한국의 사교장(Tea Rooms and Communication in Korea)>이라는 제목의 12장짜리 조사 보고서이다.(이 문서는 이미 <국립중앙도서관 국외수집기록자료 블로그 '해외기록으로 보는 한국'(e-문서 13) 1960년대 한국의 초상:다방-미 공보처(USIS)가 들여다본 한국의 이색 지대>라는 제목으로 2011년 2월에 공표되었으며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어 필요 부분을 인용한다)
이 보고서는 참으로 세세하게 우리나라 다방의 전모를 파헤쳤는데 그들이 도대체 '한국인과 한국 다방'에 대해 얼마나 큰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으면, 또 그것이 얼마나 불가사의하게 느껴졌으면, 이런 보고서를 다 작성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자(譯者)가 <1960년대 한국의 초상:다방-미 공보처(USIS)가 들여다 본 한국의 이색 지대>라고 제목을 붙인 이 문서는 미 부산공보원(Pusan Branch Public Affairs Office)이 자료를 모아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해서 1970년 봄, 미 공보처 연구평가실(Office of Research and Assessment)에서 발행한 것이다. 실제 조사 대상이 부산 지역의 다방들이었으니까, '1968년도 부산 소재 다방 실태'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만, 전체 내용은 그대로 '한국의 다방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 보고서는 이제 세월도 다 지나갔고, 격식을 갖춘 다방의 사회학, 다방의 사회사를 논한 학술 논문도 아닌 데다가 다른 어떤 특수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작성한 문건도 아니어서 크게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 참 할 일도 그렇게 없었나' 하고 쉽게 냉소해 버릴 수만도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오히려 이렇게 미 공보처가 당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들던 다방에 대해 조사 연구를 할 정도로 은밀히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모르는 새 남에게 벌거벗은 몸을 엿보인 것 같은 심정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인의 눈에 한국의 다방은 이색적인 장소였고 특수한 공간이었다. 시쳇말로 다방은 '연구대상'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거기서 도대체 무얼 하는지, 다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왜 손님들은 다방이라는 데를 들락거리는지……. 궁금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 보고서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 다방'의 모든 것이다.
이 문서를 미국 현지에서 발견해 40년 만에 세상에 밝혀 내놓은 국립중앙도서관 워싱턴 현지 해외 기록수집팀의 이흥환 KISON(Korea Information Service on Net) 편집위원이 번역문에 붙인 해설이다. 그의 말대로 이방인들 눈에 우리의 다방은 이처럼 '연구 대상'이 될 정도로 특이한 공간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이 보고서의 자료는 '부산 지역 대학생 모임인 부산학생연구회(Student Research Club of Pusan)가 1968년 1월, 3주에 걸쳐 현장 조사를 해서 수집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대학생 모임의 성격이나 활동 등에 대하서는 다른 설명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어떤 연유로든 미 부산공보원의 다방 조사 연구 작업 일선에 참여했던 모양이다.
이들이 부산 시내 554개 다방을 방문해 사전 자료를 취합하고, 그 다음 단계로 대표적인 다방 78곳을 선정하여 그 다방의 마담과 선정된 레지 120명, 다방 손님 309명에 대해 일대일 면담을 통해 얻은 자료를 취합, 분석한 뒤 미 부산공보원의 주도 하에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 다방의 모든 것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먼저 이 문서의 소개(Introduction) 부분이다.
한국의 다방이 휴식의 공간이긴 하지만 여기에서는 쉼터(relaxation)나 오락(recreation)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사를 배우고 의견을 교환하는 사교의 장(center for communication)으로서의 다방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다방은 영국의 '퍼브(pub)'나 오스트리아의 '커피 하우스(coffee house)' 같은 소통의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우리의 다방을 '사교의 장, 곧 소통을 담당하는 장소'로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부분이 간략한 요약(Summary)인데 다방의 핵심적 기능이나 성격을 아주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한국의 다방은 비공식 사교장으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긴장을 풀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함으로써 친구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신문이나 잡지를 읽으며 음악을 듣거나 미술품을 감상하는 곳이고, 전시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방마다 단골손님(regular cliental)이 있기 마련인데, 사업가(기업인), 공무원, 학교 교사, 대학 교수, 예술가, 대학생 등 주로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고학력자들이다.
다방 손님들이 다방에서 하는 일이란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며 세상사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교류하기도 한다. 사회 활동가나 정치인들이 다방에서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공무가 얽혀 있을 때는 다방 내 별도의 방을 예약해 회합 장소로 삼기도 한다. 선거철에는 입후보자나 지구당 선거 운동원들이 다방을 유세용 전단지 배포처로 활용하기도 하고, 다른 모임의 회원들은 다방을 집회 공지 사항을 알리는 게시판 기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어 본론에서는 한국 다방의 역사와 특징 등을 자세히 파악해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 다방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9년이다. 일본인 사업가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초기의 다방은 평범한 형태의 친목 클럽이었다. 다방 소유주들은 재력 있는 사업가들이 아니라 주로 예술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다방을 처음 시작한 주된 목적 역시 다른 예술가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 산 옷을 자랑하거나,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미모의 여자 친구들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의 다방은 좀 더 공적인 장소로 모습이 바뀌면서 보다 더 대중화된다. 일반 대중들이 다방의 새로운 손님들도 등장한 것이다. 1945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다방 수는 12개가 넘지를 않았으나, 이후 해마다 다방 수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전국에 5천 개가 넘는 다방이 들어서 있다. 서울에만 1천여 개이고, 부산에도 500여 개의 다방이 성업 중이다. 이제 한국의 다방은 워낙 널리 퍼지고 잘 알려져 있는 탓에 외진 동네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다방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정도가 되었다.
더욱 다음의 내용을 읽으면 놀랄 것이 그들이 우리 다방의 실내 장식, 분위기, 종업원, 역할, 기능 등에 대해 참으로 시시콜콜 세밀하게 조사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다방은 큰 도시의 시내 한복판이나 작은 마을에 들어서기 마련인데, 이 다방들의 가장 큰 특징은 푸근하고 친근감 있는 분위기이다. 일단 실내 장식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드러운 조명, 안락한 의자, 창문에 드리운 커튼 등이 그렇다. 여기에 곁들여 레코드판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때때로 다방은 전시장이 되기도 하는데, 그림, 조각,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곤 한다. 세 번째로 다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다방에서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종업원(staff)이다. 매력적인 매니저인 '마담(Madam)'과 웨이트리스들은 미모와 상냥한 말투를 겸비해야 하며 손님들을이끌어 들이는 친밀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용된 사람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다방이 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는 쉼터의 역할을 하는 곳이긴 하지만, 좀 더 특수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다방도 있다. 부산지역의 554개 다방 가운데 세 곳은 오로지 서양 고전 음악만 틀어주는 다방이고, 두 곳은 신문 기자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주로 들락거리는 곳이며, 대학생들만 모이는 다방도 일곱 군데나 된다. 또 부산 지역에서 예닐곱 군데의 다방은 남녀 손님들이 주로 데이트 상대를 물색하기 위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상대 나라의 흔해 빠진 다방에 대해서도 이토록 치밀하게 조사하고 연구 분석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진정 우리와는 다른 나라라는 점에서 거듭 놀라게 된다. 그들이 조사한 내용 중 '다방의 손님들'이라는 항목과 '결론' 부분도 자못 흥미로운데 그에 대한 것은 차회로 미룬다.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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