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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89

연수구의 역사 연수구의 역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1 08:56:06 인천-연수구의 역사 인천의 옛지명은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기록된 백제건국의 전설에 따르면 백제시조 온조(溫祚)의 동복형(同腹兄)인 비류(沸流)가 오늘의 인천에 정착하여 미추홀(彌趨忽)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그 발상이라 하며 삼국시대에는 고려, 백제, 신라 3국간쟁탈의 목표가 되었던 곳이었다. 3국간의 영토로 번복 변천을 거듭하다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신라의 신주(新州)인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고 경덕왕 때에는 소성(邵城)이라 불러 율진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그 후 고려 현종9년(1018년)에는 수주(樹州)에 속하였으며, 숙종 때에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의 고향이어서 경원군(慶源郡)으로 올리었고 인종 때에는 또 .. 2023. 3. 27.
부평의 역사 부평의 역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1 08:54:32 부평의 역사 ...유래 우리 부평은 옛부터 인천지역과는 다른 권역으로 발전하여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주부토근으로, 통일 신라시대에는 장제군으로, 고려시대에는 수주, 안남, 계양, 길주,부평 등으로, 조선시대에는 역시 부평으로 불렸었다. 1914년 부천군 부내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40년에 와서 처음으로 인천부에 편입된 유서깊은 고장으로 지난 70년대 이후, 산업발달의 가속화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인한 급격한 구세팽창으로 2차례에 걸쳐 분구를 실시, 서구와 계양구를 각각 분리시키고, 1995. 3. 1일 구명칭을 "북구"에서 "부평구"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 고구려 470 주부토군(郡) 설치 ※ 부평읍호(행정구역.. 2023. 3. 27.
강화도의 역사 강화도의 역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1 08:53:03 강화도의 역사 강화도는 삼국시대에서부터 백제·고구려의 중요한 요충지로서 자리잡아왔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의 최대 격전지로 생각되는 관미성이 강화군 교동도로 추정될 정도 강화도는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 개로왕이 죽고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었는데, 이로써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고, 강화도 또한 이때 고구려에 귀속되었으며, 당시 군 이름은 穴口(혈구) 혹은 甲比古次(갑비고차)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접 교동도는 고구려의 高木根縣(고목근현)이 되었다. 그 후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 한강 유역을 되찾았고, 다시 신라의 영역을 들어가게 되었다. 신라는 한강 유역을 장악함으로써 풍부한 물적 자.. 2023. 3. 27.
중구의 지명유래 중구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13:49 개항전의 제물포는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삼남 지방의 세곡을 운반하던 중요한 해상 교통로였다. 조선초기에는 남양부 화양만에 경기수영을 두고 경기만을 수비하기 위해 산하에 영종만호, 제물포량만호, 초지량만호 등 6개의 진을 두었는데, 당시 인천에는 제물포량에 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31년에 1984년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군제가 편제됨에 따라 이곳도 모두 폐쇄되어 제물포 항구는 구한말 전까지 인적이 드문 한적한 어촌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1883년 1월 1일 제물포항이 개항되면서 인천의 중심지가 중구 지역으로 자리를 잡게 되자 그 이전의 중심지였던 인천읍(현 관교동)과 부평읍 지역(현 계산동)은 한적해 지고 제.. 2023. 3. 23.
강화군의 지명유래 강화군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21:47 2023. 3. 22.
계양구의 지명유래 계양구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20:03 계양구의 근원을 옛 고구려 때부터 기술하고 있으나, 한강 유역의 역사적 추이로 미루어 보아 그 이전의 내력을 어느 정도 살펴 볼 수 있다. 계양산을 중심으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고 하천이 흐르던 계양구 지역에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고구려가 470년 '주부토군'을 설치하면서 부터 계양구 지역이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757년 신라의 삼국통일 후 주부토군이 '장제군'으로 개칭되고, 940년 '수주'로 승격되었으며, 1105년 인천이 경원부로 승격된 후 수주에서 분리되었다. 그 후 1150년 수주는 '안남도호부'로 개칭되었고, 당시 청사는 지금의 계산동에 위치하였다. 1215년 이규보가 계양도호부 부.. 2023.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