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동으로 불러야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3-26 19:18:19
불로동으로 불러야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으로 눕고 아들 혼자 나무하고 병구완을 하려니 힘에 부쳤다. 아들은 갓 혼인한 새색시와 둘이 밤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아버지의 병낫기를 빌었다. 50일째 날이었다. 깜빡 잠이 든 아들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동리 앞 만수산 향나무 곁에 약초가 있으니 캐다 잡숫게 하면 병이 낫겠다고 일렀다. 신령의 말대로 향나무 곁에 약초가 있었으며 그것을 캐어 다려 잡숫게 했더니 과연 아버지는 원기를 회복했으며 장수할 수 있었다. 이후 사람들이 그곳을 불로마을이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이와 달리 옛날 천신제를 지내던 시절 ‘불’이 절대자를 가리키던 ‘밝음’과 연관 있었던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하긴 불로동과 이웃하는 원당동과 당하동은 당제와 관계가 있다. 불노리는 오늘날 인천시 서구 관내의 불노동이다. 김포군 검단면에서 인천시로 편입된 곳이다. 속칭 검단4거리에서 동쪽으로 김포읍에 이르는 346번 지방도로상의 김포시와 나뉘는 지역이다. 도로는 심하게 휘여져 가파른 고개를 오르는데 어느 곳에나 흔하던 여우고개이다. 이 고개에 임진란 때 의병장 조헌 선생이 어려서 공부하러 다니며 여우의 유혹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불노동은 인천시로 편입되면서 택지로 개발되어 지금 예전의 한적한 전원이 아니라 가장 번잡한 지역이 되었다. 토지구획정리가 한창일 때는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와 유물이 발굴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던 곳이기도 하다. 청동기 시대라면 BC 1천500년에서 6천년에 이르는 시기이므로 이곳이 오랜 옛날 인천에 인적이 있었던 곳의 한 곳으로 꼽혀진다.
그런데 그동안 ‘불노’인지 ‘불로’인지 혼동을 일으키던 표기를 ‘불로’로 변경키로 했다고 한다. ‘늙을 노(老)’는 두음법칙의 현상으로 머리글로 읽을 때에는 ‘노’가 되겠으나 동명 不老일 때는 ‘불로’가 맞는다. 불로초(不老草)니 불로소득(不勞所得)이니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외에도 잘못 표기되는 지명의 사례는 많은데 신중한 검토 끝의 지명부여가 바람직하다.
#불로동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