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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

인천의 모던 만평(漫評) / 이도령(李道令)

by 형과니 2023. 7. 9.

인천의 모던 만평(漫評) / 이도령(李道令)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22-04-12 17:38:00

 

 

조선 인천 궁정통 사진엽서

 

 

인천의 모던 만평(漫評) / 이도령(李道令)

 

도대체 모던이란 무슨 말인지 남녀노소간에 흔히 쓰고 있건만 나 혼자만은 똑똑히 알 수가 없었다. 오늘 길에서 어떤 친구더러

 

모던이란 게 인천에도 있나

 

물어 보니까

 

 

 

?"

 

", 있고말고 들어보려나?"

 

아주 다짐을 둔다. 그리고 나서 점심 한 턱을 내라고 인천서는 제일 깨끗하고 조용하고 음식 맛나고, 여급들 치사하지 않고 값은 과히 비싸지 않은 삼층집 동양헌으로 앞서 들어간다.

 

"자네 잘 듣게. 이것부터 인천의 모던 건물인 동시에 모던 레스토랑일세.”

 

앉기 전에 이렇게 전제를 내걸더니

 

건물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옛날부터 일러오던 오래된 뾰족집이란 게 있지? 지금 상공회두 길전 씨가 들어있는 만국공원 서쪽 등에 있는 집말일세. 그것이 옛날의 모던 건축이었지.”

 

이 말을 듣고 본즉 나도 생각이 나서

 

: “그 집보다는 지금 인천각이 더 낫지 않아?"

 

이렇게 반박을 주니까

 

"그러기에 옛날 모던이랬지. 지금에야 산근정, 산수정 또 그 밖에도 수없는 문화주택이 많이 생겼지.”

 

하고 변명을 한다.

 

: “조선 촌에는 모던 건물이 없나?"

 

"글쎄, 싸리재 옛날 소방대 자리에 있는 임영균 의원이 새로 지을 때 옥상에 로대가 있었지. 그게 처음 본 풍경이었고 그 옆에 인천부인병원도 모던 건축의 하나요, 용동 애관> 등 뒤에 인천양복점 주인 송수안 군의 집이 속으로 쓸모 있고 겉으로 괴상야릇한 집인즉 최신 모던 건물의 한몫 볼 것이요, 축현정거장에서 지금 부천군청으로 새로 뚫린 길 초입에 청산고라는 네온싸인이 비치는 <백미사가 첨단적 유리창을 내고 깨끗하게 이층으로 지였지.”

 

: “그렇지만 모던이라기에는 너무도 작은 건물들일세."

 

"모르는 소리 말게. 모던이란 원래 큰 것 위대한 것은 아닐세. 적고 아담스런 것이라야 더욱 의미가 바로 맞지.”

 

: “그러면 인천 전체가 우선 모던이랄 수도 있겠네 그려.”

 

",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그러나 다시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천에 모던이 없어.”

 

: “자네가 나를 놀리려고 여기 데리고 온 모양일쎄 그려."

"천만에 소리야. 그렇다면 다시 말함세. 인천에서 제법 양복을 맞도록 지여주는 집은 백양테라〉 〈복음양복점〉 〈인천양복점〉〈스마트양복점들이 모던양복점이고 구두는 <동창양화점〉 〈인천양화점〉 〈삼성태양화점) 이일등이요, 모던 옷을 파는 포목전으로 태풍상회〉〈금룡상점〉 〈주봉기포목점>이 우수하고 양품잡화는 화신연쇄점>을 칠 수밖에. 궁정서 부사옥이란오 씨의 경영법도 그럴 듯한데 좀더 노력이 부족하지."

 

: “이 사람아, 노력은 말도 말게. 조선사람 장사꾼 속에 참으로 노력하는 상점이 몇 군데나 있던가? 젊은 사람이면 놀러나가고 나이 지긋하면 맥이 풀려 앉아있고 무엇 때문에 가게를 벌였는지 까닭을 모르겠데."

 

"그야 각각 여러 가지 사정도 있지. 또 통틀어 말하자면 조선민족이란 상업에 부적당한 자손들이니까. 그래도 궁정의 문화전기상회〉 〈천우전기상회는 잘들 하고 있지 않은가. 경정에 있는 덕선상회> 악기부도 발전될 희망이 있고 이제는 소용없겠다고 여기던 장롱가게들이 웬걸 싸리재 못 미쳐 양편 길에 <주봉운상점〉 〈용동가구점〉 〈우송당가구점)들이 쫙 늘어서서 속세음도 해롭지 않은 모양이데.”

 

: “그 장사야 어디 모던 상품이랄 수 없지?

 

"? 재래상품의 모던화라고 말할 수 있네, 실상은 약하게 되었지마는 화려하고 산뜻하게 유리 끼우고 아로새기고 그런 것이 모던 아닌가. 그런데 작년엔가 궁정에 야운당>이란 안경집이 새로 생겼지. 주인은 김씨라는데 첫 생각은 물론 잘했고 영업성적은 아직 모르겠데만은 그 방면에서 단연 모던일세.”

 

: “이쪽에도 안경시계를 파는 집이 군데군데 있지 않은가.”

"첫째 담이 적고 둘째 돈이 적고 셋째 정성이 적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공연히 그 방면의 명예손상만 될 뿐이지. 아무런 존재의미가 없는 것일세. 그런 사람들이 생각이 깊다면 한데 모여서 큰 것을 만들었으면 좋으련만 만나자 싸움만 할 걸 되나 이렇게 단념을 하고 있거나 꿈에도 연합해서 크게 할 생각은 못하는 패들도 있고, 어쨌든지 지금 세상에 소극적이요 규모 작은 집에는 찾아 들어갈 사람이 없으니까 하루살이 떼 모양으로 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에 쓰러질 상점이 무수한 것일세."

 

: “그렇게 비관론만 할 것은 없네. 배다리 안에 있는 <금룡권 과자집>도 처음에는 아조 우수웠던 것 아닌가. 되나 안되나 혼자 경영해보는 것도 일리가 있지."

 

"하기야 물건 나름이요 경영법이 다 각각 아닌가. 시계안경 같은 것은 절대로 소규모로 해서는 안되는 것일세. 파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나날이 청신한 새 것으로 바꾸어 놓고 시대보다 앞서야 겠는데 삼년 묵은 구식 시계를 걸어두면 어떤 놈이 산단 말인가.”

 

: “그렇게 치면 할 말이 많아지네. 인천에는 여관이란 것이 없다고 할만치 발달이 안되었지."

 

인천 대표적 모던 여관으로 우덕골 우에 인천각이 있지 않은가."

 

: “일반적이 못 되는 걸.”

 

"과연 인천의 여관들은 일제히 쇄신할 필요가 있네. 당장 아쉬운 대로 내동 <대양상회골목 안에 금성여관> 백미사 아래 조선 여관) 애관 뒤에 중앙여관>들이 쓸만할 뿐이지."

 

: “요리집도 그렇지. 서울 친구가 와서는 데리고 나갈 만한 곳이 없어.

극죽<용금루>에 가지만 어떤 험구는 인천요리집들은 첫째 객실이 방술집같이 좁다고 하데마는 술은 백학을 주고 음식도 조금 낫게 하는 용금루)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지."

 

"원래 인천 바닥이 좁고 요리집에 다니는 패들이 잘고 경영자가 이익만 생각하니까 세네 군데가 모두 마찬가지야."

 

: “기생들도 그렇지? 손의 시중들러 온 게 아니라 여왕을 꾀서온 듯 버티지 않겠나. 도시 남자들이 잘못이야. 그렇게 길러놓는 걸 그래.”

 

"계집애들 얘기는 다음으로 밀고 싸리재 마루턱에 문운당은 문방구,운동구를 겸업하는데 세음속이 되고 희문당은 유명한 집이라 더할 나위없고 <영신당에서는 서적을 많이 팔고 인천상사운동구부는 네온싸인까지 달고 모던 상점이데, 문방구보담 역시 운동구가 번업일걸?"

 

: “참 사진관은 꽤 많이 생겼지."

 

상당하지. 고려사진관은 대포를 놓고 동광사진은 꾸준히 나가고싸리재 네거리에 새로 생긴 OK사진관은 아직 설비가 충분치 못한 듯하나 기술로는 단연 일등일걸"

 

: “용동 마루턱에 미영사진> 그 고개 이편에 <월미사진>도 있지.""결국은 기술문제야. 섣부른 선전보다도 기술을 연마해야지."

 

: “ 이발소는 어디가 모던인가."

 

"배다리 안에 <모던이발관>이 모던이겠지.”

 

: “그렇게 할말이 안야."

 

"문앞도 깨끗하고 손님에게 커피 주고 가끔 미인들이 이발 오고 단연 모던이지. 그러나 기술로 본다면 내동 있는 <대양이발관축현정거장앞에 <상인천이발관> 싸리재 <인천이발관>들이 일류야."

 

: “목욕탕은.”

 

서탕> 밖에 더 있나. 저편으로 찾아간다면 유군성씨 재목점 뒤골목에 일본탕>이 인천서 제일 정결하고 미두장 앞에 <남탕)은 새벽부터 할 수 있는 편의가 있지.”

 

: "약방은.”

 

삼각당)은 자리덕으로 팔고 천명당)은 외교술로 팔고 싸리재 인천당은 물건이 구비해서 많이 팔고 정거장 앞에 아까 말하던 모던이층집 백미사> 약품부는 효력 본위로 팔고....

 

: “병원은.”

 

"애관 옆 고주철 씨는 부인병내과에 박사 이상인데 한방약도 고명하고 그 뒷길 <용동의원>은 쎄브란스 모던의사 정문환 씨로 새로운 학설을 풍부히 가졌고 백미사 건너편에 구세병원>은 천엽 의학사로 견실한 연구와 임상에 체험이 많고 임영균의원>은 한동안 인천의 대표적 모던 신사로 의학적 기술보담 속세의 재조가 배승한 감이 있더니 요즘에는 치료실의 정돈된 품이 단연 인천의 모던병원일세. 적외선 등장치 유니트의 참신한 설비를 가서 보게!"

 

: “그밖에 또 모던이 없나."

 

"또 있고말고, 모던이발관 뒷골목에 있는 <싸리재구한증막은 시체 사람들은 냄새난다고 그 맛을 모르겠지마는 일본, 중국은 물론 요즘에는 서양사람 두 양주가 아주 매일같이 한중 단골로 오는 모양인즉 모던한증막이 분명하고 싸리재 못미처 중화당) 건재국 이편으로 넘어 와서 조선매약회사지점 즉 태창당거기서 참외전 골목으로 내려와서 <경성약국) 같은데 양복쟁이들이 많이 찾아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모던한 약국인 듯하고 용동 골목 안에 추탕집으로 모던뽀이가 가끔 들어서 있으니 모던추탕집이 분명하고 선술집으로는 용강정 옥순관)이 대번창인즉 모던서비스가 있는 모양이데.”

 

: “조금 번잡해졌는데 옥순관에는 모던뽀이보다 깍두기 소년이 많이 와서 점잖은 나로서는 오히려 그 윗골목 <덕성관〉 〈수원집> 이나 용동골목안 <홍범네 청대문집> 그 윗 길에 있는 <보배네> 싸리재 네거리 아랫골목<개성집.......”

 

"이 사람! 선술집 점고 받나?"

 

: “냉면은 <사정옥>, 설렁탕은 <신경관>

 

."“앗게 이 사람, 그만 해두고 오늘은 헤어지세

 

.” 이렇게 해서 한바탕 떠들다 본즉 넘어가는 저녁해가 남쪽 유리창으로 비쳐드는데 테이블 저 끝에는 가을 풀밭에 외로이 서있는 코스모스와 같이 날씬한 키와 갸름한 얼굴을 가진 웨이트리스가 고즈넉이 서있다. 나의 경제력이 허락한다면 날마다 이런 곳에 와서 점심을 먹고 싶도록 이 방의 공기가 온통 내 마음에 들었다.

 

(월미창간호(백미사 ; 인천), 19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