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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89

백제의 대중국 통교의 관문, 능허대 〃백제의 대중국 통교의 관문, 능허대〃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6 11:09:42 〃백제의 대중국 통교의 관문, 능허대〃 김상열(송암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우리 민족은 많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반만년의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그동안 인천은 이러한 국난 극복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신구(新舊)문화가 교차하던 격동의 시대에 개항을 통해 민족 근대화의 첨단에 서기도 했고, 최근 IMF라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인천국제공항과 송도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동북아시아의 허브도시로 거듭나기도 했다. ▲ 능허대 옛 모습 # 능허대의 등장 능허대는 백제 근초고왕 27년(372)부터 웅진(공주)으로 옮겨가는 개로왕 21년(475)까지 100여 년간 중국으로 내왕하는 사신들이 머물던 객관(客館)으로, 1990년 인천광.. 2023. 4. 25.
인천의 고인돌 인천의 고인돌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5 08:09:19 인천의 고인돌 이희인(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 삼거리고인돌 # 고인돌과 인천 인천에는 미추홀(彌鄒忽)라는 이름으로 역사상에 인천이 처음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선사인(先史人)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고인돌을 꼽을 수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지상에 큰 덮개돌이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 무덤방(墓室)이 위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덮개돌 아래에 돌을 괴는 형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사용되었지만 일부는 집단의 의식을 행하는 제단(祭壇)이나 기념물로 사용된 것도 있는 것으로.. 2023. 4. 25.
인천지명의 탄생 인천지명의 탄생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5 08:08:15 인천지명의 탄생 김상열(인천송암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동북아의 허브도시인 인천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명품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개발, 2009년 도시엑스포 개최, 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 등을 통해 세계 10대 도시로 성장할 브렌드인 인천이라는 지명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되는지 인천 지명의 변천과정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인천(仁川)’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태종 13년(1413)의 일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역사기록에는 ‘미추홀(彌鄒忽)’, ‘소성(邵城)’, ‘경원(慶源)’, ‘인주(仁州)’ 등 여러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 화도진도에 나타난 인천도호부관아 # 인천 최초의.. 2023. 4. 25.
동북아 중심지, 인천 동북아 중심지, 인천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5 08:07:15 동북아 중심지, 인천 # 외래문물의 수용과 대응 ▲ 인천객주회 인천항이 비록 일본의 강압으로 개항되기는 했지만, 우리사회 내부에서도 18세기부터 사회개혁을 모색추구하는 기운이 있어 왔고, 또 그 과정에서 외래의 이질적 문물과도 접촉해 왔기 때문에 인천사회는 외래문물이나 시세의 변화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고 변용하는 입장이었다 할 것이다. 1897년에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仁川港紳商協會)는 그 하나의 좋은 사례였다. 제물포 개항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객주들의 조합인 인천객주회(仁川客主會 ; 1885)를 모체로 사회유지들이 함께해 설립한 이 협회는 일본 기업과 상인에 대응해 우리 민족상인의 상권을 옹호·신장하면서 새로운.. 2023. 4. 25.
근대문물의 선구지, 인천 근대문물의 선구지, 인천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5 08:06:11 근대문물의 선구지, 인천 ▲ 강덕우(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 개항과 인천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미 중국과 일본에 진출했던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조선에도 통상(通商)을 요구해 오기 시작하자, 이들 군사시설은 보장처의 수호보다는 서양세력의 진입을 저지·차단하는 최전방 방어시설로 기능하게 되었다.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서양세력들이 서해안지역, 그 중에서도 수도 한양(漢陽)에 이르는 입구, 이른바 인후지지(咽喉之地)인 인천 해안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에 진출하려는 서양세력의 끈질긴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조선의 해금(海禁)책은 끝내 인천 해안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이른바 병인양요(丙寅洋擾 ; 186.. 2023. 4. 25.
개국(開國)과 왕도(王都)의 고장, 인천 개국(開國)과 왕도(王都)의 고장, 인천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15 08:02:55 개국(開國)과 왕도(王都)의 고장, 인천 기호일보와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이 공동기획해 2007년 6월부터 매주 화요일 게재하는 〈인천역사산책〉시리즈는 그동안 집적된 인천 지역사 자료를 중심으로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인천시민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고 알기 편하게 각 시대별, 토픽(Topic)별로 정리한 것이다. 이러한 기획의 의미는 무엇보다 인천사의 대중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한 역사가 주는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나 인천시민들이 한층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술함으로써 내 고장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증폭되어 인천사랑으로 발전될 것을 기대한다. '개국(開國)과 왕도(王都)의 고장, 인천'에서부터 .. 2023.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