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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89

서구의 지명유래 서구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19:08 서구의 지명유래 서구는 삼국 시대에 '주부토'라 불리면서 백제국에 속했는데, 고구려 장수왕의 남침으로 고구려에 속하게 된다. (475년). 서구는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신라에 영속된다. '주부토'라는 이름은 원래 부평 평야가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습지로 황무지였다. 그래서 주민들이 봇둑을 쌓았는데 그 '봇둑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고 하여 '줄보뚝'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줄보뚝이 한자로 '圭夫吐'가 된 것이다. 757년 이 지역을 장제군으로 지명을 바꾸는데, '장제'라는 말도 '긴 뚝'을 뜻하며, 고려 태조 때는 장제군을 '수주'로 이름이 바뀌어진다. 이 때 서구는 수주 관할의 황어현에 일시 속하다가 부평현과 황어현이 .. 2023. 3. 22.
부평구의 지명유래 부평구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18:24 부평이란 읍호는 고려 충선왕 2년(1310) 지방 관제를 개혁하여 전국의 목사 고을을 없앨 때, 이 곳 길주목이 없어지고 부평부로 개칭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본래 부평은 '오리울'인 '선곶'에 있던 안남도호부가 1165년 계산동으로 이전되어 온 후 그 중심을 이루어왔다. 그 후 읍호가 계양도호부, 길주목, 부평부로 개칭되고 조선조 태종 13년(1413)부평도호부로 되었다.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된 후, 부평역 주변과 시장지역이 발전을 가져와서 부평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부평의 일부와 인천의 일부가 합쳐서 생긴 부천군은 1973년 부천시로 승격되었고 인천시는 1981년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더불어 북구도 인구 증가와 도시.. 2023. 3. 22.
연수구의 지명유래 연수구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17:33 연수구의 지명유래 연수구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전국 74개 도호부 중의 하나인 인천도호부관할 구역으로, 먼우금면(한자 표기대로 읽으면, 원우이면의 옹암리, 먹암리, 망해리, 동막리, 척전리, 한지리, 함박리, 야동, 옥동 지역으로, 먼우금면은 먼우금(먼우금으로 산맥이 길게 뻗어 휘어져(옥이져) 있다는 설), 먼오금(바다가 멀리까지 육지쪽으로 오그라들었다는 데에서 유래됐다는 설), 원호금,또는 원우금이라고도 불려졌다. 연수구의 명칭은 남구, 남동구와 접해있는 연수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수란 글자 그대로 '목숨이 연장된다.'는 뜻이며, 조선시대의 함박리, 망해리 지역을 일제시대 때 일본식 지명으로 바꾸면서 생긴 이름이다. .. 2023. 3. 22.
남동구의 지명유래 남동구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16:53 ●남동구의 지명유래 남동구 관할의 여러 지역들은 삼국시대의 '미추홀', '매소홀', 통일신라시대에는 '소성', 고려시대 때 '경원군', '경원부', '인주군', '인천군'에 이르기까지 독립된 행정부서로 존재하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조선시대 인천이라는 이름 아래 군, 도호부, 현, 부, 관찰부, 시, 직할시, 광역시 등을 거치면서 때로는 인천 지역에 속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천군에 속하기도 하면서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원래 남동구의 남동(南洞)은 인천부 시절 남촌면과 조동면이었던 것을 1914년 부천군에 남촌면과 조동면을 편입시키면서 두 면을 합쳐 한 면으로 만들었는데 남촌면의 '남'자와 조동면의 '동'자를 따 '남동면'이 되었다. 이 .. 2023. 3. 22.
남구의 지명유래 남구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16:08 남구는 인천광역시의 남쪽에 돌출한 해안선을 따라 남동구와 접해 있고 숭의동 지역이 중구, 도화동 지역이 동구와 학익·용현동 지역이 연수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구의 총 면적은 시 전체의 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천시가 광역시로 승격된 이후, 시세의 중심이 남구 지역으로 이동, 현재의 남구는 신시가지 개발과 급격히 팽창하고 있어 인구증가 등으로 행정수요 급증은 물론, 구 전체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 인천광역시의 중심구 역할을 하고있다. 인천광역시 남구는 관내 문학산 부근에서 선사시대의 유물인 각종 토기가 출토 되었으며, 금석병용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 등의 지석총군이 남구 관내의 문학, 학익, 주안동 지역에 잔존하고.. 2023. 3. 22.
옹진군의 지명유래 옹진군의 지명유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6 04:26:47 옹진군의 지명유래 옹진군은 원래 황해도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황해도 지역이 한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고조선시대 부터이며 고조선 이후 낙랑군에 속해 있었다. 그 후 830년 경에는 완전히 고구려의 영역으로 편입 되었으며 이때 부터 옹천홀이라 불렀음을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옹천홀이라는 이름은 옹천성(일명 화산산성)이 독을 눕혀 놓은 모양 같고 성밖은 급경사로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였는데 이 성의 특징을 따서 옹천(독벼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 시대의 황해도 지역은 한산주에 속해 있었고 옹진 역시 한산주에 편입 되었는데 고구려 때의 지명인 옹천이 그대로 유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황해도 지역이 신라의 중심부와.. 2023. 3. 22.