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역사89 세계의 보물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어 낸 강화도 세계의 보물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어 낸 강화도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9 08:58:59 세계의 보물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어 낸 강화도 임학성(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대장경(大藏經)과 ‘팔만(八萬)대장경’, ‘팔만대장경판(板)’ 대장경(大藏經)이란 불교와 관련된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집대성한 것으로 ‘경장(經藏 Sutta Pitaka)’은 석가모니의 말씀을 모은 것이고, ‘율장(律藏 Vinaya Pitaka)’은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논장(論藏 Abhid-harma Pitaka)’은 교리에 관해 뒤에 제자들이 연구한 주석 논문을 모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대장경은 불교 연구에 관한 자료 문헌을 총망라한 불교총서라 하겠다.. 2023. 4. 26. 광복과 인천 광복과 인천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9 08:57:42 광복과 인천 이 현주 국가보훈처 연구관 # ‘해방’ 인천, 물러나는 일제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36년간에 걸친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었다. 광복은 소수 친일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한민족 성원 모두의 환희요 감격이었다. 1930~40년대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 치하의 고단한 현실에서 민족의 광복을 고대하던 모두에게 광복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심훈, 「그날이 오면」, 1930.3) 환희의 날이었다. 해방과 기쁨 감격과 흥분은 인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복 전의 인천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에 따른 최초의 개항장으로, 외국인 거류지인 조계가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2023. 4. 26. 38년간 ‘강도(江都)시대’를 경영한 강화도 38년간 ‘강도(江都)시대’를 경영한 강화도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9 08:56:30 38년간 ‘강도(江都)시대’를 경영한 강화도 임학성(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고려정부의 강화도 천도 13세기 전반, 질풍노도와 같은 정복 활동을 벌이던 몽골(蒙古)군의 침략(제2차 침략) 기미가 보이자 고려 정부는 수도 개경(開京 : 현재의 개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했다. 때는 1232년(고종 19) 여름(음력 7월)이었는데, 이로부터 1270년(원종 11) 5월 옛 수도인 개경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 강화도는 38년간의 ‘강도(江都)시대’를 경영하게 된다. 고려정부가 내륙이 아닌 바다 한가운데의 섬인 강화로 수도를 옮긴 의도는 무엇일까? 이에는 그럴만한 조건이 여럿 있었겠지만.. 2023. 4. 26. 민족의 성지, 참성단 민족의 성지, 참성단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9 08:55:23 민족의 성지, 참성단 김상열 송암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문헌상 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의 등장으로 출발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의 활동무대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으로 단군 관련유적은 대부분 북한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국조인 단군과 관련한 유적이 강화에 2곳이 있다. 하나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곳으로 전하는 참성단(塹城壇)이고, 다른 하나는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게 하였다는 삼랑성(三郞城)이다. 남한에 유일하게 강화에만 위치하고 있는 단군 관련유적을 참성단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국조 단군의 인식 단군은 우리 민족과 역사를 인식하는 출발점이다. 고려시대 일연의 글에 등장했지만, 우리 민족이 단군.. 2023. 4. 26. 해상교통과 자연도의 경원정 해상교통과 자연도의 경원정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6 11:12:48 해상교통과 자연도의 경원정 배성수(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 해상교통의 요충지 인천 황해에서 한반도 중부지방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인천 연안은 해안선의 굴곡이 심한 데다 크고 작은 부속도서들이 파도의 흐름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항구로서 양호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예성강, 임진강, 한강의 물줄기가 한데 모여 바다로 나아가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인천 연안을 통해야만 한반도 중부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내륙 수운의 입지조건도 매우 뛰어난 지역이었다. 이와 같이 인천은 연안 해운과 내륙 수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중국과의 교통은 선.. 2023. 4. 25. 인천의 호족과 ‘7대어향’ 인천의 호족과 ‘7대어향’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6 11:10:40 인천의 호족과 ‘7대어향’ 강옥엽(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 신라말 호족세력의 대두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는 하대로 오면서 점차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사상적인 면에서 여러가지 변동을 경험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골품(骨品)보다는 실력과 무장력으로 왕위를 쟁취하는 이른바 왕위계승전쟁이 이어졌으며, 골품제 하에서 최고의 지식인으로 행정의 실무를 담당했던 6두품들도 기존체제에 반발하면서 고대적인 이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중세로의 지표를 제시했다. “계림황엽 곡령청송(鷄林黃葉鵠嶺靑松)”이라 해 이미 신라의 멸망을 예언한 최치원(崔致遠), 고려 왕조 개창에 조력했던 최언위(崔彦僞), 후백제 견훤의 참모가 되었던 최승우(.. 2023. 4. 25.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