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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도두머리라는 곳

by 형과니 2023. 4. 10.

도두머리라는 곳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6-19 22:54:36


도두머리라는 곳


지금은 온통 아파트 숲이 되었으니 예전의 부평평야라면 어디쯤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시절 계산동에서 바라보이던 기름진 넓은 들, 즉 부평평야는 한없이 평화스러웠다. 한없이 전개되는 옥토지대였다. 부평평야는 이를테면 준평원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이루어진 평야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작은 구릉들이 남게 마련인데 계산동에서 내려다 보이는 부평평야에도 드문드문 구릉이 있었다. 파란 들판의 작은 섬처럼 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들 마을을 까치말 도두머리 살나리 용마루라고 했었다. 까치말은 이웃 된밭과 함께 작전동이 되어 공업지대를 이루고, 용마루는 한때 김포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용종동이 되었으며, 살나리 도두머리는 서운동이라 해서 계산지구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이들 마을은 기름진 수전지대로서 주민들 생활은 유족했으나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경인고속도로가 지척으로 지나가지만 예전엔 계산동을 거쳐가야 하는 육지속의 섬이었다.

오로지 옛날 부평읍, 즉 계산동에서 서울로 가는 옛길을 통해야만 했었다. 김포 장릉을 참배키 위한 임금의 능행차도 이 길로 오갔다. 사실 도두머리라는 지명은 부평읍에서 서울로 가는 길머리라는 뜻이었다.

특히 장마철 한강이 범람하면 수중고도가 되는 것이 이들 마을이었다. 마을마다 붉은 탁류에 잠겨 마을 사람들은 지붕에 올라가 사람 살리라고 아우성쳐야 했다. 그 시절 작은 교회가 개척되어 있었다.

신도들을 중심으로 부녀회와 청년회도 조직되었다.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이들 조직원의 억척 의지로 복지농촌이 되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종종 신문지상에 실렸었다.

그렇던 이곳 도두머리가 오늘과 같은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변화한 것은 계산지구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면서이다. 이웃한 삼산지구와 더불어 오히려 큰 동네 부평읍보다 번화한 곳이 되어 있다.

그러니 예전의 도두머리를 누가 기억하겠는가. 그런데 부평풍물축제를 알리는 고유제가 도두리공원에서 막을 올렸다고 한다. 이렇듯 옛 지명의 되살아남은 살가운 맛이 있어 반갑다.


#부평구 #용마루 #살나리 #부평평야 #도두머리 #작전동 #옛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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