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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44

[인천이 원조] 사이다 [인천이 원조]사이다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1-14 05:20:16 [인천이 원조] 사이다 [서울신문]“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마셔요.” 이미 고인이 된 코메디언 서영춘씨가 1960년대에 크게 유행시킨 ‘사이다송’이다. 콜라와 더불어 청량음료의 쌍두마차인 사이다. 지난날 학생들이 소풍을 갈 때면 어머니가 은밀한 손길로 배낭에 넣어주던 품목이다. 김밥과 함께 ‘환상의 콤비’를 이뤄 소풍의 의미를 배가시켰고, 지금도 촌 노인들은 “사이다는 소화제”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 사이다가 왜 하필 인천 앞바다에 떴을까?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답은 간단하다. 사이다는 인천에서 탄생돼 앞 바다에 병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기 때문.. 2023. 3. 9.
한국최초의 전화 한국최초의 전화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 것들 2007-01-12 12:52:04 한국최초의 전화 한국 통신역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자석식 전화기를 설치한 것은 1896년 10월 2일의 일이다. 궁중에 11백 회선의 전화교환기를 놓고 망건을 쓴 교환수들이 최초의 수동식 전화기인 덕진풍(텔레폰의 음을 한역함) 설치) 부처 간 전화를 연결했다. 그 후 1898년 1월 한성의 주요 관청에 전화를 가설했고, 다시 1900년 7월에 경성과 인천 간「시외전화」를 개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백범 金九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지에 한국 최초의 「시외전화」인 경인 간 전화개통이 이보다 3년여 앞선 1897년 8월 23일이라고 밝힌다. 백범일지의 기록은 이렇다. 『사형은 형식적이나 임금의 재가를 받아 집행하는 법.. 2023. 3. 9.
수준원점을 아시나요? 수준원점을 아시나요?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1-12 12:43:56 인천시 남구 용현동 인하공업전문대학. 바로 옆 인하대학교와 캠퍼스를 같이 쓰는 이 대학에 가면 붉은 벽돌로 만든 특이한 시설물 하나를 만난다. 신입생들은 무엇인 지 잘 모른다. 『캠퍼스를 치장하기 위한 조각품이 아닌가요?』라고 묻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와 유래를 따져 들어가면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인천」이 오롯이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수준원점(水準原點). 높이 3미터 46센치미터, 넓이 2.2평. 여기엔 대체 무엇이 있을 까? 흔히 산의 높이를 해발(海拔)로 부른다. 바다로 부터의 높이란 뜻. 특정 바다를 기준으로 삼아 해발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바다는 어디를 기준점으로 삼을까? 바로 인.. 2023. 3. 8.
우리 나라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승훈 우리 나라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승훈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1-04 09:55:07 우리 나라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승훈 이승훈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이며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되었다. 그 과정에서 비록 몇 차례의 배교를 했다고 해도 그가 한국 천주교회사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조금도 낮아지지 않는다. 조선에서 천주교가 시작된 때는 정조 8년(1784)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미 17세기 초엽부터 천주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른바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 라고 하는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된 서양 책들을 통해 서학(西學 서양 학문)의 과학 기술과 함께 천주교 신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 2023. 3. 8.
청학동 의 외국인 묘지 전경 최초의 외국인 묘지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6-12-26 02:00:07 최초의 외국인 묘지 지난 1883년 '강제 개항' 후 외국인들이 그 어느 곳 보다 많았던 인천에 외국인 묘지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권을 노린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열강들이 물밀 듯 인천 땅에 상륙함에 따라 외국인 특정거류지역인 지계가 설정됐다. 외국인들은 그 곳에서 치외법권의 특혜를 누리며 '이국살이'를 하게 됐다.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자연히 노환이나 각종 사고로 사망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러자 외국인들은 유해를 본국으로 보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거주지 인근 야산을 골라 공동 묘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일인묘지, 청인묘지(의장지). 각국 지계 외국인묘지.. 2023. 3. 7.
최초의 공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 최초의 공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6-12-26 01:58:57 최초의 공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지역에선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양의 영향으로 박물관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이후 일제 강점기가 지난 뒤 해방을 맞이하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박물관이 속속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현재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한 인천시립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다. 처음 박물관 개관 준비에 들어간 것은 지난 1945년 10월. 이듬해 공립 박물관의 효시가 될 시립박물관이 중구 송학동 1가1 세창양행 사택에서 문을 열었다. 짧은 준비기간과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반영이나 하듯 개관 당시 진열된 유물은 364점에 불과했다.5년 뒤 시립박물관은 6·25동란의 영.. 2023.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