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의문화/인천배경문학,예술,문화

윤 후명의 협궤열차

by 형과니 2023. 3. 20.

윤 후명의 협궤열차

인천의 문화/인천배경 책과 영화&문학

2007-02-17 16:36:44


윤 후명의 협궤열차  

꿈.. 추억.. 싣고 달리던 '사랑철'

 

협궤열차를 아는가'는 물음으로 출발하는 윤후명의 연작소설 '협궤열차'에 동승하는 일은 쓸쓸함, 추억, 사랑, 황량함, 꿈… 뭐 그런 것들과 조우하는 일이다.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인선(水仁線)이 무대인 소설은 옛사랑인 '류'와의 재회와 그로 인해 주인공이 느끼는 사는 일의 환상과 허무함, 그리고 낭만을 회색톤으로 둘려준다.

주인공인 '나'와 서로 헤어져 사는지 3년째 되는 10살짜리 딸아이는 방학 때가 되면 혼자서 인형을 들고 협궤열차를 타고 아빠를 만나러 온다. 그는 늘 딸아이를 마중하러 간이역에 나간다.
'딸아이는 협궤열차가 서는 시골역에서 20분을 걷는 마을에 살면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국민학교를 걸어 다니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불쑥 가벼운 환청증세로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옛사랑, 류가 나타난다.

 

"협궤열차 타봤어?"
그녀가 느닷없이 물었다. 나는 무슨 물음인가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건 왜지?"
협궤열차라면 나는 그 역무원이나 기관사 말고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터였다. 내 주머니 수첩 속에 주민등록증과 함께 들어있는 수인선 협궤열차표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몇 시에 닿고 떠나는지 조차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걸 한번 타보고 싶어서. 요전번에도 트럭하고 부딪쳐서 넘어졌다면서?"


류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열차가 그런 식으로 넘어지는 것이 어쩌다 없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불현듯 역으로 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일었다. 그것은 욕망에 가까웠다.

 

그렇게 불현듯, 협궤열차가 타보고 싶을 땐 주저 말고 소래로 가볼 것을 권해본다. 봄바람이 부는 5월 초입의 그곳은 가볍게 들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 때문에 더 그래 보였을까. 하지만 협궤열차의 흔적을 밟아보려면 애써 그런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안 된다. 쓸쓸했던 사랑의 그림자를 밟아보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을 테니까.

 

'언제나 뒤뚱거리는 꼬마열차의 크기는 보통 기차의 반쯤 된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있는데, 상대편 사람과 서로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 어쨌든 이 열차의 구간은 전부가 46.9킬로미터로서 그리 길지는 않다. 수원과 인천 송도 구간이므로 종착역을 빼고 나머지 역 이름은 어천, 야목, 사리, 일리, 고잔, 원곡, 군자, 달월, 소래, 남동 등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소금을 실어 날랐던 열차는 뒤에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일로 소일하다 지난 1995년 12월 31일 60여 년의 삶을 마감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수인선 부근에 살면서 작가가 이 소설을 써 내려갔다고 하니 그때만 해도 협궤열차가 철길을 내달렸을 터.

 

저놈의 협궤열차 아직도 다녀
어느 날 새벽
아니면 저녁
협궤열차에 흔들리는 삶
꼭 유령 같다니까 아니 강시 같다니까
금방 무덤에서 나온 듯
도시에서 나타나 어 저게 저게 하는 동안
뒤뚱뒤뚱 아마 고대공룡 전(古代恐龍展)으로 사라진다니까
거무튀튀한 몸통뼈 안에 그러나
흔들리는 삶
아직 살아서 뒤척이는 꿈
날품팔이 아낙네의 질긴 사랑
나도 그래야 한다 삶 찢기도록
사랑해야 한다
살아 있음의 질긴 몸뚱이들을

 

'어 저게∼저게' 하는 동안 사라져 버리는 협궤열차는 이제 추억이라는 이름의 철로에서나 달리고 있다. 철길이나마 밟아볼 수 있을까, 하여 소래철교 위에 오른다. 철교는 이제 열차 대신 소래포구와 월곶을 오가는 사람을 하루에도 수천 명씩 실어 나르고 있다. 폭이 좁아 웬만큼 담찬 사람이라도 오줌을 질금거리며 건너가야 한다던 그 철교지만 이젠 그런 걱정은 없다.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깔아놓은 두꺼운 강판에 열차의 흔적이 덮여 버린 탓이다. 그나마 철교가 끝나는 지점부터 마을 쪽까지 한 1∼2백 미터쯤 드러나 있던 철길조차 근래에 합판으로 덮였다. 좀 편해보자는 대가로 아쉽게도 철길을 직접 밟아보는 기회를 송두리째 지불해야 한다.


소래포구로 명성호, 반달호, 소래호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 채 회항하고 있다. 소래철교 위에서 소래강을 내려다보니 정말 '고깃배들이 갈매기들을 이끌고 오는지 아니면 갈매기들이 고깃배들을 이끌고 오는지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낮에 그토록 소란스럽던 시장바닥을 지나 철길을 넘어가는 어귀에 서자 출어금지를 알리는 진홍빛 깃발이 어둠에 묻히면서 검게 펄럭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비는 오지 않더라도 바람은 꽤 불 모양이었다. 옅은 어둠 속에서 생선 비린내가 풍겨 오고 있었다. 그 비린내는 마치 내가 맛보고 있는 막연한 절망과 비애라는 생선의 지느러미나 비늘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서 이곳을 떠야지, 어서 이곳을 떠야지 하고 수없이 돼 뇌이면서도 막상 눌러있게 되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이쪽저쪽으로 마구 헝클며 불고 있었다. 나는 어둠에 묻혀 가는 소래역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협궤열차를 타고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곳에서 시를 쓰며 외롭게 외롭게 살았으면'하고 주인공은 읊조리었다. '아웅다웅하는 저 세상을 버리고 자기 삶을 절대고독 속에 놓고 진실로 외롭게 살아가는 길은 없을까'라며 고단한 삶을 눕힐 곳을 찾던 그가 머물던 '측은한 포구'엔 그러나 오늘 이 시간, 고독은 없다.
민어, 숭어, 우럭, 조기, 도미, 광어, 홍어, 상어, 서대, 양태, 밴댕이, 낙지, 주꾸미, 꼴뚜기, 새우, 조개, 굴, 꽃게… 마지막 생을 불태우는 싱싱한 삶과 그들을 사고팔려는 치열한 인파가 부딪치고 있을 따름이다.

 

소설 '협궤열차'의 행간 곳곳에 숨 쉬고 있던 '절대고독' 혹은 '사랑의 그림자'와 만나려면 부득이 철길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논현동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좋겠다. 뭉툭뭉툭 잘려나간 철길은 생각난 듯, 논현2동 마을 바깥쪽에서 다시 이어지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세월은, 철길의 모습을 영 안 풀리는 인생처럼 휘어지고 뒤틀리게도 만들고 끝내 만나지 못할 인연처럼 평행하게 달리던 두 개의 레일을 당장이라도 만날 기세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이곳에서만 45년을 살았다니 협궤열차가 그의 삶 한 부분이었을 김종운(논현1동 노인회장)씨는 협궤열차를 '소철(小鐵)'이라 부르며 "딸랑딸랑 거리며 장난감처럼 다니는 그 열차를 타고 수원도 다니고 인천으로도 볼 일 보러 다녔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 길로 새로운 수인선이 놓여 지역이 개발되리라는 기대감에 한껏 부푼 표정이었다. 한때는 그도 협궤열차에 꿈과 사랑을 싣고 달렸겠지.


'색소폰 소리보다 좀 더 깊은 폐부에서 울려 나오는 경적 소리'를 내며 지금이라도 당장 협궤열차가 달려올 것 같은 철길의 폭은 고작 0.762m. 어른 보폭만도 못한 폭의 철길을 둘이 나란히 걷자면 부득이 어깨를 부딪치거나 혹은 손을 잡고 걸어야 했다. 누구라도 철길을 함께 걸으면 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작은 철을 '사랑철'이라 불러도 괜찮겠다. 그랬던 사랑이 문득 그리워질 때, 추억 속에서나마 협궤열차를 뒤뚱뒤뚱 달리게 해도 좋으리.

 

한번 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 세상을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 두어야 한다.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거들랑 자기 혼자만의 풍경 속으로 가라. 그 풍경 속에 설정되어 있는 그 사람의 그림자와 홀로 만나라. 진실로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진실한 사랑을 위해서는 인간은 고독해질 필요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나는 그 포구의 가장 쓸쓸한 내 장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